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제 13조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정원은 7명이다. 그런데 이 규정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추천한 박봉흠 위원이 2010년 4월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아직까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61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YONHAP PHOTO-0374> 강연하는 김중수 한은총재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인턴기자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서울 파이낸스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2010.8.17
    doobigi@yna.co.kr/2010-08-17 09:24:46/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강연하는 김중수 한은총재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인턴기자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서울 파이낸스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2010.8.17 doobigi@yna.co.kr/2010-08-17 09:24:46/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박 위원이 물러난 자리와 함께 오는 4월 김대식·최도성·강명헌 위원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주열 부총재도 4월 7일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어서 공석인 자리까지 합치면 총 5자리가 비게 된다.

금통위원은 김중수 총재가 금통위원 한 명과 부총재를 추천하고 나머지는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추천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통위원 자리는 황금 보직으로도 유명하다. 4년의 임기 보장에 3억 원대의 연봉, 기사 딸린 3000cc급 승용차가 제공된다.

김중수 총재가 김준일 한은 경제연구원장(부총재보급)을 차기 부총재 후보 중 하나로 청와대에 추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은 내부 분위기는 더욱 시끄럽다. 한은 부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당연직 금통위원이자 한은의 내부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다. 총재에 이은 2인자 격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외부 인사로 채워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김 원장은 한은 내에서 사실상 외부 인사로 분류된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부과장,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을 거치는 등 주로 한은 외곽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 김 총재가 한은에 입성한 이후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김 총재가 KDI 원장일 때 함께 일했고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김 원장이 한은으로 처음 영입될 당시에도 내부에서 말들이 많았다. 한은 안에도 인재가 많은데 꼭 외부에서 데려와야 하느냐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경제연구원은 김 총재의 작품이다. 기존 금융경제연구원을 손질하면서 경제연구원장에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역할을 부여하고 권한을 확대했다. 당시 신임 원장의 최종 면접을 한 사람도 김 총재였다.

한은 노동조합도 부총재·금융통화위원직을 내부에서 맡아야 한다고 2월 15일 성명안을 냈다. 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부총재는 금통위원을 겸하면서 한은 내부 경영을 총괄하기 때문에 한은의 역사와 조직 문화를 이해하는 내부 인사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은은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외부 인사가 부총재가 되면 국민과 시장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돼 한은의 위상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인사에 대해 줄곧 변화를 강조해 온 김 총재의 혁신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김 총재가 조직 안정을 중시하는 한은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측근을 기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임기가 만료되는 3명의 부총재보 자리도 후임 인사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결정권자인 김 총재가 후임으로 거론하는 인사는 강준오 기획국장, 강태수 금융안정분석국장, 김종화 국제국장이다. 이들 후보는 그동안 한은 내부에서 거론돼 온 후보군과는 차이가 있다. 강준오 국장과 강태수 국장은 지난해 ‘한은법’ 개정을 관철시킨 일등 공신이다. 나머지 한 명인 김 국장은 김 총재 취임 후 직접 발탁한 인사로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국장으로 승진한 지 1년여밖에 안 된다.

금통위원 인사는 아직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통위원의 유례없는 연임 가능성이 보도됐다. 반면 7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물갈이 대상인 상황에서 한꺼번에 금통위원이 교체되는 것도 통화정책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은 주변의 고위급 인사가 묘하게 꼬여가고 있다.



김준일 한은 경제연구원장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