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IT 이야기

인터넷 혁명에 이어 모바일 혁명이 진행되면서 미디어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신문사는 종이신문 독자가 줄고 광고 매출이 떨어지자 울상이고 출판사들은 종이책이 팔리지 않는다며 아우성입니다.

동네 서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온라인 서점마저 경쟁에 치여 문을 닫기도 합니다. 출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와중에 ‘주문형 출판(POD: Print on Demand)’으로 돌파구를 찾은 출판사도 있습니다. 한국학술정보가 대표적입니다.

최근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한국학술정보를 방문해 현황에 관해 얘기를 듣고 내부를 둘러봤습니다. 출판 문외한인 저는 한국학술정보가 아동 도서와 학습 도서를 제외하면 국내 최대 출판사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도 한국학술정보가 출판사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최대 출판사’라니…. 회사 관계자는 일찌감치 휴렛팩커드(HP)의 ‘인디고’ 디지털 인쇄 시스템을 도입해 POD를 시작한 게 성공 요인이라고 하더군요.

주문형 출판, 디지털 출판으로 전환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종래는 책을 인쇄할 때 출판사가 판매 부수를 짐작해 1000부든 2000부든 찍습니다. 다행히 책이 다 팔리면 2판, 3판을 찍는데 책이 팔리지 않으면 창고에 쌓아두게 마련입니다.

재고=낭비. 돈이 돌지 않고 창고에 쌓이면 출판사로서는 손실을 봅니다. POD는 초판을 최소한으로 인쇄하고 이후에는 주문이 들어오는 만큼 인쇄해 공급함으로써 재고를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POD 방식의 디지털 출판은 ‘롱테일(long tail)’에 적합합니다. 100부, 200부와 같은 소량의 책도 출판할 수 있습니다. 가령 5년 전에 절판된 책을 누군가 100권 사겠다고 주문해도 인쇄해 줄 수 있습니다. 가변 인쇄도 가능합니다. 특정 부분만 수정해 광파리가 볼 교재, 용파리가 볼 교재를 따로 인쇄할 수 있습니다.
맞춤형 출판 시대 열어가는 한국학술정보, 디지털 시스템 도입…하루 3천 종 제작
한국학술정보 측 발표 내용입니다.

1996년에 회사를 설립했고 본사에 190명, 중국 지사에 120명이 일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DB) 사업으로 시작해 출판 사업으로 확장했다. 출판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 인쇄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HP의 인디고 디지털 출판 시스템 등을 도입해 다른 출판사보다 먼저 진화했다.

디지털 인쇄는 다품종 소량 인쇄에 적합하다. 1500부 이상 같은 책을 출판할 땐 아직도 오프셋 인쇄가 유리하다. 그러나 1500부 미만을 출판할 땐 디지털 인쇄가 효율적이다. 한국학술정보는 70여 개의 공정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있다. 하루에 최대 3000종을 동시에 제작할 수 있다.

한국HP에서 이미징 프린팅 사업을 담당하는 김병수 상무는 한국학술정보에 대해 “세계적으로도 가장 진보한 출판사 중 하나”라며 “출판사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오프셋 인쇄에서 디지털 인쇄로 전환하면 다품종 소량 인쇄가 가능하고 절판 도서도 찍어 팔 수 있고, 맞춤형 인쇄도 가능하다”며 “폐기 도서도 대폭 줄일 수 있어 환경보호에도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학술정보 1층 인쇄실도 둘러봤는데 잉크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오프셋 인쇄 공장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창고는 책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게 아니라 도서관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다양한 책이 수십 권 단위로 놓여 있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재고가 10권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인쇄 주문이 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 머잖아 다른 출판사들도 점차 디지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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