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17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 지배구조 변천사]
'순수 지주사' 전환 기업 급감…자회사 지분율 낮아 배당수익 한계
‘순수 지주사’는 정답 아니다…‘사업 지주사’가 새 대안으로
[한경비즈니스=김병화 기자] 6·25전쟁 이후 66년이 지났다. 한국 기업집단의 역사도 60년을 훌쩍 넘겼다. 빠른 속도로 선진국의 문턱까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기업은 지배구조를 개편하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Structure)의 변천사를 보면 한국 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날 수 있다.

◆ 외환위기 이후 ‘격랑 속으로’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역사는 외환 위기 전과 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외환 위기 이전에 기업집단을 지배했던 지배구조는 순환 출자와 피라미드식 출자였다. 당시 주요 그룹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순환 출자는 정부가 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고도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수단이었다.

저렴한 정책 자금으로 평균 부채비율이 높아졌고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재무적 안정성보다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기업의 생존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덩치가 큰 회사가 좋은 회사로 평가받았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과 재무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계열사가 증자에 참여하다 보니 오히려 순환 출자가 공고해지는 기업도 나왔다.

순환 출자는 미국·일본·독일·캐나다 등 해외 일부 기업에서도 발견되지만 작은 규모의 순환 출자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 규제의 필요성도 없다. 지배구조의 핵심이 순환 출자로 이뤄진 한국 기업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외환 위기 이후에는 부실 계열사를 정리해야 했다. 1986년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로 금지했던 지주회사 제도를 1999년 4월부터 다시 허용하게 된 이유다.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횡행식 출자, 상향식 출자가 없어 특정 계열사를 구조조정할 때 유리하다’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주회사는 지분법 적용 주식이 총자산의 50%를 넘어서는 기업이다. 다른 기업을 지배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회사인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지주회사를 금지했던 이유는 기업이 생산을 목적으로 존재해야지 남을 지배할 목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에는 상속과 기업 정체성 유지를 위한 순수 지주회사 전환이 주류였다. 2003년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LG그룹이 대표적이다. 상속 이후에도 경영권과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달성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지주회사 전환은 순환 출자에 비해 선진적인 소유 구조인 만큼 명분도 충분했다.

2005년 이후부터 지주회사 전환이 보다 활발해졌다. 그 형태와 전환 동기도 다양해졌다. 지분상의 레버리지와 재무적 레버리지를 통해 경영권을 강화하고 다각화를 수월하게 하는 목적이었다.

실제로 SK·한진해운·코오롱 등은 상속 이후 경영 지배권 강화, STX는 다각화와 계열사 지원, CJ는 사업 구조 개편, 웅진·금호·하이트는 인수·합병(M&A)을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 지주회사보다 순수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주를 이뤘다는 점이다. 대주주의 지분율 상승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형제의 난과 분식회계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던 두산은 2006년 1월 19일 지배 구조 선진화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지주회사 전환, 서면투표제로 소액주주 권리 보호, 100% 사외이사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투명 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감사위원회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두산은 그로부터 3년 만인 2009년 1월 1일 ‘두산→두산중공업→두산건설→두산’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를 단절하고 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했다.

◆ 현금흐름 불안정…시장 반응도 냉담
‘순수 지주사’는 정답 아니다…‘사업 지주사’가 새 대안으로
두산의 지주회사 전환 이후 현재까지의 지주사 전환은 ‘풍요 속 빈곤’에 가깝다. 지주사 전환을 계획하던 대형 그룹들은 대부분이 전환을 마쳤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로 레버리지의 시대가 끝나자 전환할 동기를 잃었다.

금융 위기를 겪으며 주식시장에서 지주회사의 순자산 가치(자산 가치 추정액-부채 가치 추정액) 대비 할인율도 대폭 상승했다. 할인율 상승은 지주회사가 자회사 주가의 하락 폭을 크게 뛰어넘는 낙폭을 기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현재 지배구조의 과도기다. 짧은 기간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나름의 기여를 했던 순환 출자 구조가 경제력 집중이라는 폐해를 낳으며 외면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지주회사가 지분과 재무의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좋은 지배구조로 각광 받았지만 시장의 냉담한 반응, 현금 창출력과 지도력의 부재로 많은 지주회사들이 고전하고 있다.

한국적 현실을 무시하고 해외 지배 구조 시스템을 받아들인 결과다. 한국 지주회사들은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낮아 우량 자회사라도 배당률이 낮다. 브랜드 로열티도 적게 받는다. 새로운 수익원을 개발하지 않으면 지주회사의 현금 흐름이 안정적일 수 없는 구조다. 순수 지주회사는 더 이상 최선이 아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기업 지배구조는 앞으로 수렴형 지배구조로 전환될 전망이다. 적은 지분으로 막대한 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 흐름을 극대화하는 방향이다.

지주회사 전환도 상속을 위한 목적이 주를 이루고 M&A를 위한 목적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순수 지주회사보다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 지주회사가 주를 이룰 것이다. 주식·채권시장에서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현금 흐름의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는 전문 경영인이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소유권이 3세대, 4세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기업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소유와 경영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kb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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