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공학과 정보통신기술 결합해 오류·오작동 가능성 낮춰

원격의료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정부는 국민 편의성과 창조 산업 관점을 강조하고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불러올 국민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걱정한다. 양측 모두 맞는 말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주장을 살펴보고 그 간극을 줄여 보고자 한다.
[조광수의 IT 심포니] 원격진료 의료사고 해결사 ‘의료 UX’
먼저 정부는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지역이나 계층이 원격의료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병원 가정의학과가 2002년부터 실시한 원격의료 시범 사업처럼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나 만성 질환자가 병원을 찾아오는 대신 원격의료를 통해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조차 불법인 상황에서 원격의료는 의료 서비스의 새 장을 열 수 있다.

또한 해외 동포나 외국인이 우리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한다. 이미 의료 관광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어 이는 환상이 아니다. 특히 서울도 아닌 대전에 자리한 선병원의 사례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원격의료 때문은 아니지만 선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 연 400%씩 증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원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방문을 고려하는 이들을 위한 의료 상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와 원격의료를 잘 조합하면 초국경 의료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지만 이미 미국·일본·호주·캐나다·핀란드 등 나라에서 원격의료 기술과 서비스를 축적하며 성큼성큼 걷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44개 주와 워싱턴D.C.가 원격진료를 허용했고 기술·제도·법적인 정비를 통해 상용화하고 있다.


의사들, 사고 우려로 원격진료 반대
미국에선 스마트 시대에 맞춰 2013년 10월 초 온라인 의료 업체인 ‘아메리칸 월’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약 처방도 받는 원격의료 영상통화 서비스가 시작됐다. 예를 들어 부정맥이 발생한 즉시 의사와 연결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보험사인 웰포인트(WellPoint)는 IBM의 인지 컴퓨터 왓슨(Watson)을 이용해 암 환자의 치료를 상담해 주는 등 여러 가지 개인화된 원격의료 서비스를 출시한다. 구글과 애플도 이미 원격의료와 관련된 기술과 국경을 넘는 서비스를 가시화하고 있다. 이 밖에 삼성 갤럭시 기어나 구글 글래스, 나이키 손목밴드 등 착용형 컴퓨터인 웨어러블 기기들이 일상에서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다.

원격의료는 가정의 환자와 병원의 의사를 연결하기 위해서만 쓰이지 않는다. 병원 내에서조차 의사와 환자는 사실상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TV 드라마에서처럼 병실에 누워 있던 환자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보호자나 간호사가 발견해 도움을 요청한다. 즉 병원 내의 환자가 의사나 간호사와 항상 함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24시간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데도 원격의료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3년 1월 최초로 병원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원격의료 로봇을 승인했다. 그리고 구글 글래스를 사용하면 초보 의사가 수술하는 장면을 원격지의 전문의가 함께 보면서 도움을 주는 협동 수술을 할 수 있다.

메드시티(MedCity) 뉴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원격의료에 참여하는 환자는 현재 20여만 명 수준이며 2017년에는 만성 질환자를 중심으로 13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이미 일선 의료 현장에서 원격의료 유사 행위가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을 이용해 환자가 병원을 찾기 전에 자신의 환부를 찍은 사진을 보내 문의하고 그 답변을 토대로 병원을 찾을지 결정하는 일이 있다. 일선 의사는 곤혹스럽지만 이건 불법이라며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의료사고 상당수는 의료 기기 사고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서울 여의도공원에는 의사 2만여 명이 모여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KBS 1TV 심야토론에 출연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휴대전화로 진료할 때 오진율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편의성만 내세워 환자들이 초진 진료도 원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정부는 이 정책이 얼마나 안전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시범 사업조차 하지 않았다”고 원격의료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정부의 창조 산업적 지향보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우선시 하는 의사에 입장에서 이런 우려는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하다. 전통적인 의료 장면에서도 의료사고에 따른 사망은 상당하다. 미국에선 의료사고에 따른 사망이 심장 질환과 암 다음인 3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보기술(IT)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격의료에선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날 것이 명약관화하다. 우선 진료하는 의사와 진료 받는 환자가 한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면대면처럼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서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오진이나 잘못된 치료로 귀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한 의사는 환자와 비디오 콘퍼런싱 시스템인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 진료했다가 규제 약물을 과다 처방했다. 이 때문에 자격정지 2년 처분을 받았다.

의료사고 중 상당수는 의료 기기(medical devices) 사용과 관련된다. 1991년 기준으로 노벨(Nobel)은 미국의 의료 기기 관련 사고의 50%는 의사나 간호사가 일으킨 것이라는 보고했다. 입원 관련 전산 시스템의 입력과 관리 사고에서부터, 랩에서 혈액 테스트를 할 때 의료 기기에서 제시하는 결과를 잘못 이해한다거나 입원비와 치료비를 청구할 때 실수가 나기도 하고 의사가 손 글씨로 쓴 처방전을 온라인 시스템으로 타이핑하며 잘못 입력되기도 하고 병실이나 수술실의 의료 기기를 잘못 이해하거나 실수로 작동해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영아를 치료하던 의사는 산소량 조절 손잡이의 눈금을 1과 2사이에 맞춰 놓았다가 산소 결핍이라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산소 공급기는 1, 2, 3, 4 눈금에서만 정확한 양의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소량 조절 손잡이를 돌리면 각 눈금마다 탁탁탁 하면서 멈춰야 하는 데도 부드럽게 죽 돌아갔다. 그래서 의사는 적정 산소량을 1.5 정도로 생각하고 눈금을 맞췄다가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원격의료 상황에서 의료기기를 사용해 측정 등의 일부를 원격지의 환자가 해줘야 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심신이 허약한 만성 질환자나 노약자뿐만 아니라 저학력자, 난독증 환자, 신체나 지적 장애인 등은 의료 기기를 잘못 사용할 가능성 있기 때문에 전대미문의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원격의료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의료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 필요하다.
원격의료는 여러 장점을 지녔고, 특히 인지 정보통신기술(Cognitive ICT)과 융합될 때 파괴력을 지닌다. 더군다나 기존 병원에서는 내놓을 수 없는 고가의 고급 의료 서비스에서부터 매우 값싼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가능할 전망이다. 이런 서비스는 국경을 넘어 제공되고 심지어 약물도 직접 배송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가 염려하는 원격의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의료 기기의 사용 편의성과 안전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이런 분야를 의료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혹은 의료 UX라고 부른다. 모든 의료사고는 인간의 인지(cognitive) 문제라는 스미스와 장의 정의처럼 의료 UX는 의사와 간호사, 환자 등 의료 기기 사용자들이 가진 시각·청각·촉각·후각 등 감각과 지각, 기억력·사고력·판단력 등의 인지적 제약을 고려해 쉽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의료 기기를 만들고자 한다.

예를 들어 산소 공급량 조절기는 의사나 간호사의 인지 체계에 맞춰 실수를 일으키지 않게 만들었어야 한다. 스마트폰의 원격의료 애플리케이션도 의사와 환자 모두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이것도 의료 UX에서 다룬다. 의료 UX는 수술실에도 적용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수술실에는 모니터가 없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모니터가 있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의사도 많다. 그리고 감염의 우려 때문에 모니터를 만질 수 없다. 이 때문에 의료 UX에선 화면을 직접 만지지 않고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제스처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기도 한다.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 연구소장 kwangsu.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