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균의 日日新 경영

초식동물은 대부분이 먹이를 먹는 시간이 길다. 이에 따라 언제 육식동물로부터 공격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급히 풀을 뜯어 씹지 않고 배에 넣은 후 안전한 곳에서 한가롭게 되새김(rumination: 반추)이라는 과정을 통해 소화하게끔 진화돼 왔다. 한 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 씹는다는 뜻으로 되새김질을 ‘반추(反芻)’라고 하는데, 되새김질은 초식동물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문화 발전 단계는 물론 기업 경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되새김 활동이 없으면 모든 활동은 사상누각이 된다.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끊임없는 ‘문화적 되새김 활동’이 이뤄지는 진화 과정이 없었다면 현재의 수준에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다른 동물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한 세대에서 이뤄 놓은 문화 수준은 바로 앞 세대에서 개발하고 축적한 지식에 자기 단계에서 만든 지식을 첨가해 분화와 융화를 통한 되새김 활동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우리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기존의 기술과 방법을 매번 또다시 개발해 낼 필요 없이 앞 세대에서 만들어진 것에 자기 것을 첨가해 되새김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계속 발전해 왔다. 이런 ‘문화적 되새김 활동(文化的 反芻 活動)’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것이다.

사무실이든 제조 현장이든 모든 작업(일)에는 ‘되풀이 작업(일)’과 ‘되새김 작업(일)’이 있다. 되풀이와 되새김은 반복한다는 행위 자체만 놓고 볼 때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미 수립된 계획이나 상부의 지시대로 아무 생각 없이 습관화된 상태로 주어진 일만 처리해 목표만 달성한다면 이것은 ‘되풀이 작업’이다.

그러나 여기에 개선을 통한 되새김이라는 사고를 갖고 반복적으로 활동을 지속하면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되새김 작업’이다. ‘되풀이 작업’은 단기성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되새김 작업’은 지속성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모든 활동에는 개선을 통한 되새김의 사고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번영이냐 멸망이냐가 판가름 난다.

옛날에 한 총각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술을 배우려고 고승을 찾아갔다. 어렵게 승낙을 얻어 무술을 배우기로 했다. 첫날 과제는 왼손으로 물통을 들고, 오른손으로 물바가지를 집어 경내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계속해 물을 뿌리라는 지시만 할 뿐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무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었다. 10년이 된 날 고승을 찾아가 왜 무술을 가르쳐 주지 않느냐고 따지니 대답은 계속 물만 뿌리라는 것이었다.

화가 치민 총각이 얼떨결에 물을 뿌리던 습관으로 오른손을 뻗어 고승의 턱을 치니 10년간 물을 뿌리면서 단련된 오른손의 근력이 대단했던지 고승이 일격에 쓰러졌다. 고승이 숨을 헐떡거리며 “됐다. 이제 하산해 원수를 갚아라”고 말한 뒤 숨을 거뒀다.

총각이 원수를 찾아가 일격에 원수를 죽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무술 경기에 나가 진검승부(眞劍勝負)를 벌인다면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 이유는 되새김 활동 없이 동일한 방법으로 되풀이 행위를 통해 힘만 길렀기 때문이다. 복잡계 환경인 기업 경영에서 이런 ‘되풀이 경영 활동’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되새김 경영, 되새김 활동은 성공적 혁신의 관건
‘되풀이 경영’으론 생존 불가능

일본 전국시대(1584~1646년)에 야마모토 무사시라는 유명한 무사가 있었다. 21세 때 일본 천하를 지배했으며 29세까지 고수들을 상대해 60여 차례 진검승부, 전승을 거뒀다. 무사시의 훈련 내용을 보면 되풀이 훈련이 아닌 ‘되새김 훈련’을 실시한 것을 알 수 있다.

