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균의 日日新경영
칸막이의 제거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이게 해 눈으로 보는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칸막이를 제거해 눈으로 보는 관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아는 만큼밖에 볼 수 없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럿이 동일한 것을 봐도 서로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다.차를 몰고 가다가 도랑을 만났는데 옆에 서 있는 어린 아이에게 물이 얼마나 깊으냐고 물어보니 “오리 가슴 정도의 깊이예요”라고 대답했다. 실제 차로 지나가다 보니 차 중간 높이까지 물에 빠졌다. 어린 아이가 변명하기를 “조금 전에 오리가 도랑 가운데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물이 가슴밖에 안 찼는데 이상하다”며 의아해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린아이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인 양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는 만큼, 즉 안목 지능 수준 만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기 위해서는 안목 지능을 높여야 한다. 왜 칸막이를 제거해야 하는 걸까. 우선 칸막이는 설비의 고장을 유발한다. 중국의 한 공장을 방문하니 안전사고가 발생해 공장이 어수선했다. 사고 내용을 들어보니 작업자가 간밤에 추위를 피해 배전반(외부 변압기로부터 들어온 전기를 각 기계별로 나눠 주는 철판 함으로, 크기는 보통 대형 냉장고 2배 정도)에 들어가 잠을 자다가 감전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예방 정비 활동(TPM)’이나 ‘설비 담당자 선정(MY Machine)’ 등의 설비 관리 계획 수립으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는 아무리 개선 대책을 강구하더라도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안목 지능이 없는 사람들의 개선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연공서열, 종신 고용제 등이 살아 있던 1980년대에는 이런 방법이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현장의 인적 구성이 일용직·임시직·외국인·하청·파견직 등이 많아 정규 인원이 약 20~30%도 안 되는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배전반의 문이 철판으로 막혀 있어 안쪽을 볼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개선의 급소(critical point)’다. 필자는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장 내에 설치된 배전반의 철판 문을 전부 떼어 낸 후 유리를 끼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개조했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밖에서 안이 보이므로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잡동사니를 넣어 둘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돼 고장 또한 자연히 줄어든다. 이것이 칸막이 제거의 목적인 ‘눈으로 보는 관리’인 것이다.
두 번째로 칸막이는 식객을 양산한다. ‘바라만 보지 말고 관찰하세요(Don’t just look observe)’라는 말이 있다. 칸막이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원들의 근무 태도를 태만하게 만들어 식객을 양산하기도 한다.
임원은 사무 관리직의 근무 분위기와 활동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원들이 근무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독립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 관리직 사원은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원의 평가는 부서 내 상급자의 보고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방법은 전달자의 입맛에 맞게 각색돼 전달되기 때문에 상사가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없게 된다. 올바른 평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스마트한 업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며 창의력 또한 기대하기 힘들다. 10년 전만 해도 <그림 1>과 같이 모든 사무실은 통로를 중심으로 부서별로 칸막이(콘크리트 벽이나 샌드위치 패널)로 막은 상태였다. 칸막이는 공정한 평가 방해
당시 각 부서마다 무능한 고참 부장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인사관리 제도와 평가 방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칸막이 사무실이 거의 사라지고 <그림 2>와 같이 칸막이가 전부 제거돼 서로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변화의 배경 중 하나다.
기존에는 부서마다 사무실이 독립돼 있어 칸막이 안에서 부서원끼리만 업무를 보기 때문에 인사권을 가진 공장장이나 중역은 지나가다가 가끔 바라만 볼 뿐 근무 태도를 관찰할 수 없어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놀고먹는 고참 식객 부장들이 부서원과 유대 관계만 잘하면 적당히 숨어 지낼 수 있었다.
흔히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모든 직원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위 직급 때는 열심히 일해 능력을 발휘하면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이런 단계를 거쳐 직급이 올라가다 보면 자신의 능력의 한계 지위까지 승진하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은 본능적으로 여기가 자신의 최종 직위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이후 의욕 상실과 시간 보내기식으로 근무하게 돼 무능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무능해진 부장의 업무를 누군가가 대신 수행해 줘야 하기 때문에 인원은 늘어나는데 업무의 생산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것을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라고 한다.
세 번째로 칸막이는 조직의 벽을 만든다. 기업이 규모가 커지면서 독립된 사무실에서 서로 격리돼 부서별로 근무하다 보면 대화의 기회가 적어 점점 부문별로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돼 내부 조직 간에 높은 장벽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 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부서 간 협조가 잘되지 않게 된다. 이는 시설물에 지나지 않는 칸막이가 조직 간의 높은 장벽, 즉 ‘조직의 칸막이’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소니는 지나친 업무의 분권화로 부문마다 독립된 사무실에서 근무해 서로 얼굴을 모를 정도로 철저히 차단돼 운영됐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 유사 제품이 여러 부서에서 동시에 경쟁적으로 출시될 정도로 서로간의 정보 전달과 협력 체계가 악화돼 결국 몰락으로 내몰렸다.
칸막이로 막힌 독립된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서로간의 소통이 단절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대로 시간이 흐르면 완전히 서로 다른 조직 풍토를 조성하게 돼 자연히 이기주의와 관료주의가 형성된다. 이것이 조직 몰락의 첫 신호인 것이다.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 매니지먼트 컨설팅 대표 wimc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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