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건의 재테크 레슨

전통적인 재무 설계 이론에서는 소득기와 퇴직 후 비소득기를 구분하고 비소득기에 필요한 노후 생활 자금을 소득기에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퇴직과 동시에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인출해 노후 생활비로 조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명의 증가로 이런 이분법적인 재무 설계는 더 이상 유용성을 갖기 어려워졌다.

과거 평균 수명이 60, 70대인 시절에는 퇴직 후 10년 동안의 생활비만 준비하면 됐다. 그러나 인생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선 퇴직 후 적게는 30년, 길게는 50여 년 가까운 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55세에 퇴직한다고 가정해도 후기 고령기가 시작되는 75세까지 20년 동안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운용하고 인출해야 하는 ‘운용과 인출의 시기’가 새롭게 생겨난다. 75세부터는 현실적으로 소득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20년 동안 어떻게 자산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노후 생활의 성패가 결정된다. 물론 소득기에 돈을 많이 벌어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정도 충분한 노후 자금을 만들어 놓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인구구조 측면에서도 ‘운용과 인출의 시기’에 적합한 투자 상품의 저변이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 50대 인구는 남한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1500만 명이다. 10년 전에 비해 3배나 늘어난 수치다. 2030년쯤이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50대가 된다.

50대는 퇴직하는 시기다. 이들은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운용하면서 인출도 해야 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 차익형 투자보다 오피스텔과 같은 현금 흐름형 투자처의 인기도 이런 인구구조와 관련이 있다.

금융 상품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즉시연금보험, 월 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 월 배분형 펀드, 월 이자 지급식 브라질 채권 등의 상품이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투자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해외 채권형 펀드도 월 지급형 상품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55~75세 운용과 인출의 시기’에 대비하는 법, ‘현금 흐름형 투자처’ 큰 인기 끌어
적립의 시대에서 인출의 시대로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는 저금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각국 정부가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금리가 매우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어떤 나라든지 경제구조가 선진화되고 자본 축적이 이뤄지면 금리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고령화도 금리 하락 요인 중 하나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 자산 시장에 안정적인 채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채권에 대한 수요 증가는 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쩌면 현재의 금리 수준이 미래의 시각에서 보면 고금리일지도 모른다.

수명 리스크가 새롭게 등장하고 인구구조가 50대 위주로 재편되고 금리가 낮아지는 환경에서는 ‘현금 흐름형’ 투자가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자본 차익의 시대에서 현금 흐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지금부터 현금 흐름형 투자처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가치도 증가한다. 퇴직 후 적은 금액이라도 벌어서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는 사람과 모아 놓은 돈을 인출만 하는 사람은 커다란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1억 원의 금융자산을 가진 A 씨와 B 씨를 예로 들어 보자.

A 씨는 60세부터 금융자산을 생활비로 쓰기 시작했고, 반면 B 씨는 일을 하면서 65세부터 모아 놓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 매월 200만 원씩을 생활비로 쓴다고 가정할 때 단순 계산으로 A 씨는 65세 시점에 남는 돈이 하나도 없게 된다. 오히려 2000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1억 원 -(200만 원×12개월×5년)). 반대로 65세부터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한 B 씨는 금융자산이 오히려 늘어난다.

5%로 운용한다고 할 때 1억 원은 65세 시점에 1억2000만 원이 된다. 단 5년의 시기 동안에 A 씨와 B 씨의 금융자산은 무려 1억4000만 원이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소액이라도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돈을 버는 자산 운용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인출 전략의 수립이 자산 운용의 핵심 포인트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 운용의 패러다임이 적립의 시대에서 인출의 시대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