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샐러리맨의 지갑 들여다보기

2010년 일본 재계의 기상도는 ‘흐린 후 맑음’으로 요약된다. 최근엔 닛케이지수도 간만에 1만 엔 선에 올라섰다. G20 회의 이후 달러 약세에 대한 신흥국의 반발이 엔고 저지로 이어진 덕분이다. 하지만 웃음은 반쪽짜리다.

아랫목은 뜨뜻해도 윗목은 냉골이다. 기업 금고는 현찰이 넘쳐나도 근로자의 월급 통장은 바닥난 지 오래다. 이런 점에서 샐러리맨의 체감 지표는 몇 년째 꽃샘추위 그 자체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일본 샐러리맨의 봉급 수준은 한마디로 우하향(↘)이다. 경기 상황과 무관한 일관된 흐름이다. 왜일까. 경기 부침과 무관한 고용 악화 때문이다. 요컨대 저임금 근로자가 증가한데다 고용 없는 성장에 익숙해진 결과다.

실제 샐러리맨의 지갑 내용을 보자. 일본 국세청이 샐러리맨(4506만 명)의 월급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민간 급여 총액 추이’를 보면 평균 급여 총액(2009년)은 405만9000엔에 그쳤다. 전년 대비 마이너스 5.5%, 금액으론 23만7000엔이 줄었다.

금액으론 1989년으로 돌아간 수준
[일본] 평균 연봉 406만 엔…보너스 ‘뚝뚝’
이 감소세는 절정기였던 1997년(467만3000엔) 이후 매년 반복되고 있다. 1997년 딱 한 번 2만 엔 오른 걸 빼면 1997년부터 연속 감소다. 금액으론 1989년으로 회귀한 수준이다. 게다가 2009년 하락 폭은 조사 개시(1949년) 이후 최대치다.

평균 급여 중 상여(보너스) 비율도 10년 전 20% 수준에서 16%까지 하락했다. 내년에 발표될 올해 수치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통계도 비슷한 위험신호를 내보낸다. 후생성의 ‘임금 구조 기본 통계 조사’를 보자. 2009년 일반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소정내)는 약 30만 엔인데, 이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 1.5%로 4년 연속 감소세다.

더욱이 남성(평균 42세·근속 13년)은 32만7000엔(전년 대비 마이너스 2.1%)에 그쳤다. 전체 연령에 걸쳐 급여가 하락했지만 감소세가 현격했던 연령대는 35~39세의 남성(전년 대비 마이너스 3.6%)이다.

이 경향은 올해도 비슷하다. ‘민간 주요 기업 임금 인상 조사(후생성, 자본금 10억 엔, 종업원 1000명 이상)’를 보면 2009년보다 인상률은 더 떨어질 것으로 파악됐다. 2009년 인상 금액(5630엔)보다 114엔 더 삭감하겠다고 답해서다.

보너스라도 더 주면 그래도 낫다. 전년 대비 2009년 여름(마이너스 14.3%)과 겨울(마이너스 12.6%) 모두 보너스가 대폭 삭감된데 이어 올여름(0.01%)도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금액으론 2007년 여름(84만4000엔) 이후 감소세로 전환돼 2009년 여름(71만1000엔)에는 2001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2010년 여름(71만2000엔)에는 작년보다 고작 1000엔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기업 실적의 반영은 임금이 아닌 상여로 할 것”이라는 경영층의 위로도 무위로 돌아갔다.

이 와중에 최근 경제 잡지 프레지던트가 상장 기업 샐러리맨의 연봉 수준을 분석해 특집 기사로 내보내 화제를 모았다. 연봉 정보가 분석 가능한 3684개 상장 기업 유가증권 보고서(2010년 6월 기준)를 살펴본 결과다.

일본 샐러리맨의 지갑 수준을 다양한 형태로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난 내용이다. 결과부터 요약하면 상장 기업 샐러리맨의 평균 연봉은 622만 엔으로 조사됐다. 국세청 자료(405만9000엔)보다 연봉 수준이 높은데, 이는 상장 기업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다만 잘나가는 것으로 이해되는 상장 기업의 월급쟁이도 수입이 줄어든 건 매한가지다.
[일본] 평균 연봉 406만 엔…보너스 ‘뚝뚝’
상장 기업의 74%가 연봉이 줄어들었다. 평균 연봉 1000만 엔 이상의 거액 기업은 호황 시절인 2007년 70개사에서 2008년 62개사로 줄어들었다. 위기 충격이 본격화된 2009년엔 더 줄어 47개사만 살아남았다.

더욱이 연봉이 급감한 곳은 TV·미디어 업계다. 가령 후지미디어HD는 124만 엔이 줄어들었다. 도쿄방송HD·아사히방송 등도 모두 100만 엔 가까이 연봉이 대폭 깎였다. 최대 수익원이던 광고 수입이 경기 침체로 급감한 결과다. 광고 수익 감소는 일시적인 금융 위기 탓보다는 오히려 구조 변화에 발맞춘 일본 기업의 광고 전략 수정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가령 경쟁 매체인 인터넷의 등장으로 TV 광고의 상대적 우위가 적잖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TV·미디어 업계와 함께 연봉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종합상사도 허리띠를 졸라맸다. 181만 엔 감소한 미쓰이물산을 필두로 평균 50만 엔 정도 연봉이 줄었다.

은행업은 공적자금 투입 이후 임금 상승 억제로 급여 감소세가 지속됐다. 연봉 수준이 높았던 석유 업계도 에너지 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연봉 수준이 제어됐다. 다만 제약 업계는 의료비 증가와 진료보수제도 등을 배경으로 연봉 수준에 큰 변화가 없었다.

