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Part1 : 블록체인 경제학]
암호화폐가 갖는 여러 장점 분석 중…주요국 중엔 중국이 가장 앞서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암호화폐는 사기지만 블록체인은 혁신이다.” 암호화폐에는 부정적이지만 블록체인에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별개로 실제 세계의 중앙은행과 금융회사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블록체인 기술의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중앙화된 암호화폐의 발행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암호화폐 발행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실물화폐 발행과 유통비용 절감 △지급 결제 시스템의 효율성 개선 △경제 거래 활동의 편리성과 투명성 제고 △탈세와 자금 세탁 방지 △통화 관리능력 강화 등이 그 이유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해 11월 29일 뉴저지 럿거스대 연설에서 “비트코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투기 활동에 가깝다”며 “화폐로서 필수적 요소인 ‘가치 안정성’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다만, 비트코인 기술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는 너무 이르긴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디지털화폐를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럽 금융 위기를 계기로 유로화를 암호화폐로 만드는 ‘유로코인’과 같은 아이디어도 이미 나왔다.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암호화폐는 미래 금융 부문의 잠재적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2015년 중앙은행의 가상화폐 발행을 중요한 연구 과제로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영국 중앙은행 콘퍼런스에서 앞으로 법정화폐는 가상화폐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9월 17일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은 각국의 중앙은행에 암호화폐의 직접 발행을 검토하도록 권고했다. BIS는 최근의 암호화폐 열기를 중앙은행들이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시장의 급성장이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BIS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가상화폐의 성장세를 더는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디지털화폐의 특성을 파악하고 직접 발행할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블록체인에 푹 빠진 세계의 중앙은행들
(사진)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BIS “암호화폐의 중앙은행 발행 검토해야”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앞선 여러 가지 이유로 암호화폐의 직접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가장 앞서가는 곳은 북유럽 국가들이다. 북유럽은 이미 실물화폐의 사용량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암호화폐의 이름을 ‘e-크로나’로 정하고 발행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은 2년 내 e-크로나를 발행한다는 것이 목표다. 스웨덴과 함께 암호화폐 발행에 적극적인 국가는 에스토니아다. 2017년 8월 25일 에스토니아는 중앙은행이 지원하는 암호화폐 에스트코인(Estcoin)을 발행하고 암호화폐공개(ICO)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이미 내부용으로 고유의 암호화폐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암호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러시아·캐나다·핀란드·이스라엘·싱가포르·파푸아뉴기니와 다른 여러 나라 중앙은행들이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의 주요 국가 중 암호화폐 발행에 가장 근접한 곳은 중국이다. 블룸버그는 “인민은행은 가상화폐 초기형을 제작해 시범 운영까지 마쳤다”고 보도했다. 비트코인 등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모습이지만 중앙화된 암호화폐 발행에선 가장 앞서가는 게 중국이다.

러시아도 국가 암호화폐 발행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년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가 암호화폐인 ‘크립토루블’ 발행을 지시했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암호화폐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크립토밸리’ 탄생시킨 스위스

중앙은행이 아니라 기존 금융권 중심으로 암호화폐 거래를 받아들인 나라도 있다. 스위스다. 스위스 팔콘은행은 지난해 8월 비트코인·이더리움·라이트코인·비트코인캐시 등 암호화폐 거래를 허용했다. 스위스 쿼트은행과 IG은행도 비슷한 시기에 암호화폐 거래를 승인했다.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재무장관은 스위스에서 1월 17일 열린 ‘크립토 포럼’에서 “암호화폐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며 “스위스를 암호화폐 허브 국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스위스 정부의 목표는 5년 안에 크립토밸리에 국한하지 않고 스위스 국가 전체를 암호화폐 천국(Crypto Nation Switzerland)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스위스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암호화폐 기업들이 모여드는 ‘크립토밸리’가 탄생했다. 취리히 인근 소도시 주크(Zug)는 이미 140여 개의 블록체인 기업들이 설립됐다. 주크에서는 ‘자금 세탁 방지 방안, 고객 신원 확인, 3명 이상의 현지 직원 채용’ 등 3가지 조건 이외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ICO도 적극 지원하고 있어 세계 암호화폐 발행시장 절반 정도를 스위스가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에 이어 벨라루스 정부 역시 비트코인을 합법적 통화로 공식 인정했고 ICO, 스마트 계약, 블록체인 개발을 합법화한다는 대통령령을 지난해 말 발표했다.

비록 암호화폐의 합법화는 아니지만 일본 역시 암호화폐 제도화에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4월 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데 이어 9월엔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거래소도 승인해 제도화했다.

미국도 지난해 말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허용했다. 나스닥도 올 2분기에 비트코인 선물을 출시할 계획이다.

호주와 인도에서도 암호화폐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호주는 최근 국세청이 암호화폐 거래를 추적하는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과세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인도도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고 거래 때마다 12~18%의 세금 부과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 한국도 중앙은행 차원에서 이미 암호화폐에 대한 연구가 조용히 진행돼 왔다. 한국은행은 2016년 12월 ‘분산원장 기술의 현황 및 주요 이슈’라는 보고서를 내고 중앙은행 차원의 암호화폐 발행을 꼼꼼히 따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은행 발행 암호화폐는 단순히 실물화폐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 상업은행 예금과 경쟁하면서 거시경제·통화정책·금융안정성 및 지급 결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며 “특히 중앙은행이 상업은행 예금을 대체하는 수준의 기능을 제공한다면 기존 상업은행 예금을 상당 폭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hawlling@ham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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