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IT 이야기

개발자 임모 씨는 2년 전 지하철에서 노트북이 든 가방을 분실했습니다. 졸다가 급히 내리면서 깜빡 놓고 내린 겁니다. 노트북에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진이 몽땅 저장돼 있다는데…. 노트북이야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어린 시절 사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죠. 임 씨는 백방으로 뛰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이날 이후에는 사진을 찍으면 N드라이브 등 클라우드 스토리지에 저장한다고 합니다.

구글 크롬북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미래의 노트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롬북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제(OS) 대신 구글 크롬 OS를 탑재한 노트북으로, 각종 프로그램과 파일을 하드디스크나 플래시 메모리 대신 클라우드(여기서는 구글 서버)에 저장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분실하더라도 데이터까지 잃을 우려는 없죠. 새 노트북을 사면 그만입니다. 크롬북은 프로그램과 파일을 기기에 거의 저장하지 않는 까닭에 사실상 ‘껍데기 기계’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덜렁 크롬 브라우저만 있습니다. 단순하고 작동 속도가 빠르고 가격이 저렴합니다. 크롬북에서 돌아가는 각종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자동으로 업데이트해 줍니다. 그래서 항상 최신 상태를 유지합니다. 다만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게 흠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9월 11일 열린 ‘인텔 개발자 포럼(IDF)’에서는 인텔 하스웰 프로세서를 탑재한 크롬북 신제품이 대거 공개됐습니다. 대만 에이수스와 일본 도시바가 크롬북을 처음 선보였고 선발 업체인 미국 휴렛팩커드(HP)와 대만 에이서도 하스웰을 탑재한 새 크롬북을 내놓았습니다. 에이수스와 도시바가 가세함에 따라 크롬북을 만드는 메이커는 삼성전자와 중국 레노버를 더해 6개로 늘어났습니다.
구글의 비밀 병기 크롬북, ‘윈도 왕국’ 무너뜨리는 결정타 되나
주요 노트북 메이커 대부분 동참

상위 노트북 메이커 중에서 크롬북을 만들지 않는 업체는 사실상 애플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C 시대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윈텔(윈도+인텔) 시대’를 구가했던 인텔도 이제는 크롬북 진영에 가세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혁명 전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스마트폰처럼 노트북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되는 날이 머지않을 텐데, 그렇다면 크롬북 같은 클라우드 노트북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한국에서는 액티브X를 깔아야 하는 사이트가 많은 데다 크롬북용 프로그램이 부족해 크롬북 사용하기가 다소 불편합니다. 아래아한글 파일을 읽을 수 없는 게 일례죠. 그러나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300달러 미만 노트북 시장에서 크롬북 점유율이 20~25%에 달했습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세계인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10대당 7대꼴로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고 이런 폰은 구글검색·G메일·구글지도 등 구글 서비스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구글이 PC 시장에서 윈도를 제치고 ‘크롬 천하’를 만든다면 모바일과 PC가 모두 구글 손에 들어갑니다. 워낙 편해서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구글 천하’가 되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