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경제학

캐나다, 여성 경제 참여율 1% 늘자
생산성 0.4%포인트 증가
“여성은 가장 잠재력 큰 자산”

"여성에 투자하라"…성장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최근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제너레이션XX : 2069년 1월.’ 지금부터 50년 뒤인 2069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50%가 여성이 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기사다. 2018년의 눈으로 보자면 조금은 ‘발칙한’ 이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 것인가.

페미니즘과 경제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스스로 돈을 벌 권리’와 같은 말이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경제적 활동은 제약을 받고 있다. 기업 내부의 유리 천장은 공고하다. 경제활동과 육아의 균형을 맞추려는 몸부림은 점점 더 절박해져 간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은 우리 모두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자산이고 여성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은 나아가 남성의 불편함 또한 해소하는 길이다. 지금, 페미니즘과 경제학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여성에 투자하라"…성장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법 :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하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16년 IMF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이 글에서 라가르드 총재는 캐나다를 사례로 들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캐나다는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생산성이 악화되고 있었다. 당시 캐나다의 노동생산성은 미국과 비슷한 20% 수준으로,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년에 1%에 미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가 찾은 해답은 ‘여성’이었다. 이 정책은 기대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는 캐나다의 여성 경제활동참여율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만 비교해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0년을 기준으로 캐나다의 25세에서 54세 여성 중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은 60%였고 당시 캐나다의 GDP는 2739억 달러였다. 이에 비해 2010년 무렵 캐나다의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은 80%를 넘어섰고 2013년 GDP는 1조843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경제성장에 진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2016년 당시 IMF가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은 ‘분명히 그렇다’였다. 당시 IMF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 증가하면 캐나다의 노동생산성은 1년에 0.2~0.4%포인트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당시 캐나다의 남성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차이는 7%였다. 만약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 이 7%의 차이가 없어진다면 캐나다의 GDP는 2016년(1조5300억 달러)에 비해 4.5% 이상 높아졌을 것이란 얘기다.

◆남녀 임금 격차 좁히는 데 ‘217년’ 걸려

‘여성은 가정을 돌보고 남성은 직장에서 일하는’ 명제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를 지배한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였고 이에 따라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남성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경제적 영역에 발을 디뎠다. 이미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시스템 아래에서 교육받으며 상당수의 여성이 경제적 활동을 영위하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미국 포천 500대 기업 중 여성이 최고경영자(CEO)인 기업은 23개에 불과하다. 전 세계 기업의 CEO 중 여성의 비율은 3%에 그친다. 정부 고위 관료 중 여성의 비율은 그보다 조금 더 높은 7% 수준이다. 다시 말해 여전히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남성’이라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남성의 경제활동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자료도 적지 않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가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동일한 업무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을 비교할 때 여성의 월급이 남성의 80% 정도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은 이와 같은 ‘성별 임금 격차’를 좁히는 데 217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성이 전 세계 노동시장의 47%를 차지하고 대부분의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교육을 받고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17년.’ 특히 경제적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실제로 WEF의 2017년 ‘젠더 갭 리포트’에 따르면 다른 부문의 성평등지수와 비교해 경제 부문의 성평등지수가 현저히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글로벌 젠더 갭 인덱스는 68% 수준이지만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에 대한 성평등지수는 58%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교육 참여 성평등지수는 95%를 기록하고 있고 건강 부문의 성평등지수는 96%를 나타내고 있다. 교육은 남녀가 평등하게 받고 있지만 경제활동에서는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의 ‘경제성장’을 위해 해결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7월 2일 양성평등주간(7월 1~7일)을 맞아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한국의 여성 인구는 2575만4000명으로 총인구의 49.9%를 차지한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72.7%로 남성(65.3%)보다 7.4%포인트 높다. 하지만 고용률에서는 이 수치가 뒤집힌다. 현재 전체 여성 인구 가운데 고용률은 50.6%로 남성 고용률(72.1%)보다 20.4%포인트 낮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그 차이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 여성 고용률과 남성 고용률의 차이는 24.7%였다. 여성의 평균임금은 229만8000원으로 남성의 67.2% 수준이었다. 여성의 90.2%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취업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육아 부담’을 꼽는 이들이 47.9%였다.

