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페미니즘 경제학]
-두 아이 양육하는 경제학자 우석훈…“기관별·지역별 마초지수 만들고 싶어”
[페미니즘 경제학] 경제학자 우석훈 "노동시장 속 젠더격차 해결, 승자와 패자 있는 문제 아냐"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시대가 당면한 불안과 빈곤의 문제에 대해 분석해 온 경제학자 우석훈(50) 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두 아이의 아빠’다. 우 씨가 최근 치열하게 고민하는 문제는 인간다운 삶과 행복이다.

둘째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치원 등·하원도 그의 몫이다.


그는 실전 육아를 겪으며 쓴 분투기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에서 “한국은 모든 걸 엄마한테 옴팡지게 뒤집어씌우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한국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젠더 격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가 내다 본 해결책은 무엇일까.


Q. 한국 노동시장에서 젠더의 격차 원인은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젠더 장벽이 심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 고용률과 경력 단절, 낮은 임금, 고용 불안전성에서 모두 젠더 격차가 심하게 큰 사회예요.

학력과 나이처럼 핸디캡이 있는 요소 중 여전히 젠더가 포함되는 거예요. 고학력·고소득 계층으로 올라가더라도 동일노동·동일임금이 형성되지 않거나 관리직·고위직을 차지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죠. 기업 경영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랄 수 있는 이사회의 남녀 비율을 보면 한국은 여성 비율이 고작 3.2%입니다.

그러니 여전히 여자가 구청장만 돼도 뉴스가 되는 거죠. 세계적으로는 1960년대부터, 한국은 1990년대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했거든요. 다른 나라에 비해 속도가 굉장히 빠르지만 구조나 사람들의 인식 체계는 그만큼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


Q.결혼과 출산이 젠더 격차를 벌리는 요소가 됐다고 보시나요.

“출산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죠. 출산 자체보다는 출산 후 여성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일터에서 실제적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요인들에 대해 살펴봐야겠죠.

경력 단절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한국의 여성 고용 그래프를 보면 30대 초반에 여성 임금과 고용률이 뚝 떨어집니다. 이후에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해요.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거나 예전에 했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갔다는 거죠. 그 그래프만 놓고 보면 여성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한국만큼 출산 후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임금 격차가 심각한 나라는 없어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그만큼 남성의 가사노동 진출은 늘지 않았어요.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16%에 불과합니다.”


Q.왜 유독 한국 사회에서만 출산 후 경력 단절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걸까요.

“출산하더라도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회적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출산과 동시에 경제적 능력이 끝나는 구조여서 결혼과 출산을 당연히 포기하는 겁니다. 여자는 늘 커리어와 아이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거든요.

출산 후 1등 커리어에서 1.5등이나 2등 커리어로 떨어진다면 가족을 위해 감수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1등 커리어에서 출산 후 6등 커리어로 강등되는 현실이죠.”


Q.정부 정책만으로 이런 현상이 해결될 수 있을까요.


“경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겪는 것은 대부분 저소득층입니다. 하지만 출산과 경력 단절은 저소득 여성뿐만 아니라 고학력·고소득 여성에게도 똑같이 발생하는 문제예요. 여자는 변호사든 회계사든 출산 후 경력 단절을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고소득이면 고소득일수록 출산 전과 똑같은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적죠. 반면 고소득층 남성이 겪는 경제적 문제는 거의 없거든요.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아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결국 한 명이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건 일반적으로 여성이 되는 구조죠.

한국은 아직까지도 육아와 가사노동의 책임을 여성에게 당연하게 덮어씌우는 문화가 있어요.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일반 직장인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없잖아요. 결국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적절한 복지가 매칭 돼야 해요. 남성들의 참여나 연대도 필수적이고요.”


Q.몇 년간 직접적인 출산 지원 정책이 양적으로 증가했는데도 왜 상황은 더 심각해져 갈까요.


“출산이나 육아 관련 정책도 너무 큰 것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제도 내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가 더 필요한 거죠. 사실 육아 복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제도가 아니잖아요.

지금은 너무 크고 돈 드는 정책 위주예요. 비효율적이고 의미 없는 정책이 너무 많아요. 실제로 육아에 참여하다 보면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들도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육아를 진짜 해본 사람만 육아 정책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웃음).”


Q.남녀 고용이나 임원 승진 할당제를 실시하면 역차별이라는 시선도 존재하는데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상 최악의 노동시장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이 더 좋은 일자리를 획득한다는 통계가 큰 공감을 얻지 못할 수는 있어요. 남자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죠. 여자가 실질적으로 겪는 차별과 장벽에 대해 공감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역차별은 성립이 안 돼요. 아직 한국 사회가 역차별을 논할 단계는 아닙니다. 특히 노동시장에서는요. 역사적으로 평생 동안 차별이 고착화돼 있는 사람과 이제야 하나 정도 나누고 있는 사람 사이에 어떻게 역차별이 존재합니까.

