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스테펜 엘롭

아무리 ‘졸면 죽는 판’이라지만 요즘 세계 정보기술(IT) 업계가 돌아가는 걸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이 거침없이 터집니다. 최근에는 불과 2, 3년 전까지도 ‘세계 최대 휴대전화 메이커’로 통했던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할 스테펜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는 친정에 복귀했습니다.
[광파리의 IT 이야기]돌아온 ‘트로이의 목마’, 최후는
돌이켜 보면 참 묘합니다. 캐나다 사람인 엘롭이 노키아 CEO로 선임돼 핀란드로 건너갔을 때 노키아 안팎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보낸 트로이 목마”니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를 먹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번 해 보는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뿐이 아니고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 소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엘롭이 ‘트로이 목마’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엘롭이 내린 결정을 보면 의심쩍은 대목이 있습니다. 엘롭은 노키아 CEO가 되자마자 임직원들을 면담해 문제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불타는 플랫폼’이었죠. 노키아(또는 노키아가 채택한 심비안이라는 모바일 플랫폼)가 불타고 있으니 타 죽지 않으려면 플랫폼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전 사원한테 보냈습니다.

그때 e메일 내용을 읽고 ‘노키아가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석유 시추용 플랫폼에 비유한 걸 보고 ‘문학적 소양이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도 했죠. 엘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바일 운영체제(OS)로 자사 심비안을 버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폰’을 채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악수하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활짝 웃는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노키아의 종말은 이 순간 본격화됐습니다. 그때 윈도폰 대신 구글 안드로이드를 채택했다면 지금쯤 삼성과 경쟁하고 있겠죠. 삼성 임원들은 노키아가 윈도폰을 채택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시름 놓았다고 합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노키아가 안드로이드폰을 만들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었겠죠.

노키아는 그 후 삼성전자 HTC 등이 윈도폰 진영에서 발을 빼고 안드로이드폰에 ‘올인’하는 바람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 전시장에서 노키아의 외로운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폰 메이커마다 부스에 안드로이드 깃발을 걸고 안드로이드폰 홍보에 열을 올리는데 노키아만 윈도폰을 전시해 놓았더군요. 관람객의 반응은 썰렁했습니다.

엘롭은 친정인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했습니다. ‘금의환향’이라고 해야 할지, ‘임무 완수’라고 해야 할지….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차기 CEO 유력 후보로 꼽힙니다. 엘롭이 퇴임 예정인 스티브 발머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된다면 ‘세기의 코미디’가 될 것 같습니다. 노키아 직원들이나 핀란드 사람들은 “속았다”며 분개하겠죠. 엘롭이 “트로이 목마는 아니었다”고 변명해도 믿지 않을 테고요.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