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금부터 조교님을 떠올려보자. 과순이·과돌이 심부름시키는 사람?

교수님의 심부름꾼?

서류 처리해주는 사람?

이 많은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없을 만큼 대학교의 조교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하는 일, 월급, 고충까지 조교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을 위해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느라 애먹었다는 조교 경험자들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조교에 관해 궁금한 이야기] 가깝고도 먼 당신은 a.k.a 조교님!
조교의 정체

캠퍼스에서는 교수, 학생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대학 조교도 그중 하나. 학생과 교수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교는 학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빠질 수 없는 직책이다. 떠올려보자.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휴학·복학을 해야 할 때, 시험을 볼 때 찾는 곳은 언제나 과 사무실이었다. 조교는 학과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는 ‘학과 백과사전’과 같은 존재이자 행정 처리에 서툰 학과 학생들을 두 팔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고마운 사람이다.

이처럼 학과에서 학사 행정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학생 지도에도 관여하는 조교는 ‘학과조교’에 속한다. 대학의 조교는 보통 ‘행정조교’와 ‘연구조교’로 나뉘는데, 학교 규정에 따라 ‘학과조교’, ‘교육조교’, ‘장학조교’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나아가 기숙사를 관리하는 ‘기숙사조교’, 교수를 옆에서 보필하는 ‘교수조교’의 형태도 있다. 현행법상 대학 조교의 채용 권한은 각 학교가 가지고 있으며 국립대의 경우 조교는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각 학교가 규정하는 ‘교원’의 기준을 적용받는다. 임금, 근무 기간, 채용 인원과 형태 등도 학교 자율에 맡기고 있다.


조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조교의 주 업무는 앉아 있기?
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조교의 경우 행정 업무, 학생 상담, 서류 정리, 시험 감독, 전산 처리, 교수님 심부름 등 사무 처리가 주요 업무이기 때문에 학생들 눈에는 ‘하루 종일 과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교수마다 진행하는 수업 자료를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 강의실 관리까지 맡은 업무가 20여 개가 넘어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 행정 업무 외에 학과마다 추가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어 퇴근이 늦어지는 것은 부지기수. 방학 중에도 업무가 계속되기 때문에 쉬지 못한다. 조교는 결코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


▶ 대기업 부럽지 않은 월급?
그렇다면 온종일 과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조교의 월급은 얼마일까. 대학 조교의 월급은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으며 각 학교마다 지급하는 금액이 다르다. 학과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조교의 경우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주 5일, 하루 8시간 기준으로 평균 130만~14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것이 보통. 학교에 따라서는 월급이 아닌 한 학기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 취업의 피난처?
재작년 졸업하고 소식이 끊겼던 선배가 조교로 나타났다.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취업에 실패한 선배’라는 낙인을 찍고 만다. 댓츠 노~ 노! 가자미눈으로 선배를 보기 전에 조교가 될 수 있는 자격부터 파악하자. ‘교수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2조에 따라 조교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학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졸업한 선배가 조교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 자신이 졸업 후 과 사무실에 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 법적인 기준은 없지만 각 대학에서는 학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정조교의 경우 보통 3년까지를 최대 근무 기간으로 두고 있다. 짧게는 1년마다 바뀌는 경우도 있다. 안주하지 말고 사회에 나가 뜻을 펼치라는 깊은 뜻. 조교를 선발하는 시험이나 기준은 없지만 조교를 하고 싶다면 선배와의 인맥을 잘 유지하거나 교수와의 원활한 소통에 노력할 것. 두 가지 중 하나만 능해도 조교 후보 1순위.



조교 신문고
“내 말 좀 들어주세요!”
▶ 교수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J조교
조교 생활 만족도 99%! 하지만 교수님, 개인 심부름은 너무해요. 교수의 개인 조교는 비서 역할을 하는 게 맞긴 하지만, 택배를 부탁하거나 가족에게 물건을 전달하라고 하실 때는 정체성이 흔들린다고요.