상장 기업 74%도 연봉 낮춰

물론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불어난 기업도 있다. 전체 상장 기업의 24%가 연봉 인상을 실현해 부러움을 샀다. 정보통신 업체인 스카바JSATHD의 평균 연봉은 1322만 엔으로 전년보다 301만 엔이나 급증했다.

2위(이치고그룹HD, 971만 엔)와 3위(도카이도쿄파이낸셜HD, 900만 엔)도 각각 261만 엔, 227만 엔 증가했다(괄호는 평균 연봉). 종업원 1000명 이상(단독) 대기업 중에선 일본KFC(680만 엔)와 라쿠텐(682만 엔)이 각각 179만 엔, 127만 엔 늘었다.

반면 평균 연봉이 300만 엔 이상 깎인 상장 기업도 4개사로 나타났다. 200만 엔 이상 급감 기업은 22개사에 달했다. 연봉 삭감의 충격파가 가장 큰 회사는 841만 엔이 줄어든 PGMHD였다.

2009년 연봉(914만 엔)보다 거의 절반가량 쪼그라들었다. 종업원 1000명 이상(단독) 대기업 중에선 어드밴티스트(574만 엔)와 미쓰이물산(1261만 엔)이 각각 285만 엔과 181만 엔 감소했다.

한편 상장 기업 중 평균 연봉 300만 엔 이하도 16개사로 분석됐다. 직전보다 6개사가 추가로 늘었다. 최저 연봉의 멍에는 경비 업체인 토스넷(236만 엔)으로 조사됐다. 도소매 업체인 다이세이(236만 엔)와 마르코(259만 엔)가 뒤를 이었다.

실제 연봉 하위권 대부분은 서비스 업체다. 여성 근로자와 비정규직 의존도가 높아 전체 평균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를 반영하듯 비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30%를 웃돈 지 오래다.

샐러리맨에게 월급 삭감은 곧 계층 하락을 의미한다. 즉 저소득층으로의 편입 증가다.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정규직마저 흔들리는 와중에 임금 수준의 구조적인 하락 추세는 샐러리맨에겐 중대한 위기 변수 중 하나다.

승자 독식의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은 승자 그룹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패자 그룹은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실제 연봉 300만 엔 이하 비율은 2007년 38.6%에서 2009년 42%로 늘어났다. 전체 샐러리맨 중 1890만 명에 달한다.

연봉 100만 엔 이하도 같은 기간 8.1%에서 8.9%로 증가했다. 월급이 줄면 또 다른 돈줄을 찾아야 한다. 샐러리맨의 아르바이트 겸업 증가다. 원래 일본 기업 대부분은 겸업을 금지했지만 최근 이를 풀어주는 추세다.

가장 역할이 축소되면 나머지 가족 구성원도 생활 전선에 동원된다. 비상사태의 생계유지를 위한 총출동이다. 이것도 안 되면 길은 생활보호 지정뿐이다. 지난 6월 생활보호 세대(137만)는 과거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금 하락세가 위험할 수밖에 없는 징후다.

---------------------------------------------------------------------

돋보기 샐러리맨 범주별 연봉 수준 비교
전기·가스 등 ‘최고’…운수업 ‘바닥’

업종별로 연봉 수준을 살펴보면 역시 불황에 강한 산업의 임금 수준이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인프라 업종이 대표적이다. 전기·가스·수도 등의 업종은 평균 연봉이 700만 엔에 달한 반면 숙박·음식업은 그 절반(350만 엔)에도 미치지 못했다.

교육·학습지원업과 금융·보험업·정보통신업 등이 비교적 고액 연봉인데 비해 생활 관련 서비스 업종과 운수업 등은 연봉 수준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별로는 1000명 이상이 590만 엔(상여 139만 엔)인데 비해 100명 이하는 381만 엔(상여 50만 엔)에 그쳤다.

연령별로 봤을 땐 45~54세의 평균 연봉이 600만 엔대에 근접해 피크를 찍었다. 더욱이 절정기인 50대 전후는 신입 사원 연봉보다 2.5배 이상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저 30년 이상 근속해야 평균 연봉이 700만 엔을 넘어섰다.

직역별로는 평균 52세의 부장급(1032만 엔)이 역시 최고 연봉자로 조사됐다. 과장(842만 엔)과 계장(655만 엔)이 그 뒤를 이었다.

학력별로는 어떨까. 역시 고학력일수록 고임금이 증명됐다. 대학 졸업 이상(610만 엔)이 전문대(416만 엔)나 고졸(409만 엔)보다 연봉 수준이 높았다. 대학 졸업 이상이 중졸·고졸보다 각각 1.7배·1.5배 더 받는다는 의미다.

임금 커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고학력자일수록 취업 이후 임금 상승 폭이 현격히 높아지다가 50세 전후에 최대 간격을 벌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크인 50세 전후의 대졸자 샐러리맨은 신입 때 연봉보다 2.6배를 더 받았다.

학력별 생애 임금 격차는 한층 벌어진다. 고졸자가 평생 1억8372만 엔을 버는데 비해 대졸 이상은 2억7454만 엔을 받아 그 격차가 1억 엔 이상으로 나타났다. 한편 남녀별 임금 격차도 여전했다. 남성(530만 엔)은 여성(349만 엔)보다 연봉이 1.5배 더 많았다. 연령 증가에 따라 성별 임금 격차가 보다 벌어지는 추세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