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품 회사가 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1년 전 분기에는 라면을 매주 260만 개 팔았는데 이번 분기에는 370만 개 팔았다. 통조림은 1년 전엔 매주 70만 개 팔았는데 이번엔 110만 개 팔았다. 분기 판매량이 라면도 사상 최대, 통조림도 사상 최대다. 현금 보유액은 976억 원에서 1376억 원으로 늘어났다.” 실적 발표 직후 이 회사 주가는 11% 곤두박질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실망했다”며 주식을 내다팔았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애플이라면 그렇습니다. 애플이 최근 2012년 4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그날 주가가 11% 떨어졌습니다. 아이폰 판매는 주당 260만 대에서 370만 대로 늘었고 아이패드 판매도 주당 70만 대에서 110만 대로 늘어 두 제품 모두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금 보유액은 976억 달러에서 1376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1376억 달러면 147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은 얼마나 대단한 걸 기대했기에 실망했을까요. 아마 ‘홈런’을 기대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애플은 2007년 아이폰 발표 이후 분기마다 깜짝 놀랄 만한 실적을 발표하곤 했으니까요. 스티브 잡스는 ‘홈런 타자’였고 ‘마술사’였습니다. 그런데 잡스는 세상을 떠났고 후임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은 홈런이 아니라 안타만 치고 있는 셈입니다.

언론은 일제히 애플이 위기에 빠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애플의 마술은 끝났나?’, ‘더 이상 혁신을 기대할 수 없는가?’,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은 애플이 아니다.’ 이런 식의 기사가 주를 이뤘습니다.
포스트 잡스 시대, 애플의 마술은 끝났나? “사상 최고 실적에도 주가 급락”
애플의 마술은 정말로 끝났을까요. 이젠 혁신을 기대할 수 없을까요. 애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폰만 놓고 보면 마술도 없고 혁신다운 혁신도 없습니다. 아이폰5에 탑재된 애플지도는 “전혀 애플스럽지 않다”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 같은 지도를 신제품에 탑재해 내놓았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삼성 등 경쟁사들도 멋진 폰을 내놓고 있죠.

애플은 이제 ‘카테고리 리더’가 아닙니다. 애플이 내놓으면 경쟁사들이 따라하는 일만 남은 게 아닙니다. 잘 팔린다는 아이패드 미니만 해도 그렇습니다. 애플은 7인치대 제품이 시장성이 없다며 9.7인치를 고집하다가 지난해 7인치대 ‘미니’를 내놨습니다. 경쟁사인 삼성을 따라한 셈입니다. 아이폰 화면을 3.5인치에서 4인치로 키운 것도 그렇습니다. 큰 화면 스마트폰은 삼성이 트렌드 리더입니다.

애플이 실망한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을 돌려세우려면 뭔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여러 가지를 예상할 수 있겠죠. 첫 번째로 애플TV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애플이 올해 애플TV 수상기를 내놓을 것이란 소문이 있는데 TV는 스마트폰과 다릅니다. 케이블TV 사업자, 콘텐츠 사업자들과의 협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협상이 순조롭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국가마다 TV 시장 상황이 달라 단숨에 세계시장을 휩쓸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애플이 흔들린다”며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닙니다. 애플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147조 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출 200조 원대 기업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입니다. 홈런 타자라고 타석마다 홈런을 치는 것도 아니고요. 팀 쿡이 깜짝 놀랄 만한 제품을 여럿 준비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애플은 정점이 지났다고 봅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 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