▶ 귀가 간지러워도 참고 또 참는 K조교
선배보다는 친누나, 친언니의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는 건데 내 진심을 무시하는 너희들이 원망스러워! 하찮은 잔소리쯤으로 여기다니…. 뒤에서 욕하는 것도 들었다고. 똑같은 상황을 미리 겪어보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해주는 말이니 무시하지 말아줘.


▶ 기숙사조교 경력 1개월의 노련한 K조교
조교들은 항상 못되게 굴고 나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 ‘조교’라는 것에 이유 없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야. 인사도 안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하지만 조교도 교칙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야.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제재를 한다고 해서 미워하지 말아줘. 우리도 뭐든 봐주고, 뭐든 해주고 싶다고.


▶ 차라리 발이 8개인 문어가 되고 싶은 L조교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자꾸 나에게 맡기는 거니! 매일 PC방에 가서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은 잘 하면서 클릭 세 번만 하면 끝나는 학과 일은 왜 하지를 못하니. 한 번쯤은 해보고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닐까? 여러분은 ‘대학생’이잖아요!



현직 조교의 생생한 이야기

“개인 역량부터 인간관계까지 많은 것을 얻은 조교 생활”
- 경현정 상명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조교

Q.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면
1교시 수업 시작 전 수업자료 준비를 위해 8시 30분 즈음에 사무실에 도착해요. 우선 컴퓨터, 복사기, 팩스 등 학과 업무 처리를 위해 제 손이 되어 주는 각종 기기들을 작동시키고 당일 학과 시간표를 확인하죠. 그리고 학교 계정 업무 메일을 확인해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로 작성해 놓아요. 빨간 펜으로 지워가며 일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데, 오전에는 수업 준비와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오후에는 주로 학교에서 내려온 각종 사무 및 교과과정 업무와 학과 개별 업무를 처리해요.


Q. 보람을 느낄 때는
한 학생이 이수 학점을 잘못 확인해서 졸업을 못하는 상황에 처할 뻔 했어요. 제가 수강신청 전에 알아채고 조정해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다행이었죠. 이렇게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학생들을 도와줄 때 보람을 느껴요. 학생들이 그럴 때 “고맙다”라고 말해주면 그간 힘든 것도 다 잊어요.


Q. 조교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사무 처리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어요.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다 보니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도 생겼죠. 또한, 다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관계에 대해 배운 점이 많아요. 주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대학생과 달리 조교는 교수님, 행정실 관계자 등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물론, 나이가 어린 학생들과도 소통해야 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노하우를 얻었어요. 조교 생활이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그 경험을 토대로 생활하고 있어요.



“사회 초년생에게 필요한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기회”
- 김하선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봉현철 교수 조교

Q. 자신이 맡은 업무는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봉현철 교수님(현 한국액션러닝협회 회장)의 개인 조교예요. 교수님의 액션러닝 강의안 제작 및 수정을 하고 그 외 교수님 지도학생 관리, 액션러닝 수업 관련 자료 준비, 연구실 청소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가끔은 서울에 있는 한국액션러닝협회에 가서 심포지엄이나 행사 진행을 돕기도 해요.


Q. 업무가 힘들 때가 있다면
조교를 하며 컴퓨터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어요. 업무 특성상 엑셀이나 워드 등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으면 빠르게 일처리를 할 수 있거든요. 제가 교수님의 조교를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학과 조교가 아닌 교수님의 개인 조교이다 보니 학부생 자격으로도 일을 맡을 수 있었죠.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메일 보내는 법 혹은 전화하는 법, 팩스 보내는 법과 같이 간단한 일에도 서툴렀어요. 하지만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교수님께서 항상 격려해주신 덕분에 3년째 조교로 일하고 있어요.


Q. 보람을 느낄 때는
조교 생활을 하면서 배우게 된 모든 것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와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회사에 들어가서 신입사원들이 하는 기본적인 업무뿐 아니라 마음가짐, 자세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글 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