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진입…계속된 실망이 투자 막아

요즘 자산가들을 만날 때 ‘돈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부동산은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거래마저 잘 되지 않는다. 은행에 맡겨도 금리는 3% 이하다. 게다가 주가도 제자리걸음이기에 주식 투자에서 돈 벌기도 쉽지 않다. 과연 우리나라 개인들은 금융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얼마나 있고 어떤 금융자산을 선호하고 있을까.


부동산 가격 떨어지고 금리는 3%도 안 돼
우리나라 개인들이 금융자산을 살 여력이 있는지 알기 위해선 우선 개인의 금융자산과 부채를 살펴봐야 한다. 1998~2002년에는 개인의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예를 들면 1998년 651조 원이었던 금융자산이 2002년에는 1085조 원으로 1.7배 늘어났는데, 부채는 226조 원에서 535조 원으로 2.4배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개인의 금융자산÷부채비율이 같은 기간 2.9배에서 2.0배로 떨어졌다.

이때 우리 가계가 부실해진 주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째, 가계가 저금리에 적응하지 못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때 30%대까지 올라갔던 시장 금리가 2001년에는 6% 안팎으로 낮아졌다. 둘째,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돈을 벌었지만 투자는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였다. 은행은 기업이 돈을 가져다 쓰지 않으니 가계 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1998년에 은행의 대출 중 기업이 차지하는 몫이 71%였으나 2002년에는 52%로 낮아졌고 가계 대출은 같은 기간 29%에서 48%로 높아졌다. 금리가 갑자기 낮아지고 은행이 돈을 값싸게 쓰라고 하니 일부 가계가 ‘은행 돈이 내 돈이다’라는 식으로 은행 돈을 빌려 소비하고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사들였다. 셋째, 정부도 가계 부실에 기여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그해 우리 수출이 13%나 줄어들었다. 그래서 정부는 금리를 인하하는 등 내수 부양책을 썼다. ‘저금리에 적응하지 못한 가계, 은행의 가계 대출 증가, 정부의 내수 부양’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가계가 부실해진 것이다.

그러나 2003년부터 개인의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은 2550조 원으로, 부채(1182조 원)보다 2.2배 더 많다. 2002년 2.0배에 비해서는 약간 개선된 셈이다. 이러한 금융자산 및 부채의 잔액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금 운용 및 조달 측면에서도 개인의 자금 잉여가 늘고 있다. 개인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금융회사에 저축한 돈이 빌려 쓴 것보다 더 많다. 반면 기업은 금융회사에 돈을 차입해 투자한다. 그래서 개인을 ‘자금 잉여 주체’, 기업을 ‘자금 부족 주체’라고 한다. 2002년에 우리나라 개인들의 자금 잉여는 마이너스 5조 원이었다. 개인들이 금융회사에서 빌려 쓴 돈이 저축한 돈보다 5조 원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개인이 기업처럼 자금 부족 주체가 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꾸준하게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개인 부문의 자금 잉여가 87조 원으로 규모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가처분소득 대비로는 12%로 1998년 26%보다는 훨씬 낮다. 올해 상반기에도 58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조 원보다 더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은 늘어난 금융자산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을까. 지난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개인은 2550조 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현금과 예금이 1157조 원으로 45%를 차지한다. 2005년 48%에서 3% 포인트 낮아졌다. 금리가 떨어져 은행예금으로 만족할만한 수익률을 거둘 수 없었고 가계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자산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익의 눈] 왜 내 돈은 늘어나지 않을까
개인이 은행에 맡긴 돈이 줄어든 만큼 보험 및 연금을 찾는 돈은 꾸준하게 늘고 있다. 개인의 금융자산 중 보험 및 연금 비중이 2005년 22%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28%까지 크게 증가했다. 노후를 대비한 보험 수요가 증가한 이유도 있지만 국민연금 등 일종의 강제저축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 미국형보다 일본형 가능성 커
주식과 채권 투자 비중은 2011년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주식 비중 감소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이 2007년에는 21%까지 올라갔지만 2011년부터는 비교적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올해 6월에는 17%까지 낮아졌다. 주식 투자 금액 자체도 같은 기간 439조 원에서 425조 원으로 줄었다. 이는 주가가 추세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조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231까지 올라갔던 주가지수(코스피 기준)가 그 이후로는 주로 1800에서 2000 사이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인들이 주식시장에 실망했기 때문에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2007~2008년 주식시장에 대한 낙관적 시각이 지배하면서 대부분의 증권사와 은행들이 ‘주식형 펀드 캠페인’을 벌였다. 증권사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은행까지 수입원 다변화를 외치면서 주식형 펀드로 자금을 끌어 모았다.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은행의 저축성 예금에 남아 있어야 할 돈들이 주식 투자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07~2008년 8월 사이에 주식형 펀드로 98조 원 정도의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필자도 당시 한 증권사에 근무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랩’ 상품을 만들어 2000억 원 이상을 끌어들인 적이 있었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면서 가장 부끄러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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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많은 돈이 주식시장에 들어오자마자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주가가 폭락했다.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개인들의 주식시장에 대한 믿음도 사라져 갔다. 그 이후 주식시장에서 개인들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현재 주식형 펀드 잔액이 89조 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던 2008년 8월 144조 원에 비해 무려 55조 원이나 줄었다.

우리나라 개인의 금융자산 운용을 미국 일본과 비교해 보면 <표 2>와 같다. 우선 미국 개인은 금융자산 중 현금 및 예금 비중이 2013년 3월 현재 14%로 매우 낮다. 그 대신 주식 비중은 34%로 높다. 보험 및 연금 비중은 28%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 개인은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일본 개인들은 금리가 거의 0%에 가까운 데도 주로 돈을 은행에 맡기고 있다. 현금 및 주식 비중이 54%로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대신 주식 비중은 8%로 미국의 4분의 1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개인들의 자산 배분이 미국 쪽으로 갈까, 아니면 일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일까. 우선 개인의 자산 중 보험 및 연금 비중은 28%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수준에 이르러 더 이상 올라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금 및 예금과 주식 보유 비중의 변화에 있다. 미국처럼 예금 비중은 낮고 주식 비중은 높아질까, 아니면 일본과 같이 예금 비중이 높아질까.

우리 경제 환경을 보면 일본 쪽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 안팎으로 떨어지는 등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90년대 초에 일본이 보여 줬던 것처럼 이런 국면에서 주가는 추세적으로 상승하기 어렵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겠지만 주가지수는 잘해야 일정 범위 내에서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을 오래 가지고 있다고 해서 돈을 버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간에 따라 자산 배분을 적절히 하는 헤지 펀드가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07~2008년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많은 투자자들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개인의 자산 중 주식 비중이 현재보다 크게 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우리 주식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