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컨설팅 시장 점검① - ‘속성 취업 컨설턴트’가 판친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도 취업 한파는 풀릴 줄 모르지만, 취업난 덕분에 맑은 날씨를 유지하는 곳이 있다. 취업 역량을 강화시켜 준다는 ‘취업 컨설팅’, 이른바 ‘취업 사교육’ 시장이다. 취업 전문가로 불리는 ‘취업 컨설턴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취준생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다. 쓰린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고, 취업 성공의 길까지 도와준다는 사람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부 ‘취업 컨설턴트’가 수상하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업에 지원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 컨설턴트 명함을 내밀고 자소서를 봐주고 있다거나, 연예인 뺨치는 ‘쇼맨십’으로 취준생을 현혹하는 컨설턴트가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컨설턴트가 될 수 있다’는 속성 취업 컨설턴트 프로그램까지 성업 중이라고 한다.
[이슈체크] 네 자소서 첨삭해준 취업 전문가의 과거는?
흔히 효과적인 취업 준비 방법으로 ‘현직자(현업에 재직 중인 사람)’의 생생한 조언을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런 행운이 아무에게나 있는 건 아니다. 취업 준비가 막막한 취준생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검색창에 ‘취업 컨설팅’이라는 글자를 입력하는 것. 검색 결과, 수많은 ‘취업 전문 컨설팅’ 업체와 만날 수 있다.

취업 컨설팅을 받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소서 첨삭, 면접 교정 등의 전문 컨설팅이나 강의를 들으려면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취준생 덕분에 취업 사교육 시장은 끝을 모르고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물론 투자한 만큼의 효과를 거둔다면 취업 컨설팅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신이 몰랐던 역량을 끄집어내고, 취업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취업 성공의 기술’을 익힐 수 있다면 불만이 있을 리 없다. 문제는 취업 컨설턴트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전문성 ‘제로’인 비전문가를 만나 돈 날리고, 마음 상할 때다.


100만 원 내고 한 달이면 나도 ‘취업 전문가’
취업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면서 ‘취업 전문가’ 간판을 내건 취업 컨설턴트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취업 사교육 시장 자체가 진입 문턱이 없는 분야이다 보니 과거 경력을 알 수 없는 ‘무늬만 취업 전문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취업 관련 기업에서는 속성으로 취업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취업교육 전문 강사 양성과정을 개설한 ‘E’사가 대표적이다. 채용 전문 컨설팅사를 표방하는 이 회사는 지난 2010년부터 3개월 간격으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이곳의 취업 컨설턴트 양성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E사 관계자는 “총 5회에 걸쳐 자기소개서 코칭법, 기업 직무 이해, 진로 코칭법, 면접 스킬 등을 위주로 30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본사에서 취업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며 “교육을 마치면 ‘취업 지도사’ 자격증도 준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 요건은 따로 없다. 말 그대로 누구나 과정만 수료하면 ‘취업 지도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취업 지도사’는 이 회사에서 자체 발행하는 자격증으로, 공식 자격증은 아니다. 이렇게 취업 전문가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수강료는 100만 ~ 150만 원 정도.

E사 외에도 취업 컨설턴트를 배출하는 곳은 꽤 많다. 평균 20시간에 50만 원의 비용을 수업료로 책정하고 E사와 비슷한 커리큘럼을 제시한다. 교육 수료 후에는 바로 ‘취업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공통적인 설명이다. C사 관계자는 “교육을 마치면 다수의 구직자를 대상으로 취업 상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사람은 대학교로 취업 강의를 나갈 수 있도록 특전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지원서 한 번 안 써본 사람이 취업 컨설팅을?
‘취업 컨설턴트로 활동하려고 하는 사람’. E사가 ‘취업 컨설턴트 양성 과정’의 교육 대상으로 명시한 내용이다. 학력도, 전공도 제한이 없다. 그야말로 스펙 초월이다. 이렇다 보니 이 회사 취업 컨설턴트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력을 가진 컨설턴트가 꽤 많다. E사의 취업 컨설턴트 양성 과정을 수강한 A씨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해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이가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유수 대학 졸업생에게 컨설팅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비일비재하다”면서 “경력을 부풀리기 위해 부랴부랴 학점 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취득하는 일도 있다”고 밝혔다.


도움 필요한 취준생 상대로 취업 컨설팅 실전 연습
속성 과정을 통해 취업 컨설턴트로 거듭난 이들은 업체의 자랑대로 ‘현장’으로 바로 나간다. 각 대학에서 시행하는 취업 캠프, 취업 특강 등이 이들의 주요 데뷔 무대다. 취업준비생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전문지식을 갖춘 취업 전문가의 도움을 기대하지만, 실상은 과거 경력을 알 수 없는 ‘초보’에게 취업 컨설팅을 받는 셈인 것이다. 경력 10년의 취업 컨설턴트 B씨는 “수료생에게 실전 경험을 할 수 있는 특전을 준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건비 절약을 위한 ‘사내 강사 시스템’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내 강사 시스템이란 회사가 수주한 취업 관련 행사에 외부 강사를 초빙하지 않고 자사 양성과정 수강생으로 프로그램을 짠다는 의미다. 강의료 등을 아끼고 자사 양성과정 수강생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초보들을 ‘전문가’로 둔갑시킨다는 이야기다. B씨는 “취업 캠프의 자기소개서 첨삭, 일대일 면접 코칭 등 직접 대면 지도를 해야 하는 시간에 주로 초보 컨설턴트를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당연히 컨설팅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은 물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초보들의 연습 상대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내 강사 시스템 때문에 취업 관련 프로그램의 전체 비용이 내려가면서 다른 부작용이 줄줄이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시간당 6만 원 안팎의 낮은 인건비는 전체 프로그램의 비용 수준을 낮추기 때문에 이를 무기로 전국의 취업 프로그램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적자원개발 분야 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는 C씨는 “속성 과정을 갓 수료한 초보들을 배치하면서 기존 취업 컨설턴트에 대한 인건비가 하향평준화 되었고, 전문성을 가지고 컨설팅·상담을 해왔던 전문 인력들이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전했다. 무분별한 속성 취업 전문가 양성이 시장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컨설팅 내용·강의·교재… 내용이 똑같네?
취업이 간절한 취업 준비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용’을 당한다는 게 속성 취업 컨설턴트의 가장 큰 핵심 문제이다. C씨는 “경력도,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취준생에게 진로 관련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강의 내용이나 컨설팅 내용에 대한 연구 없이 남의 자료를 가져다 쓰거나 베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A씨도 “사내 강사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강사들에게 커리큘럼을 공유하도록 하기 때문에 취업 관련 강의 내용이 거의 똑같다”고 밝혔다.

E사의 경우 자사가 배출하는 취업 컨설턴트를 대상으로 ‘취업교육 전문 강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면서 교육 관련 커리큘럼 등 노하우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대 공포증만 없으면 강단에 바로 서서 취업 전문가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취업 교육 시장, 메스가 필요한 시점”
점점 더 곪아 들어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격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C씨는 “진입 문턱이 전혀 없다 보니 자정능력이 떨어져 질 낮은 강의가 이어지고, 결국 그 피해는 학생과 취준생에게 돌아간다”며 안타까워했다. A씨는 “취업을 애타게 바라는 구직자의 간절함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 “최소한의 자격 제한이라도 두어야 문제가 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판단 능력도 취업 교육 시장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취업 전문가의 이력은 물론, 자신이 필요한 콘텐츠를 가진 ‘진짜 전문가’인지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감언이설에 넘어가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좌절뿐이기 때문이다.


글 박수진·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