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143호 (2017년 10월 25일)





한국 경제 비상의 첫째 조건, "'甲질 회장님'은 이제 그만"

[커버 스토리 : 혁신성장의 조건 = ①기업지배구조]
이사회 독립성 높이고 사회책임투자 강화…총수 일가 ‘가족헌장’ 만들자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1.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야 주가가 오를 겁니다.” A기업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이 모인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 지난달 이곳에는 총수 일가를 비난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A기업 총수에 대해 회사 돈 유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A기업의 소액 투자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오너리스크’로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차라리 총수의 구속이 호재가 될 지경”이라고 공분했다.

#2. 기업 총수가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B사. 이 기업의 프랜차이즈 점주들 또한 큰 피해를 봤다. 회장의 갑질 논란 이후 전체 가맹점의 14%에 달하는 60여 개 가맹점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으며 문을 닫았다. 당시 점주들은 “불매운동으로 가해자인 회장(및 본사)보다 피해자인 가맹점주와 종사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검찰에 회장의 구속을 호소했다.

최근 기업 총수 일가의 막말이나 폭언, 부당 업무 지시에 공금 유용, 하청 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 심지어 성추문까지 소위 ‘갑질’ 논란이 하루가 멀다고 매스컴을 타고 있다. 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사전에 예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에는 총수 일가의 갑질 파문이 단순 가십성 논란에 그쳤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기업 가치와 평판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중·장기 성장 기반과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오너리스크’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대개 가벼운 처벌이나 합의를 통해 무마되면서 지속 반복되고 있다. 갑질로 인한 오너리스크는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일까. 우리 사회는 지금 한국 경제가 다시 비상하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 ‘오너리스크의 최소화와 이를 통한 기업의 신뢰 회복’을 주문하고 있다.



◆‘갑질’ 파문 5거래일 후 주가 하락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9월 ‘오너리스크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펴냈다. 최근 기업 총수의 갑질로 사회적 논란이 된 8개 기업집단과 31개 계열사를 분석한 결과 이들 회사는 논란이 된 사건 발생 후 평균적으로 5거래일 이후부터 뚜렷한 주가 하락 현상을 겪었다.

기업 총수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이후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와 개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2차 확산되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총수와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일반 투자자들이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파장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더욱 거셌다. 해당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와 이 회사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점주 등은 불매운동에 따른 매출 및 이익 하락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다. 누군가는 월매출의 절반 이상이 깎여 나갔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일부 점주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갑질 가해자가 대기업 총수일 때에는 소비자의 피해도 상당했다. 해당 기업의 계열사만 수십여 개에 이르다 보니 불매운동으로 이른바 ‘착한 소비’를 한 구매자들의 제품 선택 폭이 좁아지는 불편을 겪은 것이다.

임 부연구위원은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에 따른 무거운 페널티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사전에 예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지배구조’에 화살을 겨눴다. 폐쇄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총수 일가의 갑질이 반복되는 데 일조해 왔다는 분석이다.

올해 갑질 파문에 휩싸인 기업들의 지분 구조를 보면 사건 당사자인 총수의 개인 회사이거나 총수 및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절반 이상을 넘는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면 총수 일가에 의사결정 구조가 집중되면서 독단적인 의사결정이나 가족의 부적합한 경영 참여 등의 문제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례로 중간 유통 과정에 친족의 회사를 끼워 넣어 가맹점에 제품 가격을 부풀려 판매한 C그룹 회장은 총수 일가(회장 외 4인)가 총 48.9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6월 30일 기준).

이 회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52차례의 이사회가 열린 가운데 안건에 대한 찬성률은 100%에 달했다.

회장이 운전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일삼아 갑질 논란에 처한 D그룹 역시 사외이사의 안건에 대한 찬성률은 3년간 100%였다. 사외이사를 비롯한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머물러 총수 일가를 비롯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형석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1999년 이사회 독립성과 역할 강화를 위해 상법이 개정됐지만 국내 사외이사 후보군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학연과 지연, 정치적 관계 등에 얽매인 문화적 특성으로 사외이사들이 지배 주주 또는 경영자로부터 독립성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회책임투자와 가족헌장의 확산

전문가들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개선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사회 구성의 독립성과 운영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기업 공시의 투명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법·제도적 개선에 의존하는 것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기업 지배구조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최근에는 총수 일가의 갑질 근절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계의 화두인 ‘사회책임투자’의 강화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인권·환경·노동·지역사회 공헌도 등 다양한 사회적 성과를 잣대로 들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의 환경 경영(Environment)·사회책임경영(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수준을 평가한 ‘ESG’가 사회책임투자의 투자 의사결정을 위한 평가 지표로 쓰인다. 기업이 노동자·고객·주주·환경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지배구조가 얼마만큼 투명한지 비재무적인 틀에서 따지는 도구인 셈이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겸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은 “이제 시장에서도 총수 일가의 비도덕적인 논란을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에 걸림돌이 되는 신호로 보고 있다”며 “오너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업의 ESG 점수를 투자 지표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매년 상장사의 ESG 수준을 평가해 ESG 등급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 일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는 유의미한 지표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덴마크·중국·말레이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이를 활용하는 곳이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조 원장은 “ESG를 투자 의사결정에 고려하는 책임 투자는 범세계적 추세”라며 “한국 역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ESG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총수 일가가 평상시 활발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하면 이들이 부정적인 사건을 저지르거나 연루됐을 때 여론이 이들에 대한 형벌을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임 부연구위원은 “일종의 ‘보험’과 같은 역할”이라며 “기업은 사회적 책임 활동을 통해 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기업의 평판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총수 일가의 갑질에 따른 오너리스크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헌장’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족헌장은 가문의 철학·원칙·정책 등을 명명백백히 밝혀 둔 문서다.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지만 가족 간 이견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사용된다.

10년째 가족 경영을 연구하며 가족 기업 전문가로 활약 중인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는 “(총수 일가와 같은)가족 경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너에 집중된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로 갑질 등 권력 남용을 초래하는 단점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총수 일가 구성원들은 가족 기업의 의사결정 방법과 후계자 설정 규칙, 구성원이 기업에 취업할 때 필요한 규정 등을 명문화한 가족헌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가족헌장은 2세대·3세대 등 미래의 총수 일가에게 도덕적 책임을 교육함으로써 갑질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가족헌장이 기업의 영속성에 기여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오너리스크란?

오너리스크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지배주주(오너) 또는 그 후계자가 될 총수 일가가 경영 실패, 법적 위험 등으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 수행이 어렵게 되는 경영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





poof34@hankyung.com

[‘혁신성장’의 5대 조건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한국, 혁신 통해 ‘제자리걸음’ 벗어나자
-‘오너리스크’최소화…기업의 신뢰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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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11-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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