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중국의 성장

얼마 전 한 신문에 실린 일본 오키다 히토시 아사히맥주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인상 깊게 읽었다.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고령화·저출산으로 일본 내수 시장이 줄어들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부분이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성장 동력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무래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젊은 층이 줄어들면 자동차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 대국인 일본에서는 ‘탈자동차화 사회’라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며칠 후 같은 신문에 농심과 하이트맥주 등의 주가가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들 기업의 주가가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내수 시장의 포화 때문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아사히맥주나 일본 자동차 업계, 그리고 농심과 하이트맥주 등의 기사에서 공통점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내수 시장의 한계’라는 대목이다. 아사히맥주·농심·하이트맥주는 해당 국가의 내수 시장에서 독점적 혹은 과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정점에 다가서고 있는 한국의 내수 시장
젊은이들의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경향으로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산업현장 일선에서 작업하고있다.
/정동헌기자dhchung@ 2002.11.29.
젊은이들의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경향으로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산업현장 일선에서 작업하고있다. /정동헌기자dhchung@ 2002.11.29.
흔히 주가와 시장점유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때, 치열한 경쟁 시장보다 독점적 혹은 과점적 지위에 올랐을 때 주가가 한 단계 레벌업 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아무리 시장 전망이 좋다고 하더라도 경쟁이 격화되면 그 경쟁 때문에 기업들의 수익은 좋아지기 어렵다. 마케팅 비용 등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용을 상대적으로 많이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들이 독점적 혹은 과점적 지위를 점하게 되면 마케팅 비용도 줄고 가격 결정력을 갖게 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수익이 더 좋아진다. 그 결과 주가도 수익에 맞춰 상승한다.

그런데 이런 위치에 처한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 노출돼 있지 않더라도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요한 이유는 아사히맥주의 예에서 언급됐듯이 인구구조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제품을 살 사람이 줄어들거나 그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수적인 소비 패턴으로 변하고 또는 인구가 아예 감소해 버리면 자연스레 시장 규모가 축소된다. 지금 일본이 겪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내수 시장도 거의 정점기에 도달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대외 환경에 휘둘리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로 작은 내수 시장을 꼽는다. 그래서 이들은 내수 시장을 키워야 하는 당위론을 주장한다. 또 내수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각종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일견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들에는 인구 변화라는 변수가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인구가 줄어들면 자연스레 내수 시장은 위축되게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3만 달러에 진입한 일본의 내수 시장이 축소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간다고 해도 쉽게 내수 시장이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본은 이미 2005년부터 65세 인구가 20%가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미 인구 감소 역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2026년에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2020년 전후에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향후 10년 정도 안에 우리나라의 내수 시장은 정점을 찍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확장보다 수축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와 내수 시장의 상관관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기존의 내수주에 대한 관점을 바꿀 때가 됐다. 내수주를 대표하는 게 소비재 기업의 주식들이다.

그동안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기업들도 더 이상 국내를 기반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내 실적도 실적이지만 해외에서의 실적이 그 기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미 국내의 대표적인 소비재 기업 중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오리온과 아모레퍼시픽 같은 회사는 최근 들어 주가가 한 단계 레벨업 됐다.
Hundreds of customers rush into a shopping mall after it opened in Hangzhou, east China Zhejiang province November 16, 2006. China's annual retail sales growth quickened to 14.3 percent in October, the government said this month, beating expectations and confirming a well-entrenched trend of sturdy spending. REUTERS/Henry Lee (CHINA)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2004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
Hundreds of customers rush into a shopping mall after it opened in Hangzhou, east China Zhejiang province November 16, 2006. China's annual retail sales growth quickened to 14.3 percent in October, the government said this month, beating expectations and confirming a well-entrenched trend of sturdy spending. REUTERS/Henry Lee (CHINA)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2004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
본격적으로 중산층 형성되는 중국

또한 글로벌 차원에서 소비의 중심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상 생산 기지와 소비 기지 역할을 동시에 했던 유일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따라 당시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급속하게 도시가 확장되는 길을 밟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출한 제품들의 최종 소비처 역할을 하면서 미국의 소비가 세계경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상건의 재테크 레슨] 중국의 소비 시장, 그 속에 길에 있다
확언할 수 없지만 이제는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향후 세계 소비 시장의 미래를 중국에서 찾고 있다. 일단 중국은 13억 명이라는 압도적인 인구를 가지고 있다.

부자만 1억 명에 달한다. 남한의 전체 인구가 50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부자 시장은 엄청난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미 중국은 전 세계 명품 시장의 25%를 차지하며 세계 시장점유율 2위 국가에 올라섰다. 아시아 최대 명품 시장이었던 도쿄에선 명품 업체들이 매장을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한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상하이와 베이징이다. 실제로 상당수 명품 업체들이 아시아 지역 본부를 홍콩이나 상하이로 옮겨 놓은 상태다.

더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형성이다. 부자들이 아무리 소비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TV를 수백 대씩 사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 100명이 사들이는 TV와 같은 내구재가 부자 1명이 사는 것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통상 국민소득 5000달러를 전후로 중산층 문화가 형성되고 내구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현재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500달러 선이다.
상하이 시내 복합쇼핑몰 로터스(蓮花)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
상하이 시내 복합쇼핑몰 로터스(蓮花)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
굴곡은 있겠지만 중국이 수출 중심에서 내수 지향으로 정책을 변경한 이상 중국의 내수 시장은 앞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 기업이든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든 중국 내수 시장에서의 승자는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앞으로 국내외를 떠나 중국 내수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한 기업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석 능력이 있는 투자자라면 직접투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투자자라면 중국 관련 소비재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국내에 시판되고 있는 이런 펀드들은 중국 소비재 펀드, 아시아·퍼시픽 소비재 펀드 등이 있다.

또한 중국 소비 시장의 확대를 통해 혜택을 볼 수 있는 국가들에 투자하는 펀드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나 브라질과 같은 국가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브라질의 최대 수출 국가 중 하나가 중국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국가도 중국이다. 한국 기업들 중 중국에서 성과가 좋았던 기업들의 주가가 약진한 것이 중국 성장의 수혜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