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주 52시간 근로’ 업종별 50문 50답]
[주 52시간 시대] 문화·콘텐츠 특례 업종 제외, "밤샘작업 어쩌나"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홍보업계에 종사하는 A 씨는 주 52시간 근무가 남의 일처럼 들린다. 회사 정책에 따라 컴퓨터가 6시 30분에 꺼지지만 A 씨와 동기들은 6시부터 개인 노트북을 펼쳐야 한다.

클라이언트와 계약한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24시간 업무 대기는 필수다. 하지만 그동안 야근을 하면 나오던 택시비는 이제 받을 수 없다.


최근 전 산업계가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떨고 있다. 노동자들은 ‘워라밸’을 경험할 수 있는 행복감에 앞서 ‘주 52시간’이 실제 실현 가능한지에 의문을 품는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린다.


전 산업에서는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특수한 직종이나 특수 고용 형태 종사자에 대한 대응책이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오래 일하는 관행을 줄이자는 취지에 대해선 대부분이 공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업종에 따라 업무 형태와 특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을 모든 업종에 일괄적으로 시행하기보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기대 효과가 큰 직군이나 업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근심은 더 크다. 1년 6개월이라는 준비 기간은 벌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26만6000명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연간 12조3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중소기업(300인 미만)의 부담이 총비용의 70%에 달한다.


정부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부랴부랴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내용은 주로 사무직과 단순 노무직 위주였다. 업종별로 떠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주요 업종별 고민과 대응 실태를 짚어봤다.


◆일정 기간에 업무 몰리는 산업 특성 반영해야


콘텐츠업계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노동시간 특례 업종으로 분류됐던 문화·콘텐츠 분야가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특례 업종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밤샘 작업이 당연했던 영화·방송·게임·광고 등 콘텐츠업계의 관행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지난 6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개최된 ‘콘텐츠 분야 노동시간 단축 대응 방안 토론회’에서는 변경된 근로기준법이 콘텐츠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지는 법이라며 반발이 빗발쳤다. 근로기준법이 바뀌면 밤샘 촬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영화나 방송을 찍는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기간 촬영 관행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 상승이 불가피하다. 노동자들은 수입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16부작 미니 시리즈를 기준으로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제작 기준이 100일에서 200일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방송계 종사자들이 다른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 감소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여의도에 모여 부산으로 촬영하러 간다고 해보자. 촬영할 때 이동하는 시간은 노동시간인가. 누가 답하나.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영화 분야를 대표해 나온 장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사업장 규모를 기획 단계·촬영·후편집 등 영화의 제작 단계마다 채용하는 인원수를 파악해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프리랜서 형태로 계약한 방송 노동 현장에서 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오히려 외주 제작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방송사는 정규직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이나 책임에서 자유로운 외주 제작 비율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양환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본부장은 콘텐츠 분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업계 특성상 프리랜서를 상시노동자로 판단하는지 여부와 노동시간을 산정하는 방식 등은 앞으로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 7월 중 콘텐츠 분야 제작 노동환경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하반기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업계도 고민이 늘었다. 게임업계는 그간 게임 출시나 업데이트를 앞두고 ‘크런치모드’에 돌입해 집중적으로 일해 왔다. 크런치모드는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크런치모드는 사라져야 할 악습으로 지적돼 왔지만 신규 서비스 출시 직전이나 콘텐츠 업데이트 직전에 일이 몰리는 산업의 특성 때문에 이어져 온 관행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가 인력 운영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기획-개발-테스트 단계로 진행되는 업무 특성상 일이 몰리는 팀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적용하기 힘들다”며 “52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게임사가 살아남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넷마블·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들은 법 시행에 앞서 이미 올 초부터 선제적으로 나서 탄력적(선택적) 노동시간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외에 주 52시간 근무제 1차 적용 대상인 넥슨·NHN엔터테인먼트·게임빌·컴투스·카카오게임즈·네오위즈·블루홀·펄어비스 등도 현재 다양한 사례들을 참고삼아 노동환경 개선을 진행 중이다.


한 게임 회사 관계자는 “같은 기업에 있더라도 사무직·개발직·영업직 등 직무의 차이에 따라 업무 환경 격차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직종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동반된다면 부서별 노동 질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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