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한 절믄이

인터뷰를 위해 류소미(28) 대표가 일러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한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낑낑대며 올라간 5층 건물 옥상에는 겨울이라 삭막하긴 했지만 ‘파릇한 절믄이’의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근사한 텃밭이 마련돼 있었다. 버려진 가구나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텃밭과 알록달록한 그림, 그리고 멋진 손 글씨의 푯말 등이 눈길을 끌었다. 류 대표는 “지금은 농한기라 텃밭이 초라하지만 농작물이 자라는 계절이 되면 더 멋지고 즐거운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스페셜리포트_청년 협동조합 열전] 그린 라이프 실천하는 ‘도심 속 농사꾼’
[스페셜리포트_청년 협동조합 열전] 그린 라이프 실천하는 ‘도심 속 농사꾼’
‘파릇한 절믄이(이하 파절이)’는 도심 속 텃밭을 이용해 로컬 푸드를 실천하고 있는 청년 농사꾼들의 모임이다. 2011년 대학생 10여 명이 모여 시작한 이 모임은 점차 그 규모가 커져 지난 2013년 1월에 정식 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았다. 현재 파절이는 원년멤버였던 류소미, 나혜란, 이예성 3인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고 조합원 15명, 회원 27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나혜란 대표가 파절이 프로젝트를 제안했죠.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어요. 공동대표 3명 모두 미대 출신이다 보니 농사와 디자인을 접목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고요. 모두들 농사는 처음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 빠져들게 됐어요. 더불어 로컬 푸드, 그린 라이프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파절이 활동에 집중하고 있어요.”

처음 이들은 텃밭에서 키운 작물을 수확해 홍대 인근 카페에 자전거로 배달하는 일을 했다. 수확한 즉시 주변 상가에 배달해 신선하고 좋은 채소를 맛볼 수 있게 하는 취지였다. 이들의 활동은 금세 입소문이 났고, 함께 농사짓기를 희망하는 파절이 회원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회원이 늘어나면서 수확물을 배달하는 것은 중단했어요. 텃밭에서 나오는 작물을 회원끼리 나누기에도 부족하니까요. 그 전에도 판매 수익은 10만 원 정도로 미미하긴 했지만, 이제는 수익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요.(웃음) 그래도 재미있고 즐겁게 하고 있어요.”


옥상텃밭 만들며 본격적인 농사 시작
파절이는 광흥창역 인근 상가 건물 옥상(35평 규모)과 63빌딩이 보이는 한강대교 아래 노들섬의 텃밭(30평 규모)에서 각종 채소를 기르고 있다. 처음에는 환경연합의 배려로 환경연합 건물 옥상과 노들섬 텃밭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지난해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던 홍대 카페 주인장이 건물 옥상을 기부하면서 파절이의 옥상 텃밭이 탄생하게 됐다.

“옥상을 텃밭으로 만드는 데 3000만 원 정도 들어갔어요. 1000만 원은 소셜 펀딩을 받았고, 2000만 원은 서울시도시농업민간단체 10곳에 선정돼 지원받을 수 있었죠. 옥상 텃밭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 것 같아요.”

지난해 옥상텃밭에서는 50여 종의 채소를 재배했다. 토마토, 당근, 고구마, 바질, 고수 등 다양한 작물을 기르며 바쁜 한 해를 보냈다. 3월 말 씨앗을 심기 시작해 11월 말까지 매일 텃밭을 관리하는데 운영진, 조합원, 회원 모두가 농사 짓고, 수확하는 것을 함께한다. 작물을 수확하면 함께 요리해 먹거나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도록 한다. 농사를 짓는 것 외에도 내부적인 문화 행사도 다양하게 진행한다. 옥상텃밭에서 영화 관람을 하거나 재배한 수확물을 가지고 요리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 요리 강습이나 파절이 장터 등도 운영한다.

“지금 같은 농한기에는 주로 스터디 모임을 해요. 농사 초보자들이 많으니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거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교재를 만들기도 하고, 선생님을 초청해 특강을 듣기도 해요. 농사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같은 작물도 이 건물 옥상에서 재배한 것과 바로 옆 건물 옥상에서 재배한 것이 결과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공기, 온도, 습도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받죠. 공부할 것이 아직도 많아요.”


“협동조합, 이상적인 비전만으로는 어려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사법에 대해 공부하기도 벅찬 이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졌다. 바로 ‘협동조합’이라는 더 어려운 주제다.

“사실 저희가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잖아요. 하다 보니 회원 수가 늘고, 단체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다 보니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저희에게는 도전이고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일단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현재는 회원비로만 운영되고 있는데 그 수익으로는 지금의 규모와 인건비를 감당하는 것도 힘들다. 대표 3인 모두 처음부터 수익구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터라 고민이 크다.
[스페셜리포트_청년 협동조합 열전] 그린 라이프 실천하는 ‘도심 속 농사꾼’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잖아요. 하다 보니 회원 수가 늘고, 단체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다 보니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저희에게는 도전이고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일단 2014년에는 회원 증가가 가장 큰 수익 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텃밭을 늘리는 것이 먼저고요. 지금 홍대에 옥상텃밭 2호점을 제안 받아 운영 준비를 하고 있어요. 2호점은 1호점과는 조금 차별화된 콘셉트로 운영해보려고 구상 중이죠. 회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부분도 생각하고 있어요.”

또 하나의 고민은 ‘조합원’. 조합원과 운영자들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하고 나누려다 보니, 속도가 너무 느려지고 힘들어지는 것. 조합원과 회원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 사이의 역할 차이가 미미하다는 것도 고민거리 중 하나다. 류 대표는 “협동조합이 굉장히 이상적인 형태지만, 실제 운영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파절이는 보다 이상적인 협동조합의 모습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정했다.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려고요. 협동조합은 사업 조직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스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경영을 정말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너무 이상적인 비전만 갖고 시작한다면 금방 지칠 거예요. 많은 사람과 함께할 만큼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파릇한 절믄이’ 회원이 되려면…
파절이에 관심 있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회원 가입서를 작성하고 월 회비 5000원 이상을 납부하면 된다. 회원가입 후 3개월 이상 활동한 후 조합 내부 심사를 거쳐 조합원 자격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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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해나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파릇한 절믄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