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새판 짜는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
- 한 달에 1번꼴 해외 출장…스마트폰·전장·AI·반도체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에 분주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1등 기업’ 삼성전자가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의 고삐를 죄고 있다. 위기라고 판단해서다.

매년 실적 최대치를 경신해 온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역대 최대치인 매출 60조5600억원, 영업이익 15조6400억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사업 발굴이 더디고 기존 사업 영역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 긴장하고 있다.

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은 ‘솔선수범’이다. 윗사람들이 몸소 실천하며 회사 분위기를 다지는 중이다.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럽·북미·중국·일본·인도 등 글로벌 시장을 직접 방문,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네트워크 확보에 나섰고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 3인방(김기남·김현석·고동진 대표이사 사장)은 사내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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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유럽까지 종횡무진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총 4차례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그는 스마트폰,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인공지능(AI), 반도체 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우선 가장 최근 행보인 인도 출장길이 인상적이다. 7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인도를 방문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인도 사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한편 인도 시장을 기반으로 치열해진 중국 기업과의 스마트폰 경쟁을 본격화했다.

삼성전자가 인도 북부 노이다 주에 기존의 2배 규모로 증설하는 휴대전화·가전 공장에는 모두 8600억원 정도가 투자된다. 처음 공장 증설을 계획했을 때보다 투자 금액이 2배 이상 늘었다.

삼성전자 공장 증설의 가장 큰 목적은 현지에서 스마트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인도 정부가 해외에서 수입되는 휴대전화 관세를 지난해 15%까지 인상했기 때문이다.

인도 소비자들은 대체로 스마트폰 가격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현지 생산을 늘려 인건비·물류비·관세 등을 절감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초 처음 진출한 뒤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인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를 올해 처음으로 중국 샤오미에 내줄 위기에 놓여 있다.

시장조사 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샤오미는 1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31.1%의 점유율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샤오미는 지난해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전장 사업도 직접 챙기고 있다. 지난 5월 31일~6월 10일 동안 일본 도쿄·오사카 그리고 홍콩을 방문한 그는 우시오전기·야자키 등 일본 자동차 전장부품 전문 업체의 고위 경영진과 만나 신사업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야자키는 자동차용 전원과 통신 케이블, 전방표시장치(HUD) 등에서, 우시오전기는 특수 광원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회사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신성장 동력 발굴 행보의 일환으로 전장사업 강화에 초점을 맞춘 출장”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5월 2~9일 중국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과 회동했다. 이들 기업은 삼성의 경쟁자인 동시에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를 사들이는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이들이 신기술 분야에서 어떤 반도체 부품을 원하는지 수요를 파악하는 등 반도체 공급 다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출장길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 등 반도체 담당 임원들이 이례적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출소 후 첫 대외 행보인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7일의 유럽·미주 출장에서는 인공지능(AI) 기업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이 부회장이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삼성전자는 파리에 AI 연구·개발(R&D)센터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영국·러시아·캐나다 등에 AI센터 신설, 인재 영입, 스타트업 투자 등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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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산업혁명 주도 기술에 ‘집중’

이 부회장이 이들 4개 분야를 직접 챙기며 공을 들이는 것은 미래를 대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매 분기 실적 신기록을 새로 갈아치우고 있지만 반도체 쏠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에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아 메모리 분야에 치우친 수익 구조를 분산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우선 AI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핵심 기술로 ‘포스트 반도체’ 후보 첫손에 꼽힌다.

기존 정보기술(IT)·가전의 첨단 기능을 구현하고 안정성·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AI 기술이 필수가 됐다. 여기에 헬스케어·B2B(기업간거래) 등 유망 산업으로의 확장성도 크다.

전장사업은 자동차가 점점 IT 기기화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에 첨단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시스템이 탑재되고 고도의 센싱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까지 가능해지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막대한 R&D 투자로 후발 업체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초격차 전략’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전장·AI 등을 위한 차세대 반도체와 상대적으로 약한 파운드리(위탁 생산)와 시스템 반도체에도 힘을 싣기로 했다.

이 부회장의 행보가 활발해지면서 삼성 내 관련 사업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삼성SDS는 의료 AI 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각종 전자건강기록(EHR)을 디지털화하고 분석해 의료진이 보다 정확하고 수월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AI 서비스다.

삼성의 자체적인 AI 수준이 많이 올라온 데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와 시너지도 기대돼 수익성·성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전장사업과 관련, 삼성전기는 최근 부산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공장의 생산 라인을 자동차 전장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MLCC는 전자제품 내부에서 전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을 막는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올 2월 256Gb(기가비트) 용량의 자동차 전용 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돌입했다.

◆ 내부적 혁신 추진과 ‘긴장 모드’ 발동

이러한 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에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긴장한 모습이다. 특히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사장은 지난 7월 2일 공동 명의의 하반기 CEO 메시지를 통해 “혁신가의 딜레마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세 CEO는 “많은 IT 기업이 현실에 안주하다가 몰락한 사례가 있다”면서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려면 혁신가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철저한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혁신가의 딜레마는 시장 지배적 기업들이 현재의 시장과 주요 고객들의 기대 수준에 맞추며 소위 ‘잘 팔리는 제품’에만 집중, 새롭고 급진적인 기술을 도입하는 데 인색해 결국 혁신을 앞세운 새 도전자들에게 시장을 내주는 행태를 의미한다.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져 세계 최강국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무너졌고 일본의 대표 기업이었던 샤프와 도시바도 몰락했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하며 유럽의 진격을 알렸던 노키아 역시 휴대전화 사업에서 힘을 잃었다.

이례적으로 세 CEO가 공동 메시지를 통해 위기 상황을 강조한 데에는 최근 삼성그룹을 둘러싼 어수선한 상황 속에 임직원들의 내부 기강을 다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십여 년 동안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그룹의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이 해체됐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기관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 압박 수위는 하루가 다르게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순환출자 고리 해소 작업은 보험업법을 둘러싼 해석 차 등으로 더디기만 하다. 여기에 올해 삼성증권발 금융 사고, 노조 와해 의혹까지 더해진 데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날 선 비난과 비판 여론도 여전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삼성전자는 내부적인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최고혁신책임자(CIO) 직책을 새로 만들고 산하 혁신 조직인 삼성넥스트의 데이비드 은 사장을 선임했다.

다양한 사업 부문을 통합 관리해 각 사업부의 역량을 차세대 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은 사장은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골드하우스’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가운데 영향력이 큰 100명에 선정된 인물로 이 부회장이 그리는 ‘삼성전자의 미래 경영전략’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는 물론 미국·영국·캐나다·러시아에 잇달아 글로벌 AI연구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 6월 4일 AI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해당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다니엘 리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전격 영입했다. 특히 이 부회장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행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움직임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의 AI 분야 외부 인사 영입과 CIO 직책 신설 등 파격적인 경영전략이 이 부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킹 다지기에 집중하는 시기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AI 기술은 다양한 사업부문과 연계되는 만큼 다른 주요 그룹에서도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에 이어 자동차 전장과 AI 기술이 삼성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앞으로 해당 분야를 중심으로 공격적이고 활발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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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 비즈니스 제 1182호(2018.07.23 ~ 2018.07.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