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항암 밥상’ 정신우 푸드 스타일리스트

[만난 사람 맛난 인생] “몸이 힘들면 마음도 이겨내지 못하죠”
1년 전의 일이다. 요리 잡지 음식 촬영 차 노량진 수산시장에 나왔다가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트럭과 부딪쳤다. 발목 7군데, 정강이뼈 2대가 부러졌다. 철판 2개, 철심 9개를 심고 3개월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요리사들이 가장 탐내는 방송 프로그램인 EBS의 ‘최고의 요리비결’ 출연이 물거품이 됐다. 레스토랑 창업 컨설팅, 식품 회사의 광고 촬영까지 달력에 빼곡했던 1분기 일정이 올스톱 돼버렸다. 남 탓을 하며 좌절할 만한데 3개월 뒤 훌훌 털고 일어나 밀린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며 2013년을 마무리했다.

올 1월 초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수술에 필요한 사전 검사를 받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는다. ‘악성 흉선암 4기.’ 간 등 다른 장기에도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다. ‘짧으면 9개월, 길어도 3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투병 방법이라곤 암세포가 더 이상 퍼져 나가지 못하게 막는 항암 치료와 식이요법밖에 없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고 속이 뒤집어지는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 “내 몸에 왜 이런 몹쓸 암 덩어리가 생긴 것이냐”며 길길이 날뛰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인데 그의 목소리는 밝다. 아주 밝다. 삭발한 머리도 감추지 않는다. 시원하게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아주 환하게 웃는다.

정신우(45). 그의 직업을 소개하는 단어는 무척 모호하다. 요리사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요리 연구가나 푸드 스타일리스트라고 칭하기도 그렇다. 본인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떤 것을 붙여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 부엌칼을 든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 귀공자 분위기의 잘생긴 외모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요리사’란 호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와 말기 암 판정
“요리사의 세계는 무척 담이 높더라고요. 요리사라면 셰프(총주방장)로 불리는 게 최고인데, 다른 요리사들이 한동안 정 셰프라고 불러주지 않더라고요. 짧은 시간에 많은 손님들을 치러야 하는 음식점의 ‘업장 요리’와 주부들의 ‘가정 요리’는 차원이 다르다는 개념이죠. 한 10년 일하고 나니 셰프로 인정해 주더라고요.”

정 셰프에게 투병 이야기를 듣고자 해도 자꾸 일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 요리와 음식을 통해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게다.

“작년에 사고가 났을 때는 편안하게 모든 걸 내려놓았어요. 잠시 쉬어가자는 생각이었지요. 요리 관련 책뿐만 아니라 인문 서적까지 두루 읽으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이번엔 쉽지 않네요.”

암 투병 환자가 ‘쉽다’란 말을 입으로 내뱉기는 무척 어렵다. 암 판정을 받고도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말하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페이스북에 고스란히 공개한 것. 아내와 부모님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암 발견 직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요리사 선배를 보내면서 ‘힘이 들면 주위에 손을 내밀자’는 답을 얻은 것. 그러면서 이렇게 심경을 표현했다.

“조금만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맞서볼 생각입니다. 열심히 치료할 테니, 가능한 한 오래오래 치유해 볼 테니 많이 도와 주세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맛있는 밥도 사 주세요.”

이후 그의 페이스북엔 매 끼니마다 밥상이 올라온다. ‘기적의 정 셰프 항암 밥상’이다. 암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따라 해 먹어 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직접 만들어 먹는 식단이다. 아직까지 육체적인 고통이 덜해 손수 장을 보기도 한다. 지인들이 보내준 항암 반찬이 오를 때도 있다. 대부분이 신선한 유기농 채소가 중심이 된 엄마 맛 밥상이다.

