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NBT파트너스 대표

요즘 가끔 이런 회사들을 만나곤 한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한 곳이다. 직원도 30~40명에 달해 초기 벤처기업 수준이 아니다. 스타트업 코너에 소개하기 약간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이 회사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 특출한 회사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의 변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업가의 창업 리스크가 더 커졌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한국의 스타트업] 스마트폰 초기 화면 ‘집중’…대박 ‘성큼’
NBT파트너스가 그런 회사다. 이 회사는 또 최근 1년 새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터. 팀이 좋거나 아이템(시장)이 훌륭하거나 아니면 창업자의 비전과 목표가 뚜렷하든가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궁금증을 갖고 NBT파트너스를 찾아갔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남짓에 벌써 매달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회사는 분명 환상적인 팀 조합이 최강의 실행력을 발휘할 때 어떤 결과가 가능한지 마음껏 보여주는 사례인 듯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04학번인 NBT파트너스 창업자 박수근 대표는 대학 1학년때 부터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벤처로 큰 성공을 거둔 창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일종의 동경 같은 것을 갖고 있었어요.” 박 대표가 전하는, 그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창업의 의지가 싹튼 시점에 대한 설명이다.

창업 방법을 찾던 그에게 마침 첫 시도로 좋은 기회가 왔다. 선배들과 함께 이토프라는 회사를 창업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 2008년 이 회사 창업 초기 창업 멤버로 들어간 박 대표. 이토프는 2G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쿠폰을 만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당시 그에겐 학교생활이 우선이었다. 학교로 복귀하면서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고 2010년 졸업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컨설팅 업체인 BCG에 입사했다. “별다른 경험 없이 맨주먹으로 창업하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면 큰 그림을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컨설팅 회사에서 느꼈던 한계
컨설팅 회사에서 그가 느꼈던 것은 ‘한계’였다. 대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하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업무의 한계, 현재의 중요 이슈에만 매몰돼 그다음의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한계가 무겁게 느껴졌다.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을 찾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이 생각을 했어요. 이 염원을 담아 회사 이름도 나중에 그렇게 지은 겁니다.”(NBT파트너스의 NBT는 ‘Next Big Thing’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그는 BCG 출신의 두 사람과 힘을 모았다. 1년 선배인 김병완 이사,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박광연 이사 모두 BCG에서 배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광연 이사는 창업 경험도 갖고 있었다. 경영과 공학을 전공으로 한 창업 멤버들이 모인, 이상적인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필요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경험이 축적된 개발 고수가 필요했던 것. 창업을 생각하면서 박 대표는 2012년 초부터 CTO 후보군을 물색하고 다녔다고 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마침 개인 개발자 출신으로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곽근봉 이사를 만나고 이 사람이다 싶었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석사 출신인 곽 이사 역시 창업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 박 대표는 뜻이 통했다. 곽 이사가 들어오면서 창업 멤버가 완성됐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자랑하는, 이른바 ‘엄친아들’이 2012년 여름 한자리에 모여 NBT파트너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뚜렷한 아이템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다 모였네. 자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이게 이들이 처음 모여 나눈 대화 주제였다고 한다.

“스마트폰 초기 화면을 잡는 자에게 무한한 기회가 있다!” 이들이 넥스트 빅 싱의 단초로 생각한 것은 바로 스마트폰 초기 화면. 사실 이들보다 앞서 스마트폰 초기 화면을 장악할 필요성을 느낀 기업가들과 마케터들이 많았다. 초기 화면을 잡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일 따름이었다. 배경화면을 비롯해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스마트폰 초기 화면 ‘집중’…대박 ‘성큼’
‘초기 화면을 잡으려면 사업 모델과 서비스명이 모두 심플하면서도 단순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판단. 그러려면 노골적일수록 좋고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야 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꺼이 초기 화면을 내 줄 수 있으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있었다. 즉 명칭만 들어도 사람들이 서비스를 바로 알고 서비스를 통해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했다. 이런 논의 끝에 캐시슬라이드 서비스를 기획·개발했다.

정말 숱하게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서비스명을 들어봤지만 캐시슬라이드처럼 노골적인 명칭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밀면(슬라이드), 돈(캐시)을 준다고 하니 얼마나 분명한가.


40억 원 투자 유치, 이제는 해외로
캐시슬라이드 앱을 다운받아 로그인하면 그때부터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캐시슬라이드가 제공하는 광고가 뜬다. 이 광고를 슬라이드할 때마다 소액의 리워드(적립금)가 쌓이는 방식. 잠금 해제만 해도 적립금이 차곡차곡 쌓여 용돈을 모을 수 있는 콘셉트다. 광고 자체가 정보인 요즘에는 소비와 관련된 유용한 정보가 될 수도 있다. 광고뿐만 아니라 만화·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기존 앱의 광고 방식에 비해 스마트폰 초기 화면을 직접 공략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파워풀한 광고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캐시슬라이드 사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출시 8개월 만에 다운로드 수는 700만을 돌파했다. 지난 6월 둘째 주 기준으로 1일 액티브 유저 수가 230만 명을 넘어서면서 전체 안드로이드 앱 가운데 일간 사용자 수 기준으로 8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용자 급증은 투자 유치에도 효과적이었다. NBT파트너스는 지난 7월 초 4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스타트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의 투자 유치다.

CJ창업투자·MVP창업투자·다음커뮤니케이션 등 3사가 참여했다. 이미 이 당시 캐시슬라이드는 월매출 20억 원을 올리고 있던 시점. 모바일 앱 개발사가 서비스 출시 6개월여 만에 대규모 투자를 받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투자뿐만 아니라 광고 및 서비스에 대한 전략적 제휴도 체결했다. 다음은 이번 계약을 통해 NBT파트너스에 지분 투자를 하는 한편 다음의 서비스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휴 범위를 넓혀 나간다는 계획도 밝혔다.

NBT파트너스는 투자 유치를 계기로 해외 진출을 확대해 시장을 넓히는 한편 국내에서는 10대와 20대에 쏠린 사용자 기반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사용자는 급격히 늘었지만 다수의 사용자가 젊은층에 몰려 있어 이런 쏠림을 완화하는 게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일 기준으로 캐시슬라이드의 사용자 중 10대와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이런 쏠림이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캐시슬라이드는 이래저래 모두에게 좋지만 사용자로서는 적립금이 지나치게 소액이라는 게 문제다. 즉 슬라이드를 한 번 할 때마다 쌓이는 15원에서 150원 수준의 적립금이 30대 이상에겐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박 대표는 “현재 캐시슬라이드는 해외 진출과 함께 30대 이상의 사용자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스마트폰 잠금 화면 서비스는 시작일 뿐이고 넥스트 빅 싱을 만들어 가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