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페미니즘 경제학] -젠더 감수성 커진 소비자들…“잘못된 고정관념에 기업 이미지 무너질 수도”
[페미니즘 경제학] ‘펨버타이징’ 광고계의 물줄기를 바꾸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 # 인도의 한 남성 화장품 광고. 한 남성이 등장해 망고를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입술에 망고 즙을 짜낸다. 이후 딱 붙는 옷을 입고 오토바이에 앉아 엉덩이를 흔든다. 광고 속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야지만 물건을 팔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광고는 시대를 반영한다. 트렌드를 민감하게 담으면서도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광고계에도 페미니즘의 영향이 닿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여성 혐오 발언을 한 모델을 광고에 출연시키면 소셜 미디어를 타고 강력한 질타를 받거나 실제 제품과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7년 차 카피라이터인 유병욱 TBWA코리아 콘텐츠본부 국장은 “젠더 감수성을 잘못 건드리는 순간 기업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이미지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며 “광고업계에서도 성역할을 구분 짓거나 성차별적인 카피를 쓰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여성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담은 광고인 ‘펨버타이징’이 등장하기도 했다. 펨버타이징은 페미니즘(feminism)과 광고(advertising)가 합쳐진 용어다.

대표적으로 2016년 P&G의 생리대 브랜드 위스퍼가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여자답게(#Like A Girl)’ 캠페인이 있다. ‘여자답게’라는 표현이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의미해 여자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캠페인이다.
[페미니즘 경제학] ‘펨버타이징’ 광고계의 물줄기를 바꾸다
◆뒤집어 보는 ‘여자답게’의 의미

광고에서 성인과 남자 아이들에게 “여자답게 뛰어보라”고 하자 이들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으로 뛴다. 반면 사춘기 이전 아이들에게 ‘여자답게’ 뛰어보라고 하면 온 힘을 다해 자신있게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편견을 깬 이 캠페인 광고는 지금까지 5억5000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 냈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삼성전자의 갤럭시 7 광고 영상 ‘독립’, ‘아빠’, ‘첫 출장’도 모두 달라진 사회와 여성상을 보여준다.

파리나 뉴욕 패션 위크, 패션 광고에서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제한하거나 각종 패션쇼에서 시니어 모델이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늘어나는 것들도 이런 흐름에 기반하고 있다.

펨버타이징 캠페인은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대화를 이끌어 내고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 펨버타이징은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며 해시태그 운동 등 사회적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펨버타이징이 등장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광고를 통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생산하는 것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올 4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이 서울YWCA와 함께 국내 광고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발표한 ‘2018년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한 달 동안 TV와 인터넷, 극장과 바이럴을 통해 방영된 국내 광고 457편 중 성차별적 광고 수는 총 36편으로, 성평등적 광고(17편)보다 약 2배 이상 많았다.
양평원은 등장인물의 성별 역할을 분석한 결과 광고 속 주요 등장인물의 역할에도 성역할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457편의 광고 속 전체 등장인물 502명 중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역할에는 남성이 63.8%(30명)로 다수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36.2%(17명)로 집계됐다. 운전자 역할도 남성은 78.6%(11명), 여성은 21.4%(3명)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소파에 누운 남편, 청소하는 아내?

성차별적 광고의 내용으로는 주로 성역할 고정관념이 반영된 것이 많았다.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타자화하는 내용 또한 포함됐다.

예컨대 지상파에 노출된 A사의 가전제품 광고에서는 남성이 소파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반면 여성은 에어컨을 켜고 주방에서 가족들의 음식을 챙기는 모습을 대비함으로써 ‘가사노동’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했다.

B사의 콜라겐 제품 광고는 쇼핑을 하고 오던 여성이 자동차 추돌 사고를 낸 상황에서 상대 차량 남성이 화를 내다가 여성의 외모를 보고 그냥 돌아가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C사의 블랙박스 광고 또한 남성을 블랙박스 제품과 동일시하는 설정을 통해 여성들이 불편함을 느낄 만한 내용을 담았다. 남성이 혼자 있는 여성 운전자의 차량 위에서 갑자기 등장해 여성이 두려움을 느끼고 달아나는 상황에서도 쫓아가면서 설명하는 등 스토킹, 불법 촬영 등의 범죄 상황을 희화화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양평원 관계자는 “최근 성차별과 불법 촬영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임에도 광고계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기존의 성차별을 답습하고 있다”며 “광고계 담당자들이 광고 속에 내재된 성차별을 제대로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젠더 감수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와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 교수는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광고와 여성 재현’ 논문에서 “무엇보다 광고 제작자와 광고주, 소비자의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라며 “광고 제작자들의 성역할 인식이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그들의 젠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반드시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에게도 성차별적 광고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은 “소비자 역시 성차별적 광고가 우리 사회의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바람직한 인식을 방해한다는 점을 생각해 성차별적 광고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거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 전체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