여성 관리자 비율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정도 늘었지만 여전히 늘어날 여지가 큰 것이 사실이다. 행정안전부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17년 처음으로 50%를 넘었고 여성 법조인은 26.1%로 전년보다 0.8%포인트 증가했다. 의료 분야 여성의 비율도 의사 25.4%, 약사 64%, 치과의사 27%로 나타났다.

◆‘교육 평등’ 높지만 ‘경제적 평등’ 낮아

‘평등하게 교육 받지만 경제적 활동은 평등하지 못한 현실’은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은 객관적으로 글로벌 수준과 비교해도 갈 길이 멀다.

세계경제포럼의 2017 젠더 갭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144개국을 조사한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평등지수는 118위에 불과하다. 조금 더 자세히 수치를 들여다보자. 이 조사에서는 국내의 성평등 격차를 경제·교육·건강·정치 등 네 개의 부문으로 비교하고 있다. 남녀가 완벽한 평등을 이뤘을 때의 기준이 1, 남성이 차별받을수록 2에 가깝고 여성이 차별받을수록 0에 가까운 수치를 나타낸다. ‘교육’과 ‘건강’ 부문에서 우리의 성평등 수치는 거의 1에 가깝지만 ‘경제’와 ‘정치’ 부문에서 이 그래프는 0쪽으로 상당히 치우쳐 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문직과 기술직 종사자 비율(0.965점)과 전체적인 노동시장참여율(0.732점)인데,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은 반면 임금 격차(0.510점), 고위직 여성 진출(0.117) 부문의 점수는 심각할 정도로 낮다.

실제로 2017년 기준 OECD의 성별 임금 격차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은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난다. 무려 34.6%의 격차다. OECD 평균(13.9%)보다 그 차이가 3배 정도 크다. 다시 말해 남성이 100%의 임금을 받을 때 여성은 65.4%에 해당하는 임금만 받은 채 동일노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북아권에 속하는 중국이 100위, 일본이 114위라는 점이다. 비슷한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중국·일본이 나란히 좋지 않은 순위를 받은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고정된 성역할’이 강한 문화가 여성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높이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확증 편향의 악순환이 대표적이다. 2005년 티나 키퍼 영국 워릭대 교수는 사람들이 모인 행사장에서 종이와 연필을 주고 ‘유능한 리더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다. 수년간 이 실험을 반복한 키퍼 교수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의 기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리더를 그리라고 하면 ‘남성’으로 묘사하며 드물게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을 그린 사람들도 이를 말로 묘사해 보라고 하면 주어가 ‘그(he)’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이상적인 리더=남성’인 경우가 많은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애리조나대에서 실험했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가상의 보험회사 영업 회의를 참관하게 했는데, 한 그룹은 회의의 주재자에게 ‘에릭’이라는 남성의 이름을 부여하고 다른 그룹에는 ‘에리카’라는 여성의 이름을 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릭과 에리카는 ‘정확하게 똑같이 제시받은 대본을 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에릭에게는 ‘리더답다’는 평가를 한 반면 에리카에게는 ‘팀의 실적에 비판만 늘어놓고 아이디어를 나눌 줄 모른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여성이 아무리 남성과 똑같이 행동해도 남성에게서만 리더의 특징을 찾고 리더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계속 강화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확증적 편향은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더욱 강한’ 아시아 국가에서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재수 인디애나 퍼듀대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뤄진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 중심의 경제 체제’가 공고한 이유는 “뿌리 깊은 편견으로 인해 단순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펜스 룰이 대표적이다. 의도하지 않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을 멀리한다는 ‘펜스 룰’에서 여성은 성추행의 원인을 제공하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그 책임을 돌려 또 다른 편견에 갇히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여성들이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고 채용 및 승진 탈락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악순환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 중심적 사회가 낳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혼동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08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애기했다. “여성에 대한 투자는 단지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똑똑한 투자이기도 하다. 여성은 우리 모두의 경제 발전과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의미 있고 잠재력이 큰 자산이다.”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