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발머의 마지막 CES 기조연설이 남긴 것


마이크로소프트 시대가 저무는 걸까요. ‘윈도 제국’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애플·구글·삼성 등이 패권을 다투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는 걸까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2’ 전시회를 지켜본 소감은 예년과 조금 다릅니다. 15년간 참가해 첫 기조연설을 도맡았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CES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개막일 전야에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가 첫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마지막 CES 기조연설이란 점에서 일부 언론은 ‘백조의 노래(swan song)’란 용어를 사용했죠. 백조가 죽기 전에 부른다는 우아하고 애잔한 노래….

그러나 발머의 기조연설은 백조의 노래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윈도 제국’이 쉽게 함락되지 않을 것이란 인상을 풍겼습니다.
[광파리의 IT 이야기] ‘윈도시대’ 가고 춘추전국시대 열리나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년부터 CES에 불참한다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5년 동안 CES에 참가했고 첫 기조연설을 도맡아 했죠. 불참 이유를 “신제품 공개 시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닌지…. ‘마이크로소프트 시대’가 가고 애플·구글·삼성 등과 각축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가 개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머가 깜짝 놀랄 만한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말만 많았지 새로운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발머는 기조연설에서 3가지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모바일 운영체제(OS) 윈도폰, 차세대 PC OS인 윈도8,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진화하고 있는 엑스박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들입니다.

윈도폰 발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타일을 연상시키는 메트로 디자인에 대한 반응이 좋다”, “노키아와 HTC가 4세대 LTE 서비스를 지원하는 윈도폰 7.5(망고) 탑재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윈도폰의 문제는 독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애플·구글 등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발 늦고 폰 메이커와 개발자들이 몰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윈도 제국’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윈도8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윈도8은 윈도폰의 메트로 디자인을 그대로 채택하기 때문에 확실히 새롭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또 PC와 태블릿 겸용이라서 PC용과 태블릿용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을 따로 개발하지 않아도 됩니다. 앱을 거래하는 윈도스토어도 2월 말쯤 오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발머 기조연설의 세 번째 주제는 게임기 엑스박스였습니다. 발머는 엑스박스를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키우겠다고 말했죠. 엑스박스 키넥트의 동작 인식 기능을 활용해 스마트 TV를 몸짓과 말로 컨트롤하게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말로 검색하는 건 마이크로소프트만의 기술은 아니죠. 그러나 동작으로 TV 프로그램과 상호작용하게 하는 기술은 꽤 돋보였습니다.

요약하면 ‘윈도의 지배력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TV 플랫폼 경쟁도 키넥트가 있어서 해볼 만하다’, ‘다만 모바일 OS인 윈도폰이 뒤처져 있어 걱정스럽다’는 얘기입니다. 일단 망고폰 ‘루미아 900’으로 미국 시장에 재진출하는 노키아의 성공 여부가 관건입니다. ‘윈텔 동맹’ 파트너 인텔이 윈도폰용 프로세서를 가지고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호재겠죠.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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