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IT 이야기

술이 문제였습니다. 건망증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분실했습니다. 제법 꼼꼼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는지…. 며칠 전 일입니다. 후배 기자들과 음식점에서 저녁밥을 먹으면서 술 한잔 했습니다. 그리고 인근 맥줏집에서 한잔 더 마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휴대전화가 없더군요. 전화를 수차례 걸었는데 도무지 받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주었다면 받을 텐데….

잠금을 걸어놓긴 했지만 ‘선수’한테 걸렸다면…. 그 친구가 내 e메일을 엿본다면?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엿본다면? 구글드라이브에 올려놓은 파일, N드라이브에 올려놓은 사진을 엿본다면? 이런저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휴대전화를 찾지 못하면 주소록을 복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한 뒤 제 폰으로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받지 않더군요. 폰을 주은 사람이 돌려주지 않을 작정인가? 할 수 없이 점심시간에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가 휴대전화 사용 중지 신청을 하고 위치 추적도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폰이 맥줏집에 있다고 나온 겁니다. 다행이다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점원이 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니 찾아가라고 하더군요. 방금 문을 열었다면서.

끝내 휴대전화를 찾지 못했을 때 피해 금액을 대충 추산해 봤습니다. 중고 휴대전화 가격 50만 원, 휴대전화 사용 중지 신청을 하고 새 폰을 사서 개통하기 위해 대리점 왔다 갔다 하며 들어가는 직접 비용과 기회비용 50만 원, 분실에 따른 스트레스를 돈으로 환산하면 300만 원, 주소록을 복구하지 못해 다시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면 그 기회비용 100만 원….

만약 휴대전화에 모바일 카드를 탑재하고 있거나 회사 그룹웨어까지 탑재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누군가 폰을 입수하자마자 비싼 물건을 사고 제 모바일 카드로 결제할 수도 있을 테고 회사 기밀 자료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죠. 모바일 카드와 그룹웨어를 탑재할 정도라면 보안 조치를 훨씬 강화하겠지만 돈을 아낄 요량으로 이걸 무시한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분실 사고 대재앙 부른다 "개인 정보 집결…기밀 유출 우려도"
특정 기업이나 특정인의 휴대전화를 노리는 첩보 활동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붐비는 지하철이나 공항에서 중요 인사의 폰을 훔쳐 기밀을 빼내는 일도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 초 해외 취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동행했던 대기업 임원이 휴대전화를 분실해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만약 그게 분실이 아니라 탈취당한 것이었다면, 누군가 그 기업 임원들의 폰을 작심하고 노렸다면 기밀 유출 가능성은 커집니다.

최근 어느 기업이 낡은 그룹웨어를 교체하기 위해 발주를 했습니다. 경쟁에 뛰어든 그룹웨어 업체들은 한결같이 ‘멀티 운영체제(OS), 멀티 브라우저’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어떤 컴퓨터에서든, 어떤 브라우저에서든 문제없이 사용하게 하겠다는 얘기죠. 모바일 보안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제안한 업체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트북 외에 폰이나 태블릿으로도 그룹웨어를 이용하는 만큼 보안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휴대전화를 되찾은 뒤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폰을 분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휴대전화는 앞으로 신용카드 이상으로 중요해질 텐데, 분실 위험은 훨씬 큽니다. 주변에 폰을 분실했다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지금은 모바일 인터넷 시대. 이제 폰 분실을 막고 분실했을 때 기밀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기업의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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