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가난한 여주인공이 재벌 오빠를 만나 사랑받는 모습을 볼 때도 이 정도의 감정이입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TV만 보면 순식간에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빙의 완료.

굳이 공감하고 싶지 않음에도 무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볼 때는 웃음이 나는데 돌아서면 눈물이 나는 ‘웃픈 취준생’이 드라마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TV 속 취준생 생활백서] 웃긴데 왜 눈물이 나지? 무한 공감 드라마 속 취준생
앉은 자리에서 자소설 70장은 기본
tvN ‘잉여공주’

취준생 3년차 이현명(온주완)은 앉은 자리에서 자소서 70장은 기본으로 쓸 수 있는 ‘자소설(자기소개서 + 소설을 뜻하는 신조어) 전문가’다. 명문대 미대에 진학 후 예술가의 길을 걷길 꿈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현명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자소서 쓰기에 심취한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제 안에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작업에 미쳐갔죠. 균형 잡힌 미적 감각으로 귀사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겠습니다.’ ‘한때 그림에 미쳤던 미술학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림보다 아름다운 자연과 산에 미쳐갔습니다.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하이브리드를 실천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한 편의 ‘자소설’을 순식간에 완성한 그는 만족의 기지개를 켜며 ‘취업하고 싶다’고 외친다.

▶ 취준생 생활백서
억지로 직무에 끼워 맞춰 작성한 ‘균형 잡힌 미적 감각으로 귀사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겠습니다’,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하이브리드를 실천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와 같은 마지막 문구는 많은 취준생들의 단골 멘트! 하지만 현명이 3년째 여전히 ‘취준생’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것. ‘하나만 걸려라’는 식의 마구잡이식 자소서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꿈을 이루려면 팍팍 써!
JTBC ‘유나의 거리’

창만(이희준)은 서른 살의 장수 공시생이다. 긴 연극 제목을 영어로 술술 읊어댈 정도로 아는 것이 많고, 뭐든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맨이지만 백수 생활을 면치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창만은 콜라텍 직원으로 취업에 성공한다. 어느 날 다영(신소율)은 연극부 단원들을 콜라텍에 데리고 와 연습 공간으로 사용하는데, 이들은 조명을 아껴 써야 한다며 걱정한다. 창만은 이들 앞에 마이크를 들고 서서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림을 잘 모르는 엄마는 늘 크레용을 아껴 쓰라고 했다”며 “크레용을 팍팍 써도 잘 그리기 어려운데 어떻게 아껴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나. 조명 마음껏 쓰고 연습 멋있게 잘해라”라고 격려한다.

▶ 취준생 생활백서
물론 전기세를 내는 것은 창만이 아닌 콜라텍 사장님이다. 그래서 호기롭게 그가 ‘조명을 마음껏 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꿈을 위해 아끼지 말고 투자하라’는 창만의 메시지는 감동, 또 감동! 그의 말처럼 좋은 그림을 위해서는 크레용을 팍팍 써도 모자란다. 우리가 가진 열정, 남김없이 팍팍 써야 꿈을 위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면접관의 무례함, 맞설 것인가 피할 것인가
tvN ‘잉여공주’

떨리는 마음을 안고 면접을 보러 간 현명. 하지만 면접관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현명은 자신에게도 질문해줄 것을 요청하고 면접관(강용석)은 그의 이력서를 힐끗 본 뒤 ‘미술 전공이면 그림을 잘 그리느냐’, ‘나를 한 번 그려봐라’는 요구를 한다. 잠시 망설이던 현명은 면접관의 초상화를 그려 보여주지만 면접관은 ‘실력이 대단하다. 그럼 그냥 미술을 계속해라’라며 그를 무시한다. 현명은 면접관에게 다가가 그림을 거꾸로 보여주는데, 뒤집어진 그림 속에는 손가락 욕이 연상되는 모습이 담겨 있다.

▶ 취준생 생활백서
‘인사담당자가 B급이면 B급 이상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에피소드. 지난 5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구직자 906명을 대상으로 ‘면접 중 불쾌한 경험’에 대해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72.1%가 ‘있다’는 답변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준생들의 행동은? 62.8%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 18.4%는 ‘더욱 성의 있게 행동’한다는 답을 했다. 무례한 면접관의 행동, 참지만 말고 때론 현명처럼 당당하게 맞서보는 것은 어떨까? 단, 합격과는 이별해야겠지만….



오랜만에 연락 온 선배, 친구 믿지 마
KBS2 ‘가족끼리 왜 이래’

26세 청년 백수 차달봉(박형식)은 선배의 추천으로 한 회사에 입사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분명 총무과 발령을 받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생각지 못한 비타민 100만 원어치를 받게 된 것. 지부장은 “우리 회사는 관례적으로 입사 초반에 영업을 먼저 시킨다”며 “100만 원어치 약은 카드 결제 가능하고, 안 되면 월급에서 까거나 차용증을 쓰면 된다”고 말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달봉은 조심스레 “혹시 여기 다단계 회사냐”고 묻고, 지부장은 “우리는 수익적이고 복리적인 수입 구조를 자랑한다”고 설명해 그를 경악시킨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차용증에 도장을 찍은 달봉은 100만 원어치 비타민을 챙겨들고 거리를 헤맨다.

▶ 취준생 생활백서
밥값 좀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익숙해질 때쯤, 발로도 자소서를 쓸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올랐을 때쯤, 한 번씩 받게 되는 공포의 유혹! 오랜만에 연락이 온 고등학교 친구나 갑자기 밥을 사주겠다는 선배의 연락을 경계하자. 당장 가난한 백수에서 멋진 직딩으로 탈바꿈시켜 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에 흔들린다면 달봉이처럼 100만 원어치 비타민 혹은 옥장판을 짊어지고 거리를 헤매게 될 것이다.


글 박해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