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의 자격을 얻은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지원서에 미국, 영국, 캐나다를 적을 줄 알았건만, 이들은 달랐다. 카자흐스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특별한 국가에서 고독하게, 하지만 누구보다 당차게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대학생 7인의 ‘교환학생기’를 공개한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왕찬현
서강대 영미어문 09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2014년 1월부터 7월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에서 공부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영국으로 떠나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다른 국가를 알아보던 중 남아공이 눈에 들어왔다.

만델라의 후배 수학했던 학교는 넬슨 만델라가 수학하기도 한, 세계 100위권 안에 드는 명문대였다. 전공에 맞게 글로벌문학과 아프리카 문학 수업을 포함해 총 3과목을 수강했는데, 매일 평균 3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교육 수준은 높지 않은 편. 하지만 학점 받는 게 어려웠다. 수강생의 3분의 1은 평균 F학점을 받았으니까. 대부분의 교환학생이 아프리카 내에서 온 친구들이어서 교환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덕분에 독립심을 쑥쑥 키울 수 있었다. 댄스 동아리도 하고, 친구 집에 놀러가기도 하며 지냈다.

남아공에서의 생활 요하네스버그는 아프리카의 뉴욕 같은 곳이라 패스트푸드점이나 레스토랑이 많았고, 고추장이나 밑반찬을 준비해 가서 음식에 불만은 없었다. 그곳의 음식도 꽤나 입에 맞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독특한 문화. 흑인, 백인, 중국·인도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 문화들이 잘 섞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자의 색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치안은 불안한 게 사실이지만, 가지 말라는 곳만 가지 않으면 걱정 없다. 마음 같아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모두 가고 싶었지만, 교통비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여행은 쉽지 않았다.

교환학생이 기억할 것 워낙 낯선 곳이어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대학생 친구들의 경우 서로에게 호기심이 있어서 마음을 열면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길. 또한, 경찰서에서 범죄 기록 관련 서류를 떼는 것은 물론, 대사관에 예치금 지불, 현지 보험도 가입 등 비자 받기 위한 요구 조건이 까다로우므로 가기 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박치훈
서강대 경제 08
칠레 산티아고


2013년 6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칠레 산티아고 가톨릭대학교(Pontificia Universidad Catolica de Chile)에서 공부했다. 5개월간 떠났던 남미 여행 때의 아쉬움과 더불어 대학생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 칠레행에 올랐다.

칠레에서 배운 과목 스포츠 과목을 포함해 총 5과목을 수강했다. 하루에 3~4시간 정도 수업을 들었는데, 전공 수업은 한국과 비슷할 것 같아 칠레를 포함해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과목을 수강했다. 학기는 7월부터 시작했지만 한 달 일찍 출국해 스페인어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페인어 수업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 전에 교수님께 수업자료를 부탁하기도 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공부했다. 현지 친구들도 C학점에 만족할 만큼 학점 받기가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한 덕인지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았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가기 전에 준비한 것들 서류 준비가 쉽지 않다. 입학허가서를 받기 위한 지원서를 직접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영문 건강진단서도 필요하다. 항공권의 경우, 스페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에 지원하면 장학금을 주기 때문에 부담 없이 구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격이 오르는 방학 때를 피해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현지 라디오 방송, 신문 기사 등을 보면서 언어 준비를 열심히 했다.

눈물의 자취생 칠레에는 ‘기숙사’라는 개념이 없어 자취방을 구해야 한다. 학교에서 자취방 추천 목록을 주긴 하지만 온라인 사이트(www.compartodepto.cl)를 활용하면 수수료 없이 방을 구할 수 있다. 방은 월 30만~50만 원 정도. 내가 머물던 자취방은 비교적 저렴했는데, 그 탓에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아서 따뜻한 물이 담긴 페트병을 끼고 살아야 했다.

칠레 교환학생 지원자에게 가기 전에 자신이 교환학생으로 가려는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한다.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원한 교환학생이라면 얻어올 것이 없다.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길. 또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칠레의 문화는 느리다. 커피를 다 만들어놓고도 5분 뒤에 건네주는 여유로움이란.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이병찬
숭실대 경제 09
인도 하이데라바드


인도 하이데라바드 대학교(University of Hydera bad)에서 2014년 7월부터 11월까지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어학 공부 겸 ‘인도’라는 신흥시장에 대해 알기 위해 떠났다.

