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태로든 대자본에 편입되지 않으면 부모의 경제 계급이 하향되고 자식의 교육 계급마저 하향되는 현실이 고착화되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광명시 우리 동네 이름은 신촌(新村)이었다. 행정명은 소하리였지만 주변 일대에서 모두가 신촌이라고 불렀다. 금성전파사·대한라사·금명원·소하슈퍼·수원 쌀상회 등이 몰려 있는 동네여서 새 동네 ‘신촌’이라고 불렸고 우리 가게 이름도 신촌양품점이었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활력이 있었다. 양장점·라사점도 직원들이 있었고 쌀가게 아저씨는 부지런히 배달을 다녔다.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켜 놓는 전파사 앞에 사람들이 모였고 일대 사람들이 동네 슈퍼에 잡화를 사러 왔다. 변두리에서 장사를 하는 신촌 사람들은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동네 가게를 해서 집을 사고 자식들을 번듯한 대학에 보냈다. 동네 양품점 주인이었던 우리 부모님 역시 남 눈치 보지 않고 밥 벌어 먹는 사람 특유의 당당함이 있었다. 공부를 곧잘 한 자식들을 당시 최고 인기였던 육군사관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사셨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가게로 돈을 벌기는커녕 현상 유지라도 하려면 쌀가게·빵집 대신 대형 마트의 종업원을, 재벌 빵집 프랜차이즈를 해야 자기 인건비라도 건진다.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장사는 음식점·미용실뿐이고 아무리 생각하고 둘러봐도 할 만한 것이 없다.

입시제도 또한 이제는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만 사줘도 좋은 대학 갈 놈은 가던 시절이 아니다.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학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이 됐다.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소위 ‘인 서울’하기도 힘들고 명문대는 외고·과학고 졸업생들이 휩쓰는 현실에서 학벌이 고등학교 이전에 이미 판가름 난다. 부모가 아동기부터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영어유치원이다, 보습학원이다, 명문고 진학반이다 경제력으로 밀어붙여야 자식의 대기업 취업이 가능한 학벌이 만들어진다. 철이 들기도 전에 부모의 능력에 따라 이미 초등·중학교 이전에 노는 물이 달라져 향후의 학벌이 판가름 나는 것이다.

대기업·공기업·전문직 이하의 소득 계층으로 내려오면 자식의 학벌을 위해 남만큼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하의 계층은 부모님 세대처럼 ‘내 자식은 좋은 대학 보내서 넥타이 매고 나보다 더 폼 나게 살게 하겠다’는 꿈을 꾸기가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우리 동네 세탁소집 형은 실제로 좋은 대학에 갔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광명시 변두리의 가게와 방이 붙어 있던 세탁소집 아들도 적어도 시작만은 남부럽지 않은 출발 선상에 설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주위의 세탁소집 아들은 그 형처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무엇을 해도 먹고살 자신이 있던 세상에서 점점 악착같이 여기라도 붙어 있어야 되는 세상이 되어 간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출세하고 못하고가 제 복이었던 세상에서 부모 경제력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결정되는 세상이 되어 간다.

문제가 더 고착화되기 전에 법인세를 올리면 투자를 줄여 안 되고, 환율이 내리면 수출이 안 되니 정부가 나서야 하고, 영재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는 특수고는 정말 필요한지 등 많은 문제들을 다시 따져봐야 할 때다.
[경제산책] 세탁소 집 아들은 명문대에 갈 수 있나
정지홍 RHT 대표이사
1973년생. 2000년 미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수학 및
컴퓨터공학 전공. 2006년 시카고대 대학원 금융수학 석사.
2001년 미 필립스그룹 메드퀴스트 근무. 2006년부터
KB국민은행·IBK투자증권 등에서 근무.
2011년부터 리스크헷지테크놀러지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