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조 국민연금' 어디로 가나?

2016년부터 73명 ‘이탈’…본부장 1년째 ‘공석’에 실장급도 대거 ‘사표’

인재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업이든 국가든 특정 분야의 전문가 풀을 보유하는 것은 강력한 무기다. 특히 돈을 굴리는 직종이라면 인재의 중요성은 더하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불거진 곳이 있다.

무려 634조원의 국내 최대 기금을 관리·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다. 핵심 인력 이탈로 몇 년째 애를 태우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지난해 7월 이후 1년째 공석이다.

주요 실장급 간부들의 자리 이탈도 심각하다. 이렇다 보니 전체적인 조직의 인력 관리에 구멍이 나 있다. 수년째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계속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이다.
‘전주 이전·과한 책임’에 짐싸는 인재들
◆ 278명 필요한데 34명이나 부족

현재(8월 16일 기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는 국민연금 운용역 정원 278명 중 34명의 자리가 비어 있다. 올해 초 자산 운용 전문가 공개 모집을 통해 20명을 채용했지만 이탈한 인원이 더 많아 추가 채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연금공단은 7월 30일부터 8월 중순까지 공개 모집을 진행했고 11월 34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추가 인력 채용은 지난해부터 수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주 이전이 결정된 2016년부터 인력 이탈이 급격히 늘었다.

2016년 30명, 2017년 27명, 2018년(1~7월) 16명 등 총 73명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에는 입사자(26명)보다 퇴사자(27명)가 더 많았다. 퇴사자가 입사자보다 많은 것은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우수 인력을 뽑기도 힘들다. 최근에는 38명 모집에 201명이 응모했지만 적격자가 없어 20명(53%)만 채웠다. 지난해도 42%만 채웠다. 그전에는 80~90%를 달성했다.

인력 부족은 수익률 저하로 나타난다. 지난해 7.26%를 기록했던 운용 수익률이 올해 5월 말 기준 0.49%까지 추락했다.

국민연금공단 내부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며 “항상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채용한 인력보다 이탈하는 인력의 수가 더 많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말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던 우수 전문 인력들은 이미 다 떠난 상황”이라며 “현재 추가로 인원을 모집하고 있지만 기존에 있던 인력보다 전문성이 더 낮아진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이탈은 아래 직원보다 상급직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가장 윗선인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1년 넘도록 공석이다. 여기에 지난 7월 조인식 기금운용본부장 직무대리(해외증권실장)도 사표를 내 지금은 ‘직무대리의 직무대리’인 이수철 운용전략 실장이 담당하고 있다.

실장직급 중 선임 자리로 꼽히는 주식운용실장은 공석이 된 지 오래고 실장급 중 그나마 자리를 오래 지켰던 김재범 대체투자실장도 7월 말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이 밖에 실장급들은 최근 자리 바뀜이 심하게 일어났다. 지난 8월 1일 그동안 공석이던 해외증권실장에 임형주 해외주식위탁팀장을, 해외대체실장에 최형돈 해외사모팀장을 내부 발탁했다.

당초 기금운용본부는 새 본부장을 뽑은 뒤 주요 임원급 인사를 실시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7월 말 김 대체투자실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사실상 주요 운용실장 6석(운용지원·주식운용·채권운용·대체투자·해외증권·해외대체실) 중 4석(주식운용·대체투자·해외증권·해외대체실)이 공석인 상태가 되자 서둘러 인사를 진행했다.

두 신임 실장은 각 실의 실장 직무대리를 맡아 오다가 그대로 실장직에 앉게 됐다. 국민연금은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진 시기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투자 부서장을 우선 임용했다”며 “내부에서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의 시선은 다르다.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하지 못하자 팀장급을 끌어올린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누구도 국민연금에 오려고 하지 않으니 결국 내부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이탈에는 크게 2가지 요인이 꼽히고 있다. 직급·연령별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주 이전·과한 책임’에 짐싸는 인재들
◆ “대안 없어 무조건 내부 승진”

첫째, 젊은 층이 많은 일반직 인력의 ‘전주 이탈’이다. 육아 문제나 문화 등 인프라 시설 부족으로 전주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이 추진될 때부터 예상됐던 문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2월 기금운용본부 운용역들의 전주 이주 비율이 절반 정도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윤종필 의원(자유한국당)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기금본부 임직원 전주 지역 정착 비율 현황’에 따르면 이주 대상인 269명 중 총 116명인 43%가 전주에 미정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동반 이주 인원은 41명으로 15%, 단신·미혼 인원들의 이주는 112명으로 42%를 차지했다. 운용역 중 절반가량이 주말 부부로 살아가는 등 아직 전주 지역에 자리를 잡지 못한 모습이다.

둘째 요인은 ‘과중한 책임’에 따른 이탈이다. 직급이 높은 운용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채준규 전 주식운용실장을 해임하는 등 투자 결정에 대한 지나친 책임 추궁이 간부급 운용역들의 이탈을 부추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투자 실패 사례들에 대해 관리 기관인 복지부·감사원·국회 등이 과한 질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운용역들은 거액을 다루지만 이들의 보수는 민간이나 해외에 비해서는 10% 이상 낮은 수준이다. 이런 대우에도 최근까지 투자금융계의 많은 고급 인력들이 이른바 ‘국민연금 배지’을 달기 위해 모여들었었다.

2~3년 고생하면 나중에 민간에서 그만큼 경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까지 대체투자실장을 맡았던 온기선 씨는 대신자산운용 사장을 거쳐 동양자산운용 대표까지 역임했다.

한 팀장급 관계자는 “투자를 하다 보면 성공과 실패 케이스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평균 수익률로 평가돼야 하는데 감사 기관은 자신들의 실적을 돋보이게 하려고 일부 실패 사례만 침소봉대하려고 한다”며 “이처럼 과도하게 책임을 지우는 분위기에서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일하겠느냐”고 토로했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