인도에서 경영학 배우기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는데, 나는 경영학, 국제교류학 등 6과목을 수강했다. 경영학의 경우 경영대학이 없고 대학원만 있어서 대학원 과정을 들었다. 한국 대학교 수업의 전공 기본 수준 내용이어서 이해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전혀 다른 인도의 모습 학교 지원금은 없었지만, 토플 80점 이상을 달성하면 본교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제도에 따라 금전적 부담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가려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 불안한 치안 등등. 처음에는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이 탔지만, 인도는 생각보다 무척 안전했다. 걱정할 것 하나 없는 곳이다. 또, ‘손님은 신이다’라는 격언이 있을 만큼 인도는 친절한 곳이었다. 덕분에 빠르게 적응했다.

인도에서의 생활 주말에는 교환학생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취미생활을 같이 즐겼다. 캠퍼스가 숲 속에 넓게 자리 잡고 있어서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결국 다 못 가봤지만. 인도는 주마다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달라서 여행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캐를라’라는 지역은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치안도 좋고 볼거리도 많아서 인도를 가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영어공부에 집중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최대한 한인을 멀리 해야 했다. 그리고 대화할 때는 머릿속에서 상대의 말을 완벽히 해석한 다음 말을 내뱉는 습관을 들였다. 이 과정이 익숙해지자 생각을 영어로 할 수 있게 됐다. 혼잣말을 할 때도 영어로 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발음을 하나씩 교정 받으며 실력을 쌓았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윤태현
숭실대 경제 07
아르헨티나 멘도자


아시아인이 한 명도 없는 아르헨티나 멘도자 쿠요 국립대학(Universidad Nacional de Cuyo)에서 공부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미국에 가려고 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는 조언을 듣고 아르헨티나를 선택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 본교 등록금, 생활비, 항공료, 주거비 등 교환학생도 꽤 많은 비용이 들지만 나는 덜 든 편이다. 등록금은 장학금을 받아서 해결했고, 교류협약조건에 따라 주거비 지원도 받았다.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처음에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한인마트에서 파는 참기름 가격만 3만 원이 넘었으니 재료를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힘들게 공부하는 교환학생을 가엽게 여긴 한인 아주머니의 도움과 기숙사 친구들의 배려 덕분에 적응해 나갔다.

스페인어로 듣는 수업 ‘안녕’. 내가 스페인어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아르헨티나에 교환학생으로 오는 사람은 대부분 남미계였기에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라 강의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수업 내용을 녹음해봤지만 들리지 않으니 소용없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친구의 노트를 빌려 옮겨 적은 다음 사전으로 하나씩 찾아 공부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한국에서보다 3배는 열심히 했다. 정말이다. 다행히 교수님이 도와준 덕분에 스페인어 실력도, 좋은 점수도 챙길 수 있었다.

한국인 ‘스타’ 케이팝 덕분에 스타가 되기도 했다. ‘슈퍼주니어’를 좋아한다며 나에게 사인을 받아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뿐 아니었다. 남미 전체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어서 여행 중에도 의도치 않게 ‘스타’가 됐었다. 기분 좋은 추억.

아르헨티나 지원자에게 여행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경험의 전부는 아니다. 학교 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으니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해야 한다. 한국에 비해 산업발달이 저조한 아르헨티나의 경우, 사례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 그때마다 나에게 삼성, 현대와 같은 기업에 대해 물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깨달았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고대연
명지대 아랍지역 07
모로코 라바트


2012년 9월부터 1년간 모로코의 EGE-라바트(Ecole de Gouvernance et d’Economie de Rabat)에서 수학했다. 전공은 물론, 중동지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나를 모로코로 이끌었다.

최초의 교환학생 명지대 최초로 모로코로 교환학생을 떠난 탓에 해당 학교에 교환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기 전 해당 학교에 메일을 보내 정보를 얻기도 했다. 한국인은 같이 간 친구와 나, 딱 2명.

모로코의 생활 아랍어가 공식 언어지만 프랑스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어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오묘하게 섞인 언어를 쓰는 곳이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영어를 써서 소통이나 공부를 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교환학생이자 자취생으로 지냈는데, 생활비는 한국에서 자취하는 것과 비슷했다. 학교가 시내와 거리가 있었던 까닭에 식재료를 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한인의 초대로 식사를 해결하며 적응해 나갔다. 주말에는 한국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라바트 지역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있어서 서핑을 원 없이 즐겼다. 배로 2시간이면 스페인에 닿을 만큼 유럽이 가깝다는 것도 좋았다. 교통비가 저렴해 여행도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 독일까지 왕복항공료가 8만 원 정도.

