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채용 시즌이 저물고 있다. 올해도 인문계는 펑펑 울고 이공계 역시 울었다. 인문계는 안 뽑아서 서러웠고, 이공계는 어렵게 뽑아서 힘들었다.

특히 취업시장에서 가장 하층민이라는 문과녀(女)들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채용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지만 돌이켜 보면 긍정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서류 항목이 간소해지고 인사팀은 한층 마음을 열었다. 예전에 비해 지방 인재에게 많은 기회가 생긴 것 역시 주목해야 할 변화다.
[2014 하반기 공채 5대 키워드] 인문‘학’은 많이 보고, 인문‘계’는 안 뽑고
KEY WORD 01 인문학, 인문학 또 인문학
인문학은 누가 뭐래도 2014년을 강타한 ‘메가 트렌드’였다. 상반기 때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더니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인문학을 활용하겠다는 기업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4대그룹 중 유일하게 인문학 평가 영역이 없었던 LG는 하반기 들어 적성검사에 한국사와 한자를 평가하는 인문역량과목을 신설하며 합류했다. 여기에 CJ도 가세했다. CJ는 하반기 테스트 전형에서 역사와 회사 콘텐츠를 합한 융합형 인문학 문제를 처음으로 출제했다.

은행권은 예외 없이 모두 인문학을 강화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은 하반기 자소서에 ‘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쓰도록 했다. 필기시험에도 국사문제를 추가했다. 신한은행도 인문학 소양을 평가하는 새로운 형태를 구상 중이다. 도입 시기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가 될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앞서 올 상반기 자소서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을 선택한 이유와 느낀 점을 기술하라’는 문항을 신설해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했다.

하나은행도 토론면접과 필기시험에 인문학 관련 문제 수를 늘렸다. 우리은행은 이번 채용부터 지원서에 어학 성적과 금융 자격증란을 없앴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기 위해 한국사 자격증 소지자는 우대했다.


KEY WORD 02 심란한 인문계
대기업을 중심으로 ‘인문계 배제 현상’이 나타났다. 디스플레이, 테크윈 등 삼성 계열사 6곳과 LG디스플레이, 화학 등이 인문계 전공자를 뽑지 않았다. 현대차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정기 공채에서 개발 및 플랜트 부문만 채용했다.

금융권마저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기술금융과 정보보안이 금융권 화두로 떠오른 데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은행원에게도 수학적 사고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채용 공고문에 ‘이공계 전공자를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우리은행 역시 ‘정보기술(IT) 관련 전공자와 프로그래밍언어 능통자’를 선호했다. 덕분에 은행 공기업 등 인문계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의 올 하반기 채용 경쟁률이 100대 1을 훌쩍 넘었다.

우리·신한·기업 등 주요 은행에는 2만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며 평균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일 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통적으로 인문계 출신을 상당 규모로 채용하는 유통회사 입사도 바늘구멍이었다. 70명가량을 선발하는 롯데백화점에는 지원자가 7000명이 몰려 지난해(5000명)보다 40% 늘었다. 중견 유통그룹 이랜드에도 채용 인원 400명의 90배에 달하는 3만4000명이 지원했다.
[2014 하반기 공채 5대 키워드] 인문‘학’은 많이 보고, 인문‘계’는 안 뽑고
KEY WORD 03 탈스펙 전형
올 하반기 들어 증명사진란을 삭제한 곳이 눈에 띄게 늘었다. 기존의 현대차그룹에 이어 LG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이력서에 사진 첨부란을 전부 삭제했다. 외모가 당락을 좌우한다는 소문이 있는 승무원 채용에도 속속 사진이 사라지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과 에어부산은 하반기 객실승무원 채용 서류전형에서 사진을 입력하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지원자들이 면접용 사진촬영에 과도하게 비용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서류전형을 일절 반영하지 않는 탈스펙 전형은 이번 하반기에도 유지됐다. 현대차, SK, KT 등이 자기 PR이라는 이름의 오디션 전형을 통해 일부 인원을 서류전형 없이 선발했다.

탈스펙 흐름은 공공기관으로도 번졌다.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18개 금융공기업이 이른 곳은 이번 하반기부터 서류전형에 영어성적을 최대한 배제키로 했다.

시중은행도 이 흐름을 이어갔다. 국민은행은 자격증뿐 아니라 봉사활동, 해외연수 경험 등 거의 모든 스펙란을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삭제했다. 우리은행, 신한은행, 기업은행도 어학성적과 금융자격증 기재란을 없앴다.

스펙초월 전형도 번졌다. 어학성적 등 계량점수를 일절 배제하고 과제 수행결과를 토대로 필기 응시 기회를 줬다.


KEY WORD 04 채용 관련 정보 오픈
숨기는 데 급급했던 채용 일정이나 전형 방식을 공개한 기업이 많았다. 채용 브로슈어나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전형 일정과 절차를 공지해 구직자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오픈형’ 채용 방식은 구직자들 사이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롯데는 대기업 중 유일하게 신입 공채 면접과 인적성 검사 결과를 모든 응시자들에게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롯데는 지난 10월, 이메일로 최종 합격 여부를 발표함과 동시에 시험 점수를 같이 안내했다. 인적성 검사는 합격과 불합격 여부로, 면접은 역량과 토론 및 임원면접 각각의 지원자 평균과 합격자 평균, 지원자 점수 3개를 비교한 막대그래프 형식으로 제시했다.

친밀형 채용 행사인 잡페어를 새롭게 실시한 곳도 많았다. 아모레퍼시픽은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 잡페어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인사담당자의 채용과 관련된 심층 상담과 함께 면접용 메이크업 시연, 다과 서비스도 제공했다. 롯데는 대학 밀집 지역에 있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 매장에서 ‘잡카페 (Job-Cafe)’라는 이름으로 채용 상담 자리를 마련했다. CJ도 멘토와 함께하는 사옥탐방 프로그램인 ‘내일을 말하다’를 실시했다. 이 외에도 현대자동차, LG유플러스, SK, KT 등 대기업이 자체 채용 행사를 연이어 개최했다.
[2014 하반기 공채 5대 키워드] 인문‘학’은 많이 보고, 인문‘계’는 안 뽑고
KEY WORD 05 공공기관 지방 인재 채용 확대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지방 지원자를 우대해 채용하는 흐름이 번졌다. KT는 지역 거점대학 출신 인재를 우대해 채용했다. 이와 함께 기존 수도권 중심에서 진행하던 자체 채용설명회 ‘KT Star Audition’도 처음으로 각 지역에서 실시했다. LG유플러스도 ‘캠퍼스 캐스팅’을 열고 지역 인재를 따로 모아 면접을 진행했다.

지방대 할당제도 계속됐다. 삼성과 롯데는 신입 채용의 각각 35%, 30%를 지방대 출신으로 채운다는 방침이다. 올 하반기부터 지방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공공기관들의 지역 인재 모시기 움직임도 거셌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전북 출신 인재 15% 채용 목표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한국가스안전 공사도 충북 출신 학교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줬다.


글 이도희 기자 | 사진 한국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