“환자가 돼서 식단을 받아 보니 억지로 먹어야 할 정도로 괴로운 음식이 너무 많더군요. 흔히 ‘암 환자는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말라 죽는다’고 하던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탤런트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변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영양의 균형이나 음식의 밸런스도 중요하지만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 즉 에너지원 공급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술받는 것은 포기했지만 항암 치료와 음식으로 암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항암 밥상의 주된 목적은 식욕을 유지하는 겁니다. ‘밥맛이 없으면 살맛도 없다’란 말도 있잖아요. 밥맛이 없으면 잘 차려진 만한전석(滿漢全席)도 그림의 떡이란 얘기죠. 결국 항암 밥상은 일반 밥상보다 훨씬 맛이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 식단을 짭니다.”

그의 식단에는 고기와 생선 등 육류가 자주 등장한다. 지구력을 받쳐 주는 단백질 섭취를 빠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저염식이 원칙이지만 입맛이 돌 정도의 최소한의 간은 유지한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올라온 ‘돼지의 만찬’엔 풋마늘대가 나온다. 장을 보다가 제철 재료라 구입한 것인데 살짝 데쳐 무치란다. 돼지고기는 무항생제 녹돈 삼겹살을 구입해 된장·파뿌리·마늘·소주·겨우살이를 넣고 푹 삶을 것. 그리고 바지락 살과 땡초(청양고추)를 넣어 된장국을 끓이고 현미밥을 준비한다. 여기에 흑두부 지진 것, 김치볶음, 취나물볶음, 오이무침까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생겼다. 사진과 함께 이런저런 군침 도는 이야기도 더한 뒤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이겨내지 못합니다. 환우 여러분, 힘들어도 한 입만 더 드세요”라고….

그의 경력은 무척 특이하다. 어릴 적 꿈인 사진작가와 무대 미술가를 접고 신인 연기자 제한 나이인 28세에 MBC 문화방송 공채 연기자로 뽑혔다. 송일국·박솔미 씨 등이 동기다. KBS TV 미니 시리즈 ‘갈채’란 드라마의 주인공도 했다. 그에게는 ‘남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1호’란 별칭도 따라다닌다. 연기 생활을 떠나 한 포털 사이트의 식도락 동호회 방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중 푸드 스타일리스트 소질이 있다는 주변 사람의 말을 듣고 ‘음식’에 뛰어들어 얻은 별명이다. 2003년 푸드채널 방송의 ‘정신우의 요리공작소’란 프로그램에서 요리와 진행을 맡으면서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늦깎이 요리 입문임에도 특유의 바지런함과 친근감으로 남들보다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뒤늦게나마 음식을 한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에요. 사진작가나 무대 미술가, 연기자를 하고 있다면 암에 질질 끌려 다닐 텐데, 음식 일을 한 덕에 이렇게 항암 밥상으로 대항하고 있잖아요.” 모든 것이 긍정적인 정 셰프. 그래도 다른 암 환자들처럼 남모르게 견디고 있는 것도 많다.

“아침에 눈뜰 때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진짜 살아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 거죠. 그럴 땐 펑펑 소리 내 울고 싶기도 해요.” 물기가 어린 큰 눈을 통해 살짝 속내를 비치다 말고 이내 감춰 버린다. 두툼하게 입은 옷 속으로 핫 팩도 보인다. 체온이 갑자기 떨어질까봐 발바닥부터 종아리, 양쪽 어깨 등 이곳저곳 핫 팩으로 무장(?)하고 나왔단다.

“곧 요리 교실로 운영하던 서초동 스튜디오와 마포의 아파트를 정리해 흙을 밟을 수 있는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할 생각입니다.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음식과 환경을 통해 암을 극복하는 사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물론 항암 치료도 힘이 닿은 데까지 계속 받을 생각입니다.”

1월 초 정 셰프가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들뜬 모습이었다. “퇴원하면 곧바로 제 이름을 단 홈쇼핑 신제품을 론칭할 겁니다.” 또 “신학기엔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도 해요.” 희망에 부풀어 수술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그 모습 그대로 ‘훈꽃남 기적의 정 셰프’로 돌아와 60, 70세에는 이 땅의 많은 후배 요리사들을 이끌어 가는 리더 셰프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