땀 흘려 쓴 리포트 배우고 싶었던 중동의 경제·사회학을 공부했다. 중동에 있는 교수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새롭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유럽, 미국 등 다른 국가의 학생들과 함께 프레젠테이션,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수업시간은 하루에 3~4시간 정도. 다행히 학점은 잘 받았는데, 문제는 리포트였다. 영어로 써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리포트 형식이 굉장히 엄격해서 틀에 맞추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떠나기 전에 자취를 해야 하므로 주거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비자 만료 기한, 연장 방법 등 비자에 관한 정보도 숙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목표를 바로 세워야 한다. 나는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외국 친구들을 사귀면 상상할 수 없는 기회를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나서길.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노광천
건국대 응용통계 10
카자흐스탄 알마티


2014년 1월부터 5월까지 카자흐스탄 키멥 대학교(KIMEP university)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봉사활동하며 느꼈던 ‘스탄’의 매력에 빠져 심사숙고 끝에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카자흐스탄에서 공부하는 경제학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 가기엔 너무나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해 선택한 카자흐스탄. 다녔던 학교는 상경·경영 단과 대학이었는데, 중앙아시아를 통틀어 상경·경영 계열 명문이었다. 사립대라 등록금은 주변 학교에 비해 3~4배가량 비쌌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총장이었던 것이 특별했던 학교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도 많았다. 통계학은 대학원 과정이어서 경제학 관련 과목을 들었고, 러시아어 수업까지 해서 총 5개 과목을 이수하고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소통!

취미는 승마 교환학생이라고 해서 매일이 즐겁지는 않은 법. 처음 두 달간은 열심히 놀러 다녔지만, 나머지 두 달간은 헛헛한 마음이 컸다. 취미 생활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승마장을 찾았다. 명색이 기마민족이 아니던가. 현지 친구들도 잘 몰라 혼자 인터넷으로 열심히 뒤져 가까스로 닿은 승마장은 내 단골 놀이터가 됐다. 비용도 저렴해 정말 신나게 탔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카자흐스탄에서 살기 기숙사에서 지내며 직접 요리를 해 먹었기에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내가 있던 알마티에서는 식재료만큼은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많아서였는지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호의적으로 대해줘 불편한 것은 없었다. 러시아를 여행하기도 했는데, 그동안 가졌던 편견을 완전히 지우는 기회였다. 생각보다 개방적이었고, 복지 제도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카자흐스탄으로 떠난다면 유학생 보험부터 챙겨라. 어깨를 다쳐 병원에 갔었는데, 의료비 복지가 잘 되어 있어 비용 문제는 없었지만 질이 좋은 편이 아니라 한국에 와서 또 다시 치료해야 했다. 유학생 보험을 들어 놓지 않으면 2배, 3배의 고생을 하게 될지도. 또 하나, 욕심을 버리길. 영어, 러시아어, 한국에서 못했던 취미생활, 여행 등 너무 많은 걸 욕심냈다. 하지만 다 하기엔 무리였다. 짧은 기간에 집중할 수 있는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교환학생 가이드] 내가 모로코로 떠난 이유? 교환학생 7인의 이색 체험기
박재형
명지대 국제교류 08
터키 이스탄불


2013년 9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터키 이스탄불 바흐체세히르 대학교(Bahcesehir University)에서 공부했다. 해외 선교를 가서 해외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새로운 곳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터키’로 떠났다.

터키에서의 생활 터키의 학교와 명지대의 교류협약에 따라 기숙사비 지원을 받아서 주거는 문제없었다. 게다가 매달 15만 원 정도가 들어 있는 ‘소덱스 카드’, 말하자면 용돈카드가 주어져서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처음에는 음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도 나를 괴롭혔다. 불가리아를 여행하며 돼지고기를 엄청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발표수업 국제통상학을 전공했지만 마케팅 수업을 주로 들었다. 2학년 때 전과를 했던 터라 항상 학점을 꽉 채워 들어야 해서 총 18학점을 신청해 수강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각 다른 국가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과 팀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것. 발표 수업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때마다 발표자로 나서서 수업에 참여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점수를 잘 주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열심히 했다. 어디를 가나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낯설던 터키의 문화 다른 중동 국가도 그렇겠지만, 하루에 5번씩 ‘아잔’이라는 기도를 했다. 터키인들은 한국인들에게 호의적이었는데, ‘형제의 나라’라며 친절히 대해주었다. 다만, 이스탄불의 교통 체증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했다. 15분 걸릴 거리가 러시아워에 걸리면 2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였다.

교환학생 지원자에게 한 마디 취업이며, 군대며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압박이 많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 경험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비슷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게 전부지만 외국에서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임하길 바란다.

다시 교환학생을 떠난다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독일로 떠나고 싶다. 독일에서 일하는 게 목표이기도 하고.


글 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