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IT 이야기

애플이 아이폰 5를 발표한 직후 말이 참 많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것은 없었다”는 지적에서부터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 혁신은 없었다”는 식의 지적까지 다양합니다.

국내와 외국 반응도 많이 다릅니다. 큰 혁신은 없다는 지적은 같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젠 애플한테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식의 기사가 많은 반면 해외에서는 “혁신적인 것은 없었지만 잘 팔릴 것”이라는 기사가 많았습니다.

애플이 아이폰 5를 발표한 9월 12일 저는 샌프란시스코 예바부에나센터 현장에 있었습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필 실러 부사장, 스콧 포스탈 부사장, 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까지 직접 봤습니다.

그런데 잡스가 없어서 그런지, 놀랄 만한 내용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폰 5 발표는 기대만큼 쇼킹하진 않았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스코블이라는 유명한 블로거는 과감하게 내지르더군요. ‘애플이 내놓았던 어떤 아이폰보다 많이 팔릴 것이다. CNBC는 첫 3주 동안 1000만 대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너무 보수적으로 잡았다.’ 이런 내용의 글을 구글플러스에 올렸습니다. 이 글에는 ‘갤럭시 S3에 비해 각종 스펙에서 밀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화면을 키웠으니 삼성과 구글이 제소해야 한다’는 시니컬한 댓글도 달렸습니다.

저는 아이폰 5 발표 직후 시연장에서 30분 정도 만져봤습니다. 손에 쥐는 첫 느낌은 ‘작다’, ‘가볍다’, ‘깜찍하다’ 이 세 가지였습니다. 아이폰 5는 기존 아이폰 4S에 비해 20% 가벼워지고 18% 얇아졌습니다. 애플 자체 프로세서 A6 프로세서를 탑재해 아이폰 4S에 비해 데이터나 그래픽 처리 속도가 2배쯤 빨라졌고 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도 지원한다면 배터리 소모가 커지는데 가벼워지고 얇아졌다는 얘기입니다.
평가 엇갈리는 아이폰 5의 운명은 “별 볼 일 없다”vs“사상 최대 판매”
저는 이 부분에서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아이폰 5에서 처음으로 화면을 키웠습니다. 3.5인치에서 4인치로. 폭을 넓히지 않고 길이만 늘린 채 두께를 줄였으니 ‘그립감(손에 쥐었을 때 느낌)’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영국에서 작위까지 받은 조너선 아이브가 실력을 발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의 디자인 마인드가 훼손당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저로서는 파노라마 촬영 기능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동법은 간단합니다. 사진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옵션→파노라마 촬영’순으로 클릭한 뒤 동영상 촬영 때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3, 4초 움직이며 찍으면 끝입니다. 확인해 보면 멋진 파노라마 사진이 찍혀 있습니다. 어떤 앱이나 사이트에서든 페이스북에 쉽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기능과 음성인식 개인 비서 시리(Siri)의 한국어 지원도 박수쳐 줄 만합니다.

아이폰 5에 혁신이 없었다는 지적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아이폰이 나온 지 5년이 지난 지금 깜짝 놀랄 혁신을 꾀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혁신이 아니라 진화를 놓고 따져야겠죠. 그런 점에서 성능이 2배로 향상된 A6 프로세서, 200가지 새 기능이 추가된 새 모바일 운영체제(OS) iOS6, 새가 하늘에서 날면서 내려다보는 느낌의 ‘플라이오버’ 입체 지도 등은 돋보이는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점도 있습니다. 삼성보다 한참 늦게 LTE 폰을 내놓은 점,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추진하는 근접통신(NFC) 방식의 모바일 결제를 외면하고 ‘패스북’이라는 독자 노선을 선택한 점, 구글 지도를 버린 점 등은 아이폰 5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 애플이 아이폰 5를 내놓음에 따라 삼성과 애플의 연말 대전이 아주 볼만하게 됐습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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