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1020호 (2015년 06월 24일)





전쟁·기근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

조조가 적벽대전서 무릎 꿇은 진짜 이유도 전염병 때문


몇 년 전 모 TV 방송국에서 이런 요청이 왔다. “몽골의 전통 의학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자문해 주실 수 있나요?” 그해 여름 필자는 담당 PD와 카메라맨 등 제작진과 함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날아갔다. 다시 현지에서 합류한 가이드의 안내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서부로 몇 백Km를 더 들어갔다.

지평선을 따라 가도 가도 끝없는 광활한 초원뿐이었다. 종착지는 몽골제국의 옛 수도 하라호름이었다. 여정 내내 우리는 몽골인들이 방목하는 양떼와 말과 낙타를 만났고 그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에 감탄했다.

저녁을 먹고 잠은 몽골 전통의 텐트형 가옥인 게르에서 자기로 했다. 문제는 밤중에 생겼다.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다가 한여름이라고 방심해 대충 방풍용 외투만 챙겨 온 게 화근이었다. 한여름 몽골 초원의 밤은 겨울이었다. 게르 안에는 조개탄 난로가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설쳤다.


전염병 돌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21세기 최신 소재로 개량한 현대적인 게르가 이러할 진대, 13세기 칭기즈칸이 활약할 당시 몽골 병사들의 텐트가 얼마나 조악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더구나 뼛속까지 파고드는 초원의 겨울을 어찌 넘겼을지 나로서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대외적인 정복 전쟁이나 내란이냐를 막론하고 전쟁은 대개 무섭고 힘든 법이다. 전쟁이 오래되면 정상적인 농사가 불가능해진다.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병사들은 영양 결핍 상태가 되고 육체적인 피로에 심리적인 스트레스까지 누적된다.

열악한 위생 상태에 면역력도 떨어진다. 여기에 전염병까지 돌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그래서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는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에게는 3가지의 큰 적이 있다. 전염병·기근·전쟁이 그것이다. 그중 가장 크고 무서운 게 전염병이다.”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시대도 이와 유사했다. 후한 중기에 한나라 황실에서 토지를 합병하면서 농민들은 땅을 잃었다. 이들은 호족의 농노가 되거나 유랑 걸식하며 천지를 떠돌았다. 후한 말기에 홍수·가뭄·지진이나 우박 등의 자연재해에 메뚜기 떼까지 극성을 부리면서 농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여기에 전염병까지 창궐하면서 한나라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 한나라 초기에 6000만 명이 넘었던 인구가 후한 광무제 때는 2000만 명이 겨우 넘었다. 위·촉·오의 세 나라가 정립했던 ‘삼국지’ 시대에는 세 나라의 인구를 다 합쳐야 겨우 500만 명에 불과했을 정도다.

황건적의 난으로 황건적과 토벌군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내란 상태가 계속됐던 것도 인구 감소에 큰 이유가 됐다. “들판에는 백골이 널려 있고 천 리를 가도 닭 우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는 기록은 당시 상황을 잘 말해준다.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 3형제는 그들 스스로를 ‘대의(大醫)’라고 칭하면서 굶주리고 병든 농민들을 구제했다. 그들은 부적(符籍)과 부적 효과를 가진 물(符水)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면서 민심을 얻었다. 기근이 들어 사람이 굶어 죽고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죽어 나가도 나라가 나 몰라라 하는데 이들이 도와주니 따르지 않을 백성들이 어디 있겠는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 익숙한 우리는 적벽대전을 제갈량의 신기묘산(神奇妙算)과 주유의 뛰어난 리더십의 합작품 정도로 여긴다. 여기에 방통의 연환계, 황개의 고육계까지 합쳐지면서 적벽대전은 신화가 되고 주유와 제갈량의 영웅 신화는 완성이 된다.

그러나 적벽대전도 실상은 전염병과 관계가 깊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적벽에서 조조 군대가 패배한 것은 운수 탓이다. 실제로 전염병이 크게 돌았기 때문에 맹렬했던 병사들의 사기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와 화공을 하는 촉오 연합군에게 유리했다. 이것은 실로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조조 때문이 아니다.”

교만한 조조가 호기를 부리다가 주유와 제갈량의 계략이 넘어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조는 풍토병에 걸려 죽거나 고생하는 병사들이 도를 넘게 많아지자 철수를 감행한다. 물론 배도 연합군의 화공으로 불탄 것이 아니다. 남겨두면 자연히 연합군에게 전리품으로 넘어갈 것이기 때문에 조조가 배에 직접 불을 지르고 철수했다는 것이다.


제갈량도 남만 정벌서 악전고투
한편 제갈량의 남만 정벌도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 제갈량이 쓴 ‘장원(將苑)’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만(南蠻) 이민족은 탐욕스럽고 용감하다. 이 지방은 봄과 여름에 전염병이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공격은 속전속결로 해야 하며 지구전은 피해야 한다.”

이렇게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제갈량이 왜 굳이 남만 정벌에 그리 집착했을까. 촉나라 군사들은 남만 병사들은 물론이고 촉나라와 뚜렷이 구별되는 무더운 아열대기후와 지역 풍토병·전염병과도 맞서야 했다.

남만 정벌 동안에 제갈량의 군대가 맞닥뜨린 독이 든 샘물(毒泉)들은 각각 전염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추정하는 연구도 있다. 예컨대 마시면 벙어리가 되는 아천(啞泉)은 디프테리아를, 멸천(滅泉)은 장티푸스, 흑천(黑泉)은 흑사병을 가리킨다는 식이다.

이 싸움은 ‘제갈량이 남만의 우두머리 맹획을 일곱 번 잡아 일곱 번이나 풀어 줘 마음으로 승복시켰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까지 만들어 냈지만 제갈량의 남만 정벌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족: 최근 메르스(MERS), 즉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전국이 온통 난리법석이다. 이는 초기 역학조사 부실을 비롯한 보건 당국의 초동 대응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불신이 근본 원인일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일부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부정확한 소문과 비전문가적인 견해를 남발한 탓도 크다.

사람들은 메르스에 대해 왜 이렇게 패닉에 가까운 공포감을 가질까.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도 잘 모르는 여러 개의 ‘부분 자아’가 있다. 그중 메르스처럼 자기와 자기 혈족의 건강을 위협하는 감염성 질환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과 회피행동을 유발하는 자아를 ‘질병 회피(Disease-Avoidance) 부분 자아’라고 한다.

자기에게 감염성 질환을 가진 병원체를 옮길 가능성이 있는 낯선 타인이나 이방인·외국인에 대한 강력한 혐오나 즉각적인 회피행동은 진화적으로 생존 가치가 있고 역사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로마제국과 잉카제국이 천연두로 치명타를 입고 비잔틴제국과 몽골제국의 멸망이 흑사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요즘 지하철에서 마른기침 한 번 잘못하면 모세가 출애굽할 때 홍해의 물이 갈라지듯 승객들이 좌악 길을 비켜 준다고 한다. 태곳적부터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질병 회피 부분 자아가 발동하는 순간이다. 메르스가 단순한 독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판정이 나고 사태도 진정돼 국민들의 패닉에 가까운 불안감도 하루속히 해소되기를 기도한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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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보기 <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

입력일시 : 2015-06-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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