반대로 여성의 비율이 너무 많은 직군에서 남성 고용을 할당제로 시행할 수도 있는 거죠. 어떤 분야든 남자만 필요하거나 여자만 필요한 곳은 없어요.”


Q.실제로 남녀 할당제를 실시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많던데 이유가 뭘까요.

“다양성이 기업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한국은 군대 조직을 보고 기업 조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포디즘이 깨지고 혁신이라는 개념이 들어왔잖아요. 혁신의 조건은 바로 이질성이거든요.


그렇게 했을 때 실질적으로 성과가 좋으니까 많은 유럽 국가들이 30% 이상의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거예요. 단순히 정의 실현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여성 임원이 꼭 필요하고 그들이 도움이 되니까요.”


Q.언젠가 젠더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정하기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은 여전히 마초 사회예요. 그런데 이걸 여성 경제학자나 여성학자가 말하면 반발이 크거든요. 제가 책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여성 경제학자들이 젠더 경제에 대한 내용을 써달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여자들이 쓰면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거죠. 저는 개량적이고 과학적인 틀을 통해 마초지수를 분석해 보고 싶었어요. 기관별·지역별로 마초지수를 내보면 차별 요소를 분석할 수 있고 줄일 수 있는 차별을 부당하게 가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잖아요.

이런 걸 구분해 보면 감정 상하지 않게 조금 더 과학을 들이대면서 중립적으로 차별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제가 그렇다고 아마조네스 군대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에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Q.육아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애를 보는 것을 논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친한 친구들이 전화로 ‘뭐하고 지내냐’고 묻기에 ‘애 본다’고 말하자 엄청 얄미워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직접 해보면 육아가 중노동 중에 중노동이거든요.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면서 제일 가슴 아팠던 게 출산 후 여성에게 탈모와 정신적 위축감이 같이 오더라고요. 산후 우울증은 사회적 질환으로 분류해야 할 정도로 보편적이고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죠. 이걸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이 필요해요. 실질적이고 문화적이고 유쾌한 방식으로요.

사람들이 육아를 추상적인 고통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단계마다 존재하는 ‘구체적인 고통’들이 있어요. 그런 걸 사회적으로 케어해 줘야죠. 내가 애를 낳았을 때 사회든 국가든 도와주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줘야 해요.”


Q.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의 ‘모범 답안’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따셨죠. 그때 느낀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마침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출산율이 막 떨어지고 있었던 시기였어요. 개인주의가 극단화된 나라여서 방법이 없다고 배웠죠. 그런데 1996년 1.6명이었던 프랑스 출산율이 2000년대 들면서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어요. 프랑스 경제가 좋아져 출산율이 높아진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정책이 파격적을까요.

오히려 공보육은 한국이 더 나아요. 그런데 프랑스는 돈이 드는 행정과 돈이 들지 않는 행정을 적절히 맞췄어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했죠. 동거, 한 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제도를 인정하고 지원과 혜택도 똑같이 적용해 준다든지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고 사회적인 문화를 만들고 가난해도 애를 낳으면 오히려 가계 경제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했어요.

농담으로 ‘돈 없으면 (애 낳아서) 베이비카드 만들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애를 낳아도 국가가 우리를 굶겨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아기를 낳아도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회복한 거죠.

한국은 지금보다 더 부드럽게 양적인 투자도 확충되고 꼭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정책이 정확하게 배달돼야죠. 복지의 총액을 늘리기보다 흩어져 있는 서비스들을 모으고 배달을 어떻게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Q.최근 들어 젠더 격차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본질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혐오의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언젠가 해결될 문제라고 보고 있어요. 젠더 격차를 해결하는 데 승자와 패자가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여성의 권익이 강화된 역사와 직장 민주주의 역사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여성의 권익이 보장받는다고 해서 남자들의 권위가 낮아지는 게 아니에요.

그저 합리적으로 부당했던 요소를 찾아가고 해결해 가는 과정일 뿐이잖아요. 20세기 초 미국 록펠러 탄광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한다고 하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향해 총을 쐈어요. 불과 100년 전에요. 이처럼 노동 해방의 역사는 짧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은 계속 변화하는 것이거든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큰 정치 민주주의 얘기를 했으면 일상의 민주주의로 넘어가게 된 거죠. 젠더 문제도 지금 차례가 온 것 같아요. 진작 왔었어야 했는데 정치적인 큰 의미의 민주주의가 위기였고 일상의 문제들을 뒤로 유예해 온 거죠.

그 속에서 차별과 희생과 갈등은 더 공고해졌고요. 그렇기 때문에 21세기 여성들이 ‘이건 아니다’고 들고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파리제10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유엔 기후변화협약 기술이전전문가그룹 위원. 총리실·국무조정실·산업심의관실 전문 위원.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현).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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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