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인의 향기’ 속 똑똑한 운전 도우미처럼 사용자 사로잡을 수도

20여 년 전에 상영된 ‘여인의 향기’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인 프랭크 역의 알 파치노와 찰리라는 두 남자의 자살 여행 이야기다. 이 영화의 제목이 ‘여인의 향기’인 이유는 알 파치노의 대사에서 나타난다. 그는 세상에서 F로 시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여인(Female)과 페라리(Ferrai)라고 말한다. 내게 무척 강한 인상을 남긴 부분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페라리인데, 여인의 향기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프랭크가 미친 듯이 몰아대는 페라리. 하지만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조수석에 앉은 찰리 때문이다. 그는 프랭크의 지각과 인지 능력, 운전 능력, 도로 상황을 종합해 정확하고 적절하게 방향을 알려준다. 찰리 같은 똑똑한 도우미가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 운전은 혼자 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완성차 업계는 2020년대 근미래 자동차 트렌드 분석에 여념이 없다. 이들이 서슴없이 뽑아내는 키워드는 무인 자동차로 대표되는 자율 주행, 인터넷에 연결된 커넥티드 카, 그리고 전기자동차다.
<YONHAP PHOTO-1357> Tesla CEO and co-founder Elon Musk unveils the Tesla Motors Model X electric vehicle at the Tesla Design Studio in Hawthorne, California February 9, 2012. Tesla Motors Inc on Thursday showed off a protoype of its Model X, a battery-powered SUV that represents the company's bet that consumers will buy a range of electric vehicles spun from a common platform. REUTERS/David McNew (UNITED STATES - Tags: TRANSPORT BUSINESS)/2012-02-10 17: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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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la CEO and co-founder Elon Musk unveils the Tesla Motors Model X electric vehicle at the Tesla Design Studio in Hawthorne, California February 9, 2012. Tesla Motors Inc on Thursday showed off a protoype of its Model X, a battery-powered SUV that represents the company's bet that consumers will buy a range of electric vehicles spun from a common platform. REUTERS/David McNew (UNITED STATES - Tags: TRANSPORT BUSINESS)/2012-02-10 17:18:59/
무인 자동차 내년 가시화될 것
먼저 자율 주행을 보자. 구글의 무인 자동차가 독보적이다. 구글 엑스(X) 프로젝트의 하나로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무인 자동차로 개조했는데 환경을 인식하고 생각해 알아서 움직인다. 이미 사람이 모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열심히 로비한 덕분에 2011년 네바다 주에서 그리고 곧이어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주에서 무인 자동차를 합법화해 냈다. 단 조건이 있다. 항상 두 사람이 자동차에 탑승해 있어야 하며 이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운전석에 앉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게 합법화됐다는 것은 일대 도약이다. 애플도 곧 이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얼마 전 새 운영체제를 발표하면서 복잡한 교통 속에서도 안전하게 움직이는 상황을 데모하면서 그들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내년부터는 제한적이나마 무인 자동차 기술이 가시화될 것 같다.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에는 시속 200km 내에서 자율 주행을 할 수 있는 무인 자동차 기능이 포함될 전망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에 연결되는 커넥티드 카다. 작금의 자동차는 인터넷과 연결돼 있지 않다. 그래서 교통방송을 틀고 자기 상황이 나오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가 인터넷에 연결되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체 교통 상황을 차가 모니터링할 수 있고 당장에는 앞뒤 차 사이에서 통신하며 거리도 조절하고 안전을 담보해 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상통화에서부터 음악·영화 등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이런 커넥티드 카의 필요성은 스마트폰 때문에 각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람들은 차에서 스마트폰을 많이 쓰고 이는 결국 인터넷을 통한 연결과 정보 소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전기자동차다. 전기차라고 하면 블랙 스완처럼 등장한 신생 자동차 회사 테슬라다. 테슬라 자동차는 6000만 원대부터 1억 원 정도의 상당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 모델 S가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인데,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 시리즈 같은 프리미엄급이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파워트레인이라고는 바퀴에 붙은 모터가 전부다. 그 덕분에 엔진 소음이 없고 속도는 최고 시속 200km까지 나오고 고성능 배터리를 달면 시속 100km 주파에 약 4초 걸리고 400km까지 주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기업인 테슬라가 만들어 내는 혁신의 화룡점정을 전기차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는 다음에 밝힌다.

