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 고정 코너 ‘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는 세상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신입사원들이 등장하는 릴레이 인터뷰 코너다. 어떤 준비와 노력으로 그 좁은 취업문을 통과했는지 비법을 털어놓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대개 치밀한 계획과 실행력, 남다른 스펙을 어필해 루키로 거듭난 능력자들. 하지만 개중에는 믿지 못할 저질 스펙의 소유자도 있다. 학점, 자격증, 영어 실력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우기 어려운데도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턱하니 낙점을 하는 경우다. 대체 이들은 어떤 무기로 러브콜을 받은 것일까.



게임에 미친 문제아, 게임으로 승부를 보다
엔씨소프트 / 안용성
[저질 스펙 뚫고 하이킥] 내세울 것 없던 그들, 보란 듯이 날아오르다
전공 부적응 끝에 제적. 도피하듯 어학연수. 귀국 후 재입학에 성공했지만 졸업 학점은 2.2.

게임에 미쳐 사느라 문제아 소리를 들은 안용성 씨의 프로필이다. 10여 년 동안 학교와 사회, 캐나다를 들락거리며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2011년 12월 드디어 자신이 안착할 곳을 찾았다. 바로 게임회사 엔씨소프트.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게임을 평생의 일로 만든 것이다.

98학번으로 서른을 훌쩍 넘긴 그가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고. 재입학 후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그는 우연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진로를 찾았다. “‘너는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하느냐’고 질문하길래 당연히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했죠. ‘그럼 그 일을 직업으로 삼지 그래’라는 말에 불현듯 ‘이거다’ 싶었습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명성을 날릴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던 그는 캐나다 어학연수를 하며 배운 프로그래밍 경력을 더해 게임업계 문을 두드렸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 손으로 만든 게임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 그리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게임에 대한 애정을 경력을 회사가 눈여겨본 것이다.

“‘늦었다’는 생각은 머리에서 지우고 진짜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보세요!” 안 씨가 특히 강조한 말이다.



금융 3종 대신 PT에 올인… ‘최종 합격’ 따내
STX메탈 / 박정모
[저질 스펙 뚫고 하이킥] 내세울 것 없던 그들, 보란 듯이 날아오르다
경제금융학 전공자가 ‘금융 3종 세트’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 더구나 대기업이나 금융권으로 진출할 생각이면서 이런 자격증을 외면했다면 대단한 배짱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취업 시장에서 박정모 씨가 선택한 무기는 ‘프레젠테이션(PT) 스킬’이다. 2009년 ‘랑세스-한경 프레젠테이션 챌린지’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험을 계기로 한 우물을 판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STX메탈에 당당하게 발을 들였다.

PT와의 인연은 학교 내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학교 수업이 아니라 교내 축제를 조직하거나 전국 단위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PT의 가치를 알게 된 것.

“준비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길 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니 손쉽게 해결책이 마련되더군요.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프레젠테이션과 같은 맥락이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한 게 한국에서 가장 큰 프레젠테이션 대회 중 하나에서 우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신입사원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기업으로 알려진 STX메탈 딱 한 군데에 지원해 최종 합격이라는 승전보를 울렸다. 그는 “자격증 하나 없었지만 PT 스킬로 ‘남들보다 돋보이는 인재’로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독보적 ‘경험’으로 바늘구멍 뚫은 무(無)토익 용자(勇子)
한국투자증권/ 주성일
[저질 스펙 뚫고 하이킥] 내세울 것 없던 그들, 보란 듯이 날아오르다
이 시대 최고의 직장으로 각광받는 증권사. 그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 터. 그 좁은 바늘구멍을 그 흔한 토익 점수 하나 없이 넘은 이가 있으니 바로 주성일 씨다.

그에게 스펙은 남의 나라 이야기. 중위권 대학 출신에 학점도 그저 그런 수준이다. 어학연수 경험도, 내세울 만한 토익 점수도 없다. 하지만 그에겐 남에게 없는 딱 한 가지가 있었다. 4년여 전부터 쌓아온 실전 투자 경험과 구체적인 직무 경험이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하면서 고객을 위험에 빠트려선 안 된다는 증권사의 사명을 알게 됐다고. 이와 함께 투자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 내에서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

자신의 투자 결과를 분석하는 블로그도 운영했는데, 첫 화면에는 자신의 성을 딴 ‘주스자산운용 대표’라는 프로필을 새겨넣었다.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물론 CEO의 자세로 임하겠다는 자기 암시였다. 대학생 모의투자대회에 나가서는 2위에 올랐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증권사 공채에서 기라성 같은 고스펙 소유자들을 제치는 필살기가 된 것.

그는 주위에 입버릇처럼 “증권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마음가짐과 행동을 통일한 셈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꼭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가짐, 그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32세 신입사원 “기회는 반드시 오더라”
국민연금관리공단 /정재은
[저질 스펙 뚫고 하이킥] 내세울 것 없던 그들, 보란 듯이 날아오르다
서른을 훌쩍 넘긴 99학번. 군대 다녀오느라 세월을 보낸 남자도 아닌 정재은 씨에게 취업문은 너무나 좁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나이 때문에 위축될 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용기를 내 인턴십부터 도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32세에 신입사원 명찰을 달고야 말았다.

대학 졸업 후 학원 강사, 방송작가 등의 일을 한 그에겐 내세울 만한 스펙이 거의 없었다. 대학 시절만 해도 지금처럼 스펙에 머리를 싸매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 졸업도 하기 전에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터라 취업에 대해 큰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안정된 직장에 대한 열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때마침 공기업 채용에서 연령, 학력 등의 조건이 철폐됐다. 반신반의 심정으로 인턴십에 도전, 합격 통보를 받고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인턴십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늦은 도전인 만큼 ‘뭐든지 다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열의가 전해져 5개월 후 그에게 계약직 전환 기회가 왔다. 민원 상담을 하면서 ‘적성에 맞고 비전도 있다’는 확신이 들자 본격적으로 공채 준비를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드디어 2011년 상반기 공채. 누구보다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합격 통지가 전해졌다. “언젠가는 나에게 기회가 온다고 믿었어요. 그 시기가 언제일지 모를 뿐이지 반드시 온다고요.” ‘왜 나만 늦는 걸까’ 하며 고민하는 고령 취준생이라면 그의 말을 새길 만하다.



글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