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노후 준비


남성과 여성의 노후 준비 방정식은 동일한 것일까. 흔히 노후 준비는 부부가 함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다. 일단 수명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여성과 남성이 각각 84.1세, 77.2세로 7세 정도의 차이가 난다. 통상 우리나라는 남편의 나이가 부인에 비해 2~4세 많기 때문에 10년 가까이 부인 혼자 살아야 한다. 노인 1인 가구에서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이유다.
[이상건의 재테크 레슨] 삶의 패턴 달라…남편은 일, 아내는 연금
‘삼식이 남편’은 되지 않아야

라이프스타일에서도 차이가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일종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다. 남자들은 군대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직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조직에서 큰 테두리의 시간을 정해 준다. 스스로 시간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은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쓰는 경향이 강하다. 가정주부를 예로 들면, 아침에 일어나 반찬은 어떻게 하고, 자녀 학원은 언제 보내고, 빨래와 청소는 언제 하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문화센터는 언제 가고 하는 식으로 스스로 일상의 계획이 있다.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각자의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퇴직과 함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다. 서로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한 공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많아진 시간 때문에 혼란을 겪고 아내는 남편이란 존재를 생활의 방해자로 여기게 된다. 이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바로 ‘삼식이 남편’이다. 밥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하는 남편을 말한다. 심할 때는 남편의 밥 시중에 따른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때 더 고통을 겪는 존재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보통 인간의 인연에는 학연·지연·혈연·직장연이 있다. 학연·지연·혈연 못지않게 중요한 게 직장연이다. 샐러리맨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내에서 보내며 가장 많이 대화하고 술 마시고 하는 대상이 직장 동료들이다. 남자들에게 퇴직은 이런 직장연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것도 매우 갑작스럽다. 여성들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성들은 대개 지역 공동체와 생활의 인연을 맺고 있다. 자녀와 같은 반의 어머니, 같은 아파트 단지의 주부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퇴직자 증후군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런 인간관계의 단절에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취미나 새로운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직장연의 단절은 있지만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인연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노후 설계를 할 때는 남성과 여성 혹은 남편과 아내의 다른 삶의 조건을 세밀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정주부라면 자신의 수명이 더 길다는 생각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연금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국민연금도 가입해 두어야 한다. 가정주부도 임의 가입 형식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10년 이상 불입하면 본인 명의의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금융회사에 판매하는 연금 상품도 따로 불입해 두어야 한다.

반면 남편은 돈보다 일이 중요하다. 퇴직 이후에도 밖에 나가 밥을 먹어야 한다. 그것이 봉사 활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재취업이든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삼식이 남편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집에 있더라도 스스로 점심을 차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생활력을 갖춰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퇴직 이후에는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이는 현실과 맞지 않다. 어느 정도의 독립성이 서로 보장돼야 한다.

고령화는 기존의 인간관계에 변화를 만들어 낸다. 부부 관계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 한 가지는 남편과 아내의 살아 온 삶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맞게 퇴직 후 제2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