전통 완성차 업체들도 오래전부터 전기차를 연구했지만 현실성이 없어 못 먹는 감이었다. 이유는 배터리 문제와 충전소 설치 때문이었다. 최근 기술이 좋아져 집에서도 한 번 충전에 200km 이상 갈 수 있고 전기요금도 저렴해졌지만 충전 시간은 여전히 최저 30분에서 한두 시간 걸린다. 부산 한 번 가려면 충전소에 꼭 한 번은 들러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도요타·닛산·BMW 같은 완성차 기업은 수소 연료전지를 선호한다. 더군다나 10년 보증을 내걸고 헤비급이 된 현대·기아차에서 2~3년 수준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테슬라의 ‘모델 S’를 필두로 쉐보레의 ‘볼트’, 닛산의 ‘리프’가 있고 내년이면 현대·기아차의 ‘쏘울 EV’와 BMW의 ‘I3’가 출시된다.


IT가 수렴청정하는 자동차의 미래
2020년대 자동차의 미래는 현대·기아차 같은 전통 완성차 산업이 아닌 IT 기업이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IT에서 바라보는 자동차는 인간·자동차 상호작용(HMI)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관점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 기계 자동차의 제조보다 인지 컴퓨팅 기반의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우선 구글의 로보택시(Robo-Taxi) 콘셉트를 보자. 로보택시는 마치 택시처럼 손님이 부르는 곳으로 가서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작한 우버(Uber) 콜택시 서비스에 구글이 투자한 점을 본다면 구글은 자동차를 이용한 서비스 장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토로라를 인수했듯이 직접 차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무인 자동차 기반의 서비스로 뚫어야 하는 난관은 각국의 법규뿐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운전자가 아무 근심 없이 운전대에서 두 손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차를 탈 수 있는 소비자의 마음이다.


2020년대 자동차의 미래는 현대·기아차 같은 전통 완성차 산업이 아닌 IT 기업이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전통 기계 자동차의 제조보다 인지 컴퓨팅 기반의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무인 자동차보다 정말 무서운 것이 애플의 시리다. 시리의 미래는 ‘여인의 향기’에서 나온 찰리 같은 도우미라고 할 수 있다. 말만 하면 시리는 길안내를 해 주고 전화도 걸어 주고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물론 내 마음을 알아주며 가족 행사를 챙겨 주고 페이스북을 읽어 주는 똑똑한 개인 비서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의 커넥티드 카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연동된 시리는 콘텐츠와 서비스의 유통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도요타·혼다·BMW·메르세데스-벤츠·페라리·쉐보레·재규어·아우디·크라이슬러·볼보·랜드로버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2020년쯤 시리의 기술 수준을 가늠하긴 어려워도 그 위력은 대단할 것이다.

그리고 시리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자동차 상호작용의 사용자 경험을 바꾸게 될 전망이다. 무인 자동차가 안전을 보장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운전하는 맛이 사라지고 자동차의 로망도 앗아가게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똑똑한 시리는 마치 ‘여인의 향기’에서 나온 찰리같이 운전자에 맞춰 기억하며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며 협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리를 사랑하는 드라이버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구글·애플·테슬라 같은 IT 업체가 유린하는 근미래 자동차의 백미는 인간·자동차 상호작용의 사용자 경험 기술이다. 그래서 자율 주행, 연결, 전기차로 대표되는 근미래 자동차의 펀더멘털은 전자자동차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와 서비스의 플랫폼이다. IT 기업은 부품을 2만 개씩 써가며 무거운 자동차를 만들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가볍고 움직임이 빠르기에 깡통 같은 자동차의 내용물을 서비스로 채우려고 할 것이다. 최근 닛산·포드·아우디 같은 완성차 업체가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짓고 제너럴모터스(GM)나 BMW가 벤처 펀드를 만들고 인텔이 캐피털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완성차 기업이 모기를 보고 칼을 뽑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 연구소장 kwangsu.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