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뒤 달라지는 것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감독 가와세 나오미 출연 무라카미 니지로, 요시나가 준, 스기모토 텟타, 마츠다 미유키

태풍을 앞둔 8월, 아마미 섬에서는 대보름 축제가 한창이다. 17세 소년 카이토(무라카미 니지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축제로 들떠 있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바다에서 남자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작은 섬마을은 시체로 인해 떠들썩해지지만, 정작 시체를 발견한 카이토는 그 사건에 관해 여자친구인 쿄코(요시나가 준)에게조차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작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함께 불치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무당인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쿄코는 어머니에게 임박한 죽음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며, 카이토에게 기대려 하지만 카이토는 쿄코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이기를 주저한다. 이혼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카이토는 매번 애인을 바꾸는 어머니로 인해 상처를 받은 상태. 영원한 사랑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소년 카이토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소녀 쿄코는 각각 자신들에게 닥친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까.

가와세 나오미의 신작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는 언제나 가족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해온 가와세 나오미 감독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과 소녀가 자신이 안고 있는 고통과 혼란을 극복하고 마침내 눈부신 첫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을 이 영화는 ‘바다’라는 거대한 상징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소년 카이토에게 있어서 바다는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운, 인생의 거대한 파고를 상징한다. 반면 과묵하고 소극적인 카이토와는 달리 매사에 진취적이고 굳센 성격의 쿄코에게 바다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영원한 안식처다.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에서 여성성, 혹은 모성은 삶의 미스터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감정을 의미한다. 쿄코의 어머니는 쿄코에게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영원히 이어져 있으며, 죽음 이후에도 언제나 그녀의 일부가 쿄코와 함께할 것이라며 다독인다. 바다, 나무, 산과 같은 영원한 생명의 신비는 인간에게도 예외가 아니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순환할 뿐이라는 동양적인 세계관은 이 영화 속에서 쿄코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정의하고 있다.

이렇듯 생명의 신비, 혹은 사랑의 신비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거대한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후 찬란한 결실을 맺는다. 소년과 소녀는 마침내 자연의 품 안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나누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새롭고 신비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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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은영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