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3부 100년 기업을 키우자
-상속세 부담에 회사 매각 사례 급증…OECD 평균보다 지나치게 높은 세율 조정 필요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중소기업 매물이 쏟아지면서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3월 12일 제10대 회장 취임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만난 한 투자사 대표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해야 할 많은 중소기업이 가업 승계가 어려워 사모펀드 등 인수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며 “최고 상속세율 65%에 22%의 주식 양도소득세까지 내야 할 수도 있어 도저히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규모에 의한 규제 차별을 완화해야 한다”며 “규제로 인해 국내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가업상속공제제도’도 까다로워

불투명한 사업 전망과 최저임금 인상 등 어려운 경영 환경에 과도한 세금 부담 압박까지 겹쳐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중소기업중앙회가 창업 10년 이상 된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가업 승계를 계획하고 있다는 응답은 58.0%에 그쳤다. 이는 전년 대비 9.8%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승계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 비율도 지난해 40.4%로, 전년 대비 8.4%포인트 늘었다.

중소기업 가업 승계의 최대 걸림돌은 역시 상속세였다. 가업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응답자 10명 중 7명가량(69.8%)이 가업 승계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상속세 등 조세 부담’을 꼽았다.

특히 가업을 승계하면 세금을 공제해 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를 활용하겠다는 기업인도 크게 줄었다. 이 제도를 활용하겠다는 응답은 전년 대비 16.0%포인트 하락한 40.4%에 그쳤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이다.

가업상속공제는 업력 10년 이상, 직전 3년 평균 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이 승계할 때 가업 상속재산을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공제를 받으면 이후 10년간 자산과 가업 업종, 노동자 수를 유지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상속세를 대폭 내려야만 가업 승계가 활성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홍보실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은 상속·증여세를 획기적으로 낮추거나 폐지하고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하는 추세”라며 “한국도 상속·증여세제를 개편해 장수 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등 경영 의욕을 북돋아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기중앙회 홍보실과 비서실, 기획실 등을 거친 중소기업 전문가다. 최근 업력 30년 이상 130개 장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35개 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22개국이다. 상속세가 아닌 다른 소득으로 과세하는 국가는 2개국,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는 국가는 11개국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7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가업 승계를 돕는 국가가 늘고 있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스웨덴은 조세 회피 유인 감소에 따른 투자 활성화와 가업 승계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2004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기업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보유 지분이 법인 발행 주식 총수(또는 출자 총액) 50% 이상 초과 보유 시 보유 주식가액의 30%(중소기업 15%), 50% 이하 보유 시 보유 주식 가액의 20%(중소기업 10%)를 가산하는 등 최대 65%의 상속세율을 부과한다. OECD 회원국 평균 상속세율인 26.6%를 크게 웃돈다.

한국의 가업상속공제제도 요건이 OECD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도 문제다. 상속 후 최소 기업 경영 기간은 프랑스가 3년, 독일이 5년으로 한국의 10년보다 짧다. 고용 유지 요건도 한국은 정규직 노동자 100%(중견기업 12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제한 요건이 따로 없다.

◆일본 200년 장수 기업 3937개 vs 한국 0개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장수 기업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중소기업의 경영 승계 원활화에 관한 법률’과 ‘산업 활력의 재생 및 산업 활동의 혁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중소기업의 승계와 관련해 비교적 엄격한 기준으로 지원해 왔다. 하지만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급증하자 방향을 틀었다.

가업 승계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인한 장점보다 폐업으로 인한 경제 전반의 피해가 더 크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4월부터 ‘신사업승계제도’를 시행,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을 대폭 낮췄다.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주식 이전에 따른 세금 유예·감면 혜택 대상을 상속·증여 주식(비상장)의 3분의 2로 제한했던 것을 전체 주식으로 늘렸다. 사업 승계 지원이라는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다고 판단되면 세금 자체를 면제해 주는 조항도 추가했다. 손자 세대까지 상속이 이어지면 유예된 세금 자체를 면제받도록 하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특히 불투명한 사업 전망으로 승계를 꺼리는 상황을 고려해 승계 후 기업 경영 악화로 파산할 때도 유예 받은 세금을 면제해 준다. 또한 1명만 지정할 수 있던 상속자도 최대 3명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기업인들의 불만이 높았던 상속·증여 후 5년간 고용 80% 유지 등 사후 조건도 폐지 혹은 완화하는 등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추 실장은 “최근 들어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국면과 맞물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승계보다 매각을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경영권 거래가 공표된 거래대금 50억원 이상의 기업 매각 규모는 2016년 1조9728억원에서 2017년 3조5080억원으로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58개 주요국 중 2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이 가장 많은 곳은 일본(3937개)이다. 이어 독일(1563개)·프랑스(331개)·영국(315개)·네덜란드(292개) 순이다. 한국에서는 1896년 창업한 두산과 동화약품(1897년)·신한은행(1897년)·우리은행(1899년)·몽고식품(1905년)·광장(1911년)·보진재(1912년)·성창기업(1916년) 등 8곳만이 100년여의 명맥을 잇고 있다.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오현진 중기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장은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닌 고용, 기술·경영의 대물림이자 ‘제2의 창업’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중소기업이 가업 승계를 통해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함으로써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세제·자금·판로 지원 등 종합적 가업 승계 지원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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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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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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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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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