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핑크 변지민 웹툰 작가

태종 이방원이 아들 양녕대군에게 톡을 보낸다. “양녕아, 니 동생 성적표 좀 봐라. 너랑 비교가 안 된다.” 그러자 양녕, 바로 답장을 보낸다. “충녕이 호군데요.

싸움 짱 못함.” 최근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조선왕조실톡’의 한 장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일화를 등장인물들이 모바일 메신저에서 대화하는 듯한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 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서울대 미대에 재학 중인 미모의 웹툰 작가, 무적핑크 변지민 작가다.
[멘토링 인터뷰] “뽀레버 탕평! 정조 오빠 팬클럽 출신이에요”
‘실질객관영화’ 이후에 좀 쉬려나 했더니, 여전히 바쁜 것 같아요.
아니에요. 놀고 있었어요. 요즘은 졸업 전시와 다음 작품 준비하는 것이 겹쳐서 좀 바빠졌지만요.


놀았다고는 했지만 ‘조선왕조실톡’도 꾸준히 업데이트 했잖아요.
사실 조선왕조실톡도 노느라 시작했던 거예요. 처음에는 꾸준히 올릴 생각은 없었어요. 페친들끼리 보자는 의미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좋아요’ 숫자가 엄청 올랐더라고요. 놀랐어요.


어떤 계기로 만든 거예요?
2012년에 조선시대 로열패밀리에 관한 내용을 한번 다룬적이 있어요. 조선의 왕들은 거의 부자관계이거나 친척이니 결국 가족 얘기잖아요. 그 느낌을 담아 가족 같은 에피소드를 다뤘었죠. 그때가 생각나 충동적으로 시작했어요.


한국사에도 일가견이 있더라고요.
관심은 있지만 그냥 일반인 수준이죠. 예전에 연재한 농사 만화에 야채랑 채소 중 어떤 것이 옳은 말인지를 다루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때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했거든요. 채소는 사람이 기르는 것이고, 야채는 자생적으로 자라는 일종의 들풀이더라고요. 결국 ‘우리가 농사 지어 기르는 것은 채소다’라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는데, 그때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한국사에 더 관심 갖게 됐어요.


미대를 다니고 있긴 한데, 고등학교는 문과를 나왔을 거라 예상되네요.
네. 제가 여고를 나왔는데 국사 선생님이 역사 속의 숨은 에피소드를 많이 얘기해 주셨어요. ‘정조는 꽃미남이었다’, ‘정조가 당시에 안경을 썼다’ 같은 내용이요. 그래서 그때 당시 정조에 꽂혀서 ‘뽀레버 탕평’이라는 정조 오빠 팬클럽도 만들었어요.(웃음) 보통 국사책에서는 왕을 소개하면 그 분의 업적과 실시한 제도 등을 엮어서 설명하잖아요.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좋아했어요. ‘세종은 태종의 아들이고,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고기를 좋아했다.’ ‘문종은 잘생겼다.’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한 명 한 명 인물 열전으로 생각하다 보니 왕들이 하나의 캐릭터 같이 느껴져요.


그런 식으로 공부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를 공부할 때도 그들의 이념이 충돌하는 것을 대화하면서 다투는 것처럼 생각하는 식이요. 아무래도 도식화가 쉬워지죠.


조선왕조실톡도 그렇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실질객관동화 때도 다양한 시도가 많았죠.
저는 그림 말고 다른 것을 활용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타임라인을 패러디한다든지, 메신저의 형태를 차용한다든지요. ‘실질객관동화’에서 프로젝터를 벽에 쏴서 장화홍련을 연출한 것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웹툰 작가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교 입학 후 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했는데 딱히 할 게 없더라고요. 당시에 블로거로 활동하던 때라 이웃들이랑 재미삼아 보려고 엽기그림체 세일러문을 올렸어요. 그게 인기를 끌게 됐고, 연락이 와서 연재도 하게 됐죠.
[멘토링 인터뷰] “뽀레버 탕평! 정조 오빠 팬클럽 출신이에요”
서울대 재학 중이잖아요. 한 인터뷰를 통해 얼굴과 학력이 공개됐는데, 독자들이 배신감을 좀 갖는 것 같더라고요. ‘서울대’도 모자라 ‘미모’의 작가라고요.
제가 여자라는 사실에 충격 받으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여고생이 ‘오빠, 여자 아니죠?’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언니라서 미안하다고 답장을 보냈죠. 또 28살 예비역이라고 밝힌 분은 나중에 기회 되면 술 한잔하면서 군대 얘기하고 싶었는데 안타깝다고도 하시고요. 아무래도 그림체가 투박하고, 어투 자체가 다정하지 않다 보니 그런 오해를 불러왔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 웹툰을 계속 그려왔는데, 두 가지를 함께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외부에서 자극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학점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꽂히는 과목은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아닌 과목은 미루고 또 미루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수업 듣다가 소재를 얻기도 하고, 영감을 받아 나온 작업물도 많고요.


웹툰 작가로서 가장 만족스러울 때는 언제예요?
원고료 받을 때? ‘이번 달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또 한 달을 버텼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그것 말고도 소소한 기쁨들은 많죠. 댓글이나 별점 달릴 때 등이요.


계속 웹툰을 그리는 이유는 뭐예요?
하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가 계속 생각나요. 저는 한 작품이 끝나면 한 5개월 정도 지나 다음 작품을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작가들은 작품이 끝남과 동시에 다음 작품을 시작해요. 그런 걸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괜찮다 싶은 소재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거든요.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체력이 아닐까요. 그리고 끈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잠수를 타면 안 된다는 거예요. 데드라인의 개념을 알고 있으면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병이 나든, 정전이 되든 마감은 해야 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성이 있어야 해요. 웹툰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작업이잖아요. 나만 웃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웃을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야죠.


독자들은 일주일에 한 편 그리는 것쯤은 쉬울 거라고 생각을 하죠.
굉장히 촉박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리포트를 써서 그걸 백만 명의 교수에게 평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고 나서도 보는 눈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계속 스스로 검열과 수정의 시간을 갖게 되거든요. 고치고 싶은 게 계속 보이죠. 그런데 의외로 완전하다고 생각이 들 때까지 수정해서 보낸 작품의 반응이 별로일 때도 있어요.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냥 처음 온 느낌대로 가야 하는 것 같아요. 쇼핑할 때 처음에 마음에 드는 옷을 놔두고 3시간을 쇼핑해도 결국 그 옷을 사게 되잖아요. 뇌보다는 하트를 믿는 게 나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는 어떻게 되나요?
SF나 로맨스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로맨스가 늘 핑크빛은 아니잖아요? 흑색 로맨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졸업 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좀 더 할 것 같아요. 휴먼 컴퓨팅 쪽으로 생각해보고 있어요. 저는 가상 현실이라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웹툰 작업이랑 닮은 것도 많고요. 없던 세상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물론 웹툰도 소재가 있다면 계속 할 것 같아요.


글 박해나 기자 I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