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방송 만드는 서득현 PD

SBS 프로그램 ‘감칠맛의 비밀’, ‘12년의 기다림, 김연아의 올림픽’ 등 화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서득현 PD. 승승장구, 비단길을 걸어왔을 것 같은 그의 인생도 알고 보면 순탄치 않았다고. SBS 견습생으로 시작해 온갖 역경을 이겨낸 그는 이제 ‘인문학 방송’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지상 멘토링_다큐멘터리 PD]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본질을 바라보는 학문”
서득현 PD는?
아이온 인문학 연구소 소장
2009~2010 치즈팩토리 대표
2005~2009 라몬픽쳐스 대표


<작품>
KBS1 행복한교실
KBS2 행복한밥상
SBS 감칠맛의 비밀 2부작
SBS 12년의 기다림
김연아의 올림픽 2부작
SBS 솔로몬의 선택
SBS 김연아 올댓 스케이팅
책 <행복한 밥상> 이지북


PD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요?
2001년에 방송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보통 PD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공채 PD, 다른 하나는 계약직 PD가 되는 거예요. 공채 PD는 언론 고시를 합격해서 되는 경우를 말하고, 계약직 PD는 저처럼 견습생으로 일하다가 PD가 되는 경우를 말해요. 원래는 지방에 살면서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학교 교수님이 SBS 견습생으로 추천을 하셨어요. 그때 방송국 일을 처음 접하고 재미를 느껴 3년 만에 입사를 했어요. 방송국 전체를 통틀어 상당히 드물게 PD가 된 케이스였죠.


꿈을 바꾼 계기는?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영화만 보고 살았죠. 그 당시 대학교에 영화관련 학과는 연극영화과밖에 없었어요. 결국 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공을 선택했죠. 방송국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그냥 평범하게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어요. 그러던 중 SBS 방송국의 PD 출신 후배를 알고 있던 교수님과 친해지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로 SBS 견습생이 된 거죠. 그때부터 꿈이 바뀌었어요. SBS 견습생이었던 3년 동안은 제 생활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나요.


계약직 PD로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저는 27살 때 방송 일을 시작했어요. PD를 보조하는 FD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죠. 그래서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했어요. 촬영장에 가면 다 충전해 놓은 배터리가 없어지곤 했어요. 동료들이 몰래 숨겨놓은 거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를 내보내고 싶었대요. 아무리 주변에서 방해를 해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어요. 온갖 잡무를 다 맡아하고 5살 어린 친구에게 ‘선배’라고 존대하며 1년 동안 담배 심부름을 하기도 했어요. 한 번 출근하면 1주일 뒤에 집에 들어올 정도로 바빠서 씻지도 못했죠. 편집실에 앉아서 편집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도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어요. 결국 6년 만에 연봉 1억 원을 받게 되고 개인 프로덕션을 차려서 큰 돈을 벌게 되었어요.
[지상 멘토링_다큐멘터리 PD]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본질을 바라보는 학문”
잘 나가는 PD가 인문학연구소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PD로 잘 나갔을 때는 무서울 것이 없었어요. 청담동에 개인 프로덕션을 차렸고 33살에 비서까지 두었어요. 여세를 몰아 스포츠 다큐멘터리까지 도전했죠. 김연아 다큐멘터리가 그때 찍었던 거예요. 그러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사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소송 때문에 정신도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깡패들이 찾아와 협박을 하기도 했어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였어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아는 선배가 교양프로그램 하나를 맡아보라고 제안을 했어요. ‘행복한 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서 이지성 작가를 만나 친해지게 되었죠. 이지성 작가의 권유로 <논어>와 <국가론>을 읽었는데 그때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후에 이지성 작가에게 인문학 관련 콘텐츠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아이온 인문학 연구소예요.


어떻게 인문학과 방송을 융합할 생각을 했는지요?
인문학은 모든 것의 시초예요. 방송은 물론 대부분의 학문은 인문학에 뿌리가 있어요.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본질을 바라보는 학문이에요. 어떤 경우든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적 사고죠. 방송을 보거나 제작할 때 인문학적 사고로 바라봐야 해요. 방송의 목적은 돈이 아닌 사람이니까요. 요즘 방송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방송이 메시지 전달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에요. 인문학은 방송을 방송답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거죠.
[지상 멘토링_다큐멘터리 PD]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본질을 바라보는 학문”
[지상 멘토링_다큐멘터리 PD]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본질을 바라보는 학문”
다큐멘터리 PD는 사명감이 필요해요. 무언가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게 해주고 본모습을 똑바로 보게 해주는 것이 다큐멘터리니까요.


인문학적으로 방송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죠?
본질을 본다는 뜻이에요. 본질이 잘못되면 방송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돼요. 방송이 그저 돈벌이 수단이 되니까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고 결국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낳게 되었어요. 방송인들이 나쁘다기보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행복한 밥상’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일이었어요. 다른 나라에 가서 요리사에게 MSG를 써도 되느냐 물었죠. 그런데 그 질문 자체를 의아해하더라고요. ‘요리할 때 설탕을 써도 되냐고 묻는 것’과 같다면서요. 요즘 MSG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이영돈 PD도 하지 않아요. MSG는 나쁜 것이 아닌데, 방송에서는 서로 MSG의 해악을 보도해요. 모두 본질이 엉뚱한 곳에 가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예요. 많은 제작자들이 방송을 자극적으로 만들지 말고 본질을 봤으면 좋겠어요.
[지상 멘토링_다큐멘터리 PD]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본질을 바라보는 학문”
다큐멘터리 PD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는 다른 프로그램과는 근본 의미부터가 달라요.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재미가 있지요. 예능의 목적 자체가 즐거움에 있으니까요. 반면 다큐멘터리 PD는 사명감이 필요해요. 무언가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게 해주고 본모습을 똑바로 보게 해주는 것이 다큐멘터리니까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좋아하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큐멘터리 PD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고 사람들에게 본질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PD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미디어는 대중들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에요. PD가 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돈을 얼마 버느냐보다 진정으로 일을 즐기는 것이 중요해요.

좋아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으세요. 인문학적 입장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그 뒤부터는 쉬울 거예요.


글 전세훈 대학생 기자(한신대 국제관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