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성 트립비 대표

부쩍 여행과 관련된 서비스가 많아진 것 같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여행을 테마로 한 창업이 줄을 잇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여행과 관련됐다고 다 같은 서비스는 아니다. 여행을 매개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여행 안내 서비스, 여행 사진을 올리는 서비스 등 다양하다.
[한국의 스타트업] ‘여행 사진을 동영상으로’…틈새시장 공략
트립비(tripvi)는 이런 여러 유형의 서비스들 가운데서도 약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여행 사진을 올려놓으면 이것을 자신만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주는 서비스다.

2000년 대학에 입학해 경영정보를 전공한 트립비 천계성 대표는 학창 시절엔 창업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2005년 광고대행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등 그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돼 2008년 광고회사 나인후르츠미디어에 입사,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부하러 갔다가 창업에 눈뜨다
광고 일은 그의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는 특히 디지털 미디어 광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광고 일을 하면서 중요한 인물을 만났다는 것. 몇 년 뒤 함께 창업하는 손정욱 씨를 광고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됐다.

2009년부터 2010년에 걸쳐 천 대표는 클라이언트가 된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였다. 이른바 ‘코리아 이미지 메이킹 캠페인(Korea Image-making Campaign)’. 캠페인 방식은 심플했다.

주최 측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사진들을 웹페이지에 올려놓으면 캠페인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이 사진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골라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었다. 당시 페이스북이 아직 국내에서는 그리 활성화되지 않은 단계였고 지금에 비해선 글로벌 사용자 수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77개국에서 무려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해 광고주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공유를 많이 할수록 점수가 쌓이고 참가자들 간에 랭킹이 매겨지는 시스템이었다. 순위가 높은 사람들에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함께 이 일을 하면서 천계성·손정욱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았다. 전 세계를 상대로 광고 캠페인을 하는 게 너무나 재밌었던 천계성은 아예 외국 기업에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스웨덴에 있는 하이퍼아일랜드라는 디지털미디어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천 대표가 입학한 하이퍼아일랜드라는 학교는 아주 실용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창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의 프로그램도 공교롭게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적합한 내용이 많았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이 수업의 내용인 경우도 있었다. 천 대표도 학교 과제 중의 하나로 ‘태그 온(Tag on) TV’라는 프로젝트를 했다고 한다. “일종의 TV 카탈로그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약 8개월 동안 진행했어요.”

학교에서도 아이디어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은 천 대표는 프로토타입까지 만드는 데 성공한다. 스웨덴 현지의 벤처캐피털들에 사업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더 이상 진척이 어려웠다. 실제로 사업으로 연결하려고 하니 저작권부터 초상권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다. 경험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받아 보니 이 모델 그대로 사업화하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실적으로 사업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바로 접었지만 이 시도는 그의 일생에 한 전환점이 됐다. 일을 계획하고 사업화를 구상하는 과정에 너무나 매력을 느꼈다. 처음으로 그는 진지하게 기업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됐다.

“태그 온 TV를 하면서 팀 회의를 많이 했는데, 그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어요. 그중에서 위치 기반 아이디어를 얘기하던 중 ‘한류’를 주제로 토론하기도 했어요. ‘한류’가 뜨면서 연예 기획사 건물과 주변 볼거리들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의외로 이런 것들이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러면서 예전에 광고 일을 할 때 ‘한류’ 관련 캠페인을 했던 기억이 다시 났어요.”
[한국의 스타트업] ‘여행 사진을 동영상으로’…틈새시장 공략
그의 기억 속에 ‘한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그것이 불러오는 열정적인 행동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이런 관심과 열정을 서비스를 통해 해소해 주면 어떨까. ‘한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좋은 기억들을 보다 아름답게,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아이템의 출발은 이것이었다. 문제는 같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주로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많았다. 그는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 손정욱 씨가 떠올랐다.

서울대에서 인지공학을 전공한 손정욱 씨는 옥시젠컴퓨팅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천 대표의 팀과 옥시젠컴퓨팅은 팀을 합쳐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옥시젠컴퓨팅은 전원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었다. 최적의 조합이었다.


“최고의 사진+영상 서비스 만들 것”
트립비(Tripvi)의 트립은 여행, 비(vi)는 비디오(Video)를 뜻하기도 하고 비비드(vivid)의 의미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영상 분야로 승부를 내겠다는 이들의 바람 그리고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이용자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폰 버전은 올 1월 출시됐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7월 2일 나왔다. 내용은 심플하다. 여행을 간다.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을 트립비 애플리케이션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준다. 배경음악도 당연히 깔린다. 여행에 대한 추억을 영원히 남길 수 있게 된다.

여러 장으로 흩어진 사진들 중 임팩트 있는 것들만 모아 하나의 영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게 물론 다는 아니다. 위치 기반 정보를 이용해 여행 동선을 따라 여행의 추억들을 정리할 수도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여행 사진을 동영상으로’…틈새시장 공략
그런데 이런 서비스들은 많을 것 같다. 그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기존 서비스들은 대부분 텍스트 리뷰 위주입니다. 사진도 덧붙이지만 영상으로까지 확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사진이 있더라도 대부분이 텍스트에 방점이 찍혀 있죠. 가이드성으로 좋을 수는 있지만 개인의 경험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트립비는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한 100% 모바일 서비스입니다.”

그는 모바일에서 콘텐츠가 폭발하고 있는 시점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텐데 여기서 이 콘텐츠를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게 서비스화되느냐에 관건이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팩앤파트너스에서 초기 엔젤 투자를 받았고 현재 시리즈A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에서 여행 데이터와 사진 등 사람들의 경험을 얼마나 많이 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여행과 관련한 세계적인 서비스가 많지만 트립비는 아시아에 기반을 두고 아시아 시장에 대한 여행 경험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