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화폐 문화 발달한 한국 시장 주목…팀원 전문성도 높은 점수

[실리콘밸리가 반한 한국의 스타트업] 팀 드레이퍼가 점찍은 ‘비트코인 거래소’
연혁
2013년 4월 시범 서비스 개시(비트코인-원화 거래소)
2013년 7월 법인 설립
2013년 8월 초기 투자 유치(스트롱벤처스)
2013년 8월 케이스타트업(Kstartup) 인큐베이팅 회사 선정, 추가 투자 유치 (은행권청년창업재단, SK플래닛)
2014년 1월 실리콘밸리 엔젤 투자 유치(4억 원)
2014년 3월 모바일 앱 출시(비트코인 지갑 및 거래소)
2014년 6월 ‘코빗페이’ 결제 솔루선 출시
2014년 8월 시리즈(Series) A 벤처 투자 유치(국내 15억 원·해외 15억 원)


지난 8월 19일 강남 논현동에 자리한 코빗 사무실. 유영석 코빗 대표는 “이제 막 이사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며 멋쩍은 듯 취재진을 안내한다. 2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조금은 휑한 풍경이다. 사무실을 채우고 있는 가구라곤 커다란 책상과 컴퓨터가 전부다. 아직 번듯한 사무실조차 갖추지 못한 듯 보이지만 이곳은 사실 팀 드레이퍼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투자자들로부터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한국계 VC가 실리콘밸리 ‘다리’ 역할
실리콘밸리에서 4대에 걸쳐 벤처 투자업을 하고 있는 팀 드레이퍼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 투자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엔젤리스트의 설립자 나발 라비칸트, 구글 재무 임원 출신의 피에트로 도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한국인 성공 신화 마이클 양 등도 코빗의 대표적인 투자자들이다. 이처럼 톱클래스의 투자자들은 한국의 이 조그만 스타트업에서 어떤 잠재력을 찾아낸 것일까.

그 첫 단추는 매우 우연한 기회에 꿰어졌다. 코빗의 첫 투자자는 ‘스트롱벤처스’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국계 벤처캐피털(VC)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비석세스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2013년 4월 코빗을 창업한 유 대표는 그해 5월 무렵 비석세스가 마련한 행사에 참여했다가 애프터파티에서 스트롱벤처스의 존 남 대표를 만나게 됐고 스트롱벤처스로부터 9000만 원 정도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유 대표는 “이후에도 팀 드레이퍼 등의 투자를 받는 데 스트롱벤처스와의 만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유 대표와 팀 드레이퍼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같은 해 9월 무렵이다. 당시 코빗은 미래창조과학부의 후원으로 이뤄진 투자 설명회 ‘비글로벌 2013(beGlOBAL 2013)’에 한국 대표 10개 기업 중 하나로 참가했는데, 그곳에 드레이퍼 가문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것이다. 비트코인을 아이템으로 한 코빗의 사업에 팀 드레이퍼가 관심을 보였고 그 중간에서 촉매 역할을 자처한 것이 스트롱벤처스였다. 이후 팀 드레이퍼가 공식적으로 코빗에 자금 투자를 확정한 것은 두 달 뒤인 11월이다. 유 대표는 “9월 첫 만남 이후 11월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1주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드레이퍼 가문과 친분이 있던 스트롱벤처스에서 이미 코빗에 대한 검증을 마쳤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팀 드레이퍼 같은 벤처 투자 업계의 대가가 단지 ‘친분’만으로 코빗을 간택(?)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사이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라고 설명을 이어 간다. 그러나 미국 투자자들의 관심에 비해 오히려 미국 내에서는 비트코인의 사업화가 정체돼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또한 점차 해외의 비트코인 업체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데다가 이미 싸이월드의 도토리를 비롯해 가상 화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라는 데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그는 “일본이나 필리핀보다 우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부각했다”며 “실제로 한국 시장 자체를 배우고 싶어 투자했다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시장’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바로 회사의 사업 능력이다. 코빗은 특히 팀원들의 전문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먼저 유 대표와 함께 코빗을 공동 창업한 김진화 이사는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해설서 ‘넥스트머니 비트코인’의 저자이며 김강모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실제 한국거래소(KRX)에서 차세대 시스템 개발을 총괄한 경력이 있는 금융거래 시스템 엔진 개발자다. 노유경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세계적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아이디오에서 선임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이 있고 임상혁 금융본부장 역시 뉴욕과 홍콩의 UBS와 씨티은행 등에서 외환 파생 상품을 직접 트레이딩하며 풍부한 글로벌 금융시장 경험을 갖춘 인재다. 유 대표는 “사실 한국 투자자들은 1시간을 만나면 그중 55분은 비트코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시키는 데 할애해야 했다”며 “이와 비교해 해외 투자자들은 이미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 역량이나 팀원들의 전문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e메일로 3시간 만에 투자 결정”
팀 드레이퍼의 투자가 결정된 이후 코빗의 해외 투자 유치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 대표는 “엔젤리스트는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e메일을 통해 단 3시간 만에 투자 유치를 결정 받았다”며 “한 명의 좋은 투자자가 들어오자 거기에 기대 더 많은 투자자들이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도 그 덕을 많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팀 드레이퍼의 주도 하에 유력한 개인 투자자들까지 더해지며 코빗이 실리콘밸리로부터 지원받은 초기 창업 투자금은 지난 1월을 기준으로 약 40만 달러(약 4억 원)다. 사실 그 액수만 놓고 보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닌 셈이다. 유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엔젤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처럼 여러 개의 기업에 적은 금액을 투자하는 이들과 몇 군데에 집중적으로 큰 금액을 투자하는 이들로 나뉜다”며 “그중에서도 코빗의 투자자들은 대부분이 포트폴리오처럼 여러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 단계다. 이들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은 초기 창업 투자금을 지원한 이후 실제 기업의 성과에 따라 ‘더 큰 잠재력이 보이는’ 기업들을 선별해 더 많은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코빗 역시 최근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로부터 15억 원 정도의 투자금을 추가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팀 드레이퍼 등 코빗의 초기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들 중에는 새롭게 코빗의 투자자로 합류한 비트코인 전문 VC인 판테라캐피털이 특히 눈에 띈다. 그만큼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또한 코빗을 예의 주시하며 지금까지 한국 시장에서 이뤄낸 성과에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 대표는 “사실상 코빗 전까지 국내에서 비트코인 거래는 전혀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며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코빗의 회원 수만 해도 2만5000여 명이고 개설된 비트코인 계좌는 400여 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중 비트코인 거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체는 한국에서 해외로 전통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라는 것이다. 유 대표는 “수출 업체들은 환율 수수료 때문에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 화폐를 선호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며 “특히 우리보다 비트코인 거래가 활성화된 해외에서 먼저 비트코인 거래를 요청해 우리 쪽에 계좌를 만드는 수출 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해외 투자자들 역시 한국 시장과 국내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곳이 적지 않다”며 “더 많은 국내 스타트업이 자신감을 갖고 문을 두드린다면 다양한 기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