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지소능성실(棗化至小能成實)
대추나무 꽃은 지극히 작으나 능히 실한 열매를 맺고

상엽수상해토사(桑葉雖相解吐絲)
뽕나무 잎은 스스로를 풀어서 실을 만드는구나

감소목단여두대(甘笑木丹如頭大)
우습구나 목단아, 크기만 했지

불성일생우공지(不成一生又空枝)
일생을 이루지 못하고 또 빈가지로 남는 구나
[아! 나의 아버지] 내 인생을 바꾼 ‘가훈’
고향이 충남 강경인 나는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들들이 대처에서 커야 한다는 어머니의 고집으로 대전으로 이사 와 그곳에서 학업을 모두 마쳤다.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 가족은 그 당시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방 2개에 다섯 식구가 자야 하는 옹색한 곳에서 자라게 됐다.

그때 우리 집 난방을 거의 책임지던 것은 조개탄이었다. 바로 연탄 재질로 만든, 골프공 크기 만한 조개 모양의 그것이었다. 그 조개탄은 다른 조개탄과 좀 달랐다. 아버지가 집 바로 뒤 여고(女高)에서 한겨울에 태우다가 버린 조개탄을 일일이 골라 주워 가져온 것, 이른바 ‘재활용’하신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를 따라 그 조개탄을 줍는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부끄러운 기억은 나를 바꿔놓았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도 나는 어떤 물건도 허투루 버리지 못한다.

아버지와의 기억은 또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국내 최고의 회사에 지원했다. 내심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명 기업’이라는 부담감이 컸다. 다행히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최종 면접에 들어갔다. 그때 내게 주어진 여러 가지 질문 중 가장 마지막 질문은 가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가훈을 묻는 것이 유치할지 몰라도 그때는 그런 것을 물어봤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조화지소능성실, 상엽수상해토사, 감소목단여두대, 불성일생우공지입니다”라고 답했다.

면접관이 이 긴 문장의 뜻이 의아한지 자세히 물었다. 나는 차근차근 뜻풀이를 하면서 “아버지가 한문을 좋아하시는데 책을 읽으시다가 좋은 글귀인 것 같아 가훈으로 하셨고 아들 삼형제에게 늘 암기를 명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면접관이 “집안이 훌륭하구먼”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며칠 후 합격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그 글귀의 뜻은 아무리 하찮은 작은 미물이더라도 다 나름의 쓰임새가 있고 허황된 꿈을 좇기보다 야무지고 실속 있는 삶이 낫다는 것이다. 이 가훈은 첫 직장에서의 11년을 포함해 20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내 인생의 나침반이 돼 줬다. 아버지는 아들 삼형제가 결혼 후 알뜰히 저축한 돈으로 첫 집을 살 때 이 가훈을 직접 붓글씨로 쓴 후 표구해 아들들 집에 걸어주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곤 하셨다.

이제 팔순을 넘기신 아버지. 당신의 인생에서 보여주신 많은 교훈이 장년이 된 내게 여전히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문형진 피알원 총괄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