행복한 노후 위한 안전장치 마련하기

2007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하우스 푸어’라는 단어가 언론에 자주 나온다. 하우스 푸어는 말 그대로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란 뜻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전 재산이 집 한 채인데, 여기에 대출금을 끼고 있다 보니 매월 나가는 원금과 이자로 인해 생활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우스 푸어를 벗어나는 길은 3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집값이 계속 올라 현재 현금 흐름이 나쁘더라도 미래의 수익을 위해 참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규모를 줄여 가거나 전세로 사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수입을 더 올려 대출금을 상환하면서 금융자산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하우스 푸어들 쪽에서 보면 세 가지 모두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집을 팔려고 해도 잘 팔리지 않는다. 수입을 단기간에 더 늘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게 됐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재산은 있으되 현금이 없는 신세가 될 것이다. 물론 한 가지 대안으로 집을 담보로 노후 자금을 활용하는 ‘주택연금’도 있겠지만 말이다.

집에 ‘올인’은 위험해
[이상건의 재테크 레슨] ‘마의 10년’…연금 상품으로 준비해야
필자가 하우스 푸어라는 단어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집이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자칫하면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라는 점이다. 주택 가격이 올라 재산이 늘어나고, 또 나중에는 자신의 노후 생활의 든든한 담보가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주택 만능주의’에 다름 아니다.

자산을 운용하면서 집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연금’이다. 그런데 연금은 그 중요성에 비해 의외로 과소평가 받는 경향이 있다. 연금을 단순히 노후 생활 자금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너무 좁은 생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연금은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 운용에서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정년퇴직 시점은 대략 55세에서 58세 사이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65세에 나온다. 즉 정년퇴직 시점과 국민연금 수령 시기 간에는 약 1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것은 이 10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더욱이 대출금이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더하다. 퇴직금을 받아 노후 자금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집은 한 채 있는데, 연금도 없고 현금 자산도 그리 많지 않다.

이 기간에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을 몇 년에 걸쳐 쓰고 나면 전혀 여윳돈이 없어진다. 재취업이 안 되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자그마한 점포라도 얻어 자영업을 해야 한다. 만일 생각대로 점포가 운영되지 않으면 급속하게 가계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평소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층으로 떨어지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이 나오기 이전의 10년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무 설계 전문가들은 이 기간을 두고 ‘마(魔)의 10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의 10년은 나라가 운영하는 국민연금으로도,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으로도 대비하기 어려운 시기다. 즉, 개인 스스로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무 설계를 할 때는 이 10년에 대비한 전략을 잘 짜서 노후 생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10년 동안 매월 2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가 필요하다면 단순 계산으로 2억4000만 원의 사적 연금 자산이 필요하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한꺼번에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65세 이후에는 국민연금에서 약 100만 원 안팎의 돈이 나올 것이므로 그 이후에는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전제 아래 재무 설계를 짜야 한다.

현재 개인 투자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연금 상품은 연금저축(펀드)이다. 이 상품은 연간 300만 원까지 소득공제가 된다. 그래서 이 상품에 가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략 25만 원에서 30만 원 안팎의 돈을 불입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치는 게 있다. 이 상품의 소득공제 한도는 300만 원이지만 불입할 수 있는 돈은 분기당 300만 원, 즉 연간 1200만 원까지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상품은 수익이 발생한 시점에 과세하는 게 아니라 연금으로 받는 시점, 즉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받을 때 세금을 내므로 과세 이연 효과도 있다.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해 자금 여유가 생길 때마다 추가 불입해 놓으면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해외 펀드도 이 상품을 이용하면 더 유리하다. 해외 펀드는 국내 일반 저축 상품처럼 발생한 수익에 대해 15.4%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연금 펀드는 세금이 연금을 받는 시점으로 이연되므로 운용 기간 중 수익이 발생해도 과세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세금을 나중에 낼 수 있어서 실질소득이 증가하고 그 돈을 다시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과세 이연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연금 펀드나 연금 저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연금 펀드를 해외 펀드로 돌린다면 국내와 국외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민연금공단-저소득층 가입자 연금보험료 지원

특집 3면용

국민연금공단은 연금보험료를 낼 돈이 없어 노후 대책이 부족한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 저소득층의 연금보험료 절반을 내 주는 방식으로 나눔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제공
국민연금공단-저소득층 가입자 연금보험료 지원 특집 3면용 국민연금공단은 연금보험료를 낼 돈이 없어 노후 대책이 부족한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 저소득층의 연금보험료 절반을 내 주는 방식으로 나눔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제공
변액보험 상품도 ‘굿’

분산 투자 관점에서 연금 상품을 최대한 활용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변액보험을 이용하는 것이다. 변액보험을 이용할 때는 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을 아예 면제받을 수 있다. 단 이러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10년 이상 장기성 보험은 종합소득세도 분리 과세할 뿐만 아니라 발생한 수익이나 이자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보다 고령화 선배 국가인 일본의 예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고령층의 연수입은 300만 엔 정도다. 이 중 국민연금·후생연금·퇴직연금 등 연금이 수입의 70%를 차지한다. 일본은 60세에 퇴직해 65세에 연금을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5년의 시기가 중요하다.

이 5년 동안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일본 고령층의 생활비는 대략 월 25만 엔 정도다. 이 중 23만 엔을 연금으로 충당한다. 연금이 나오지 않는 5년의 기간 동안 필요한 생활비는 25만 엔을 기준으로 하면 1500만 엔(25만 엔×12개월×5년)이다. 이 돈은 순수한 생활비이므로 여행이나 여가 활용 등을 위한 자금도 필요하다.

이 돈은 대략 월 10만 엔. 이 10만 엔은 60세 퇴직 시점부터 80세까지 필요하므로 2400만 엔(10만 엔×12개월×20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에선 기본 재테크로 ‘4000만 엔을 모으자’라는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사정이 좋지 않다. 연금도 충분하지 않고 퇴직 시점도 빠르다. 자기 돈으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시기가 일본의 2배 정도로 길다.

연금을 잘 준비하는 것은 노후 생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나치게 한쪽 자산에 투자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의 10년’과 그 이후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lsggg@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