1000일분의 연습량을 단(鍛)이라고 하고 1만일분의 연습량을 련(練)이라고 해 아침에는 ‘단’, 저녁에는 ‘련’을 매일 실시했다. 매일 어제와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단련(鍛鍊)’했다고 한다. 이렇게 매일 되풀이 훈련이 아닌 ‘되새김 단련 훈련’을 한 덕분에 그는 일본 최강자가 될 수 있었다. 기업에서의 혁신 활동도 이렇게 ‘되새김 경영 활동’을 해야 초우량 기업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장수 기업은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경영 방식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회사에서는 CEO가 바뀔 적마다 ‘새 술은 새 통에 담아야 한다’는 사고로 전임 CEO가 쌓아 놓은 경영 활동에 대해 장단점 구분 없이 무조건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전부 바꿔 버린다. 후임 CEO B는 전임 CEO A가 추진한 업무를 싹 바꿔 버리고 다시 B의 후임 C는 전임 B가 추진한 업무를 또 바꿔 버린다.

대를 이어가며 전임자의 업무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런 경영 환경을 ‘톱날(saw)식 경영 활동’이라고 한다. 톱날처럼 들쑥날쑥하게 수평으로 이동만 할 뿐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되풀이 경영 방식’이다.



세종의 ‘경연제도’는 되새김 경영의 일환

이 같은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경영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 내일이 있듯이 전임자의 업적에 자신의 방침을 부과해 되새김함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업적을 만들어야 회사는 계단식으로 한 발 한 발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계단식 경영 방법’을 추구해야 진정한 발전이 이뤄진다.

도요타도 미국 내 차량 사고로 인해 도요타 생산 방식 자체를 비난 받으며 한때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선대(先代)의 업적을 물려받아 되새김해 현대(現代)에 업적을 만들고 후대(後代)가 같은 방법으로 업적을 만들어 내는 도요타 철학에 근간한 ‘되새김 경영’이 이뤄져 왔기 때문에 위기에서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아마 되새김 경영이 아니었다면 멸망했거나 삼류로 전략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32년 재위 기간 중 총 9000회의 경연(經筵)을 펼쳤다고 ‘세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세종은 경연을 통해 토론하고 집현전 학사나 관계자들과 많은 시간을 숙의하는 ‘되새김 회의’를 실시하는 과정을 통해 근본 대책을 마련했다.

또한 정승들과 ‘논어’의 한 구절을 놓고 음미하면서 구절구절을 현안과 연계해 회의를 통한 토론 방식으로 풀어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것이 세종대왕이 재임 기간 중 지속적으로 추진한 ‘경연제도’다. 이런 회의 제도를 통해 대신들로부터 국왕의 잘잘못을 서슴없이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해 좋은 아이디어를 이끌어 냈으며 충분한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은 전적으로 의견 제출자에게 실행을 일임했다고 한다.

이것이 ‘되새김 회의’의 롤 모델인 것이다. 파저강의 여진족 토벌(일명 파저강 토벌) 당시 제갈공명도 혀를 내둘렀을 ­­­­법한 토벌 작전 계획을 23명의 관계자들과의 회의를 통해 작전을 수립했다. 당시 최윤덕 장군은 토벌 지역이 험한 협곡이어서 전투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토론을 통해 심경이 변해 찬성한 사람이다.
되새김 경영, 되새김 활동은 성공적 혁신의 관건
그러나 회의 종료 후 토벌 반대를 주장한 최윤덕 장군에게 지휘권을 주어 승리를 이끌게 했다. 반대파를 설득해 좋은 의견을 내놓게 하고 이후에는 정책을 책임지게 하는 방식은 세종대왕이 실시한 ‘되새김 회의’ 덕분이다.

일반 기업의 회의 내용을 보면 참석자의 의견이 전혀 없이 CEO는 ‘내가 왕이다’라는 과대망상적 사고를 갖고 일방적 지시와 거친 말로 ‘동물농장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회의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대부분이 ‘되풀이 회의’인데 매일 되풀이되는 유사한 내용과 결론도 없는 회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되풀이 회의 방법으로는 ‘창의력’을 기대하지 못한다. CEO는 ‘되새김 회의’를 할 수 있게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현 복잡계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인 ‘경영조직의 IQ’를 높일 수 있으며 지속 경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 매니지먼트 컨설팅 대표
wimc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