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의 사상 최고치 경신이 이어지면서 과연 어느 선까지 오름세 행진이 이어질 것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특히 9~10월에 나타난 급등 현상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비관적 전망이 부쩍 늘었다. 일부에서는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지나 조만간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른다’는,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요즘과 같은 급등세라면 ‘끝’을 알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유가는 석유 수급 구조뿐만 아니라 세계 경기, 지정학적 요인, 달러화 등락, 기상 변화, OPEC의 유가정책 등 수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장단기 전망이 유난히 어려운 분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급등세를 예견한 국내외 분석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2005년 골드만삭스가 ‘유가가 대급등 시대 초기에 접어들었으며 배럴당 105달러선까지 가격이 치솟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한 게 일례다.하지만 9월 이후 분석가들은 ‘유가 100달러(연중 평균 가격) 시대’의 도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국내 각 연구소들도 내년 유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적극적인 경고 메시지를 내놓았다.최근 유가의 흐름을 짚기 위해서는 ‘극단주의’라고도 불리는 ‘피크 오일 이론(Peak Oil Theory)’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은 세계의 원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점에 도달한 후엔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다시 말해 전 세계 석유소비가 계속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석유 매장량은 급속하게 줄어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매우 심각할 것이라는 게 피크 오일 이론의 골자다. 그간 변방의 이론으로 취급돼 미디어에서도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최근 유가 급등세 속에서 새롭게 논쟁거리로 부상했다.피크 오일 이론가들은 “65개 석유 생산국 가운데 54개 국이 이미 피크 오일에 도달했기 때문에 계속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고, 5년 뒤에는 2~3개 국가가 피크오일에 도달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원유 공급이 갑작스럽게 줄어들면서 경제 공황과 같은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게다가 1964년 이후 신규 유전 발견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대체 에너지 등의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않고선 절체절명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세계피크오일연구협회(ASPO) 알레크렛 의장은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피크 오일 심포지엄에 참석,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3~4년 내로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을 비롯한 석유 중독 국가들에 특히 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이 이론은 원유 시장 안팎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 원유 시장의 큰 손으로 꼽히는 분 픽켄스 BP캐피털 회장의 경우, 최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피크오일&가스학회 콘퍼런스에 참석해 “현재 글로벌 원유 생산은 하루 8500만 배럴 수준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면서 “유가는 80달러대로 떨어지기 전에 100달러 고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피크 오일 이론 지지자인 그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시기는 ‘연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피크 오일 이론가 중에는 ‘유가가 200달러까지 오르고, 화학 비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식량 생산이 급감, 수십억 명이 굶어죽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는 이도 있다. 물론 이는 가장 극단적인 예측이지만 현실화 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다음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0.2% 포인트 떨어지고, 소비자 물가는 0.2% 포인트 오른다는 추산치를 내놓았다. 유가 급등은 일반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의미다.9~10월 유가 급등기에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은 서둘러 하반기 및 내년 전망치를 내놓았다. 하지만 원유 시장은 수급이라는 펀더멘털 요인과 더불어 이란·터키 등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투기 프리미엄, 미국 등 세계 경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분야보다 예측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원유 본질의 가치보다 외적 요인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많은 분석가들은 ‘급등’ 위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단기적 변수인 이란·터키 마찰의 경우 조만간 안정될 것이란 시각이 많고, OPEC의 유가 전략 역시 ‘세계경제의 상승을 유지하면서 고유가 지향’이라는 방향에 맞춰져 있는 까닭이다. 다만 미국 경기 둔화와 함께 난방유 수요가 급증하는 계절적 요인이 ‘숨은 변수’로 지적되지만 이 역시 급등으로 이어질 요인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이에 따라 ‘2008년 배럴당 100달러 돌파설’은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란 쪽에 무게 중심이 실리고 있다. 한때 100달러를 초과하는 일이 일어날 순 있어도 당장 연중 평균가격 100달러대 진입이라는 파란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그것이다. 지난해 “고유가 현상이 향후 10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던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계적인 상승이 이어지면서 2010년 이후에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만일 올 연말~내년에 100달러대에 진입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라고 말했다.세계 주요 기관의 2008년 유가전망도 배럴당 63~81.5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3개 유종 평균치가 올해 배럴당 68.5달러, 내년에는 75.1달러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에너지센터(CGES) 역시 브렌트유 기준 가격이 올해 69.5달러에서 내년 81.5달러로 오를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석유산업연구소(PIRA)도 WTI유 등이 올해보다 3~5달러 오를 것으로 보았다.국내 경제연구소들도 ‘완만한 상승’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 10월 23일 내놓은 ‘DERI 인사이트’를 통해 내년 국제유가는 최저 마이너스 4.2%에서 최고 17% 상승한 배럴당 64~82달러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2008년 평균가는 73달러선으로 예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66.95달러를 나타내면서 2007년 대비 2.65달러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지난 9월 18일 발간한 ‘3분기 SERI 오일 아웃룩’을 통해 ‘2008년 고유가 추세가 계속되겠지만 상승세는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한편, 유가 하락을 예상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미국 케임프리지에너지연구소(CERA)는 브렌트유와 WTI유 기준 가격이 올해 69달러선에서 각각 66.5달러(브렌트유), 68달러(WTI유)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단기적으로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유가 상승세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단기 전망을 밝히고, 내년 1분기에 배럴당 80달러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먼브라더스 역시 내년 1분기 유가가 배럴당 76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