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엔씨소프트 게임기획팀 주임 인터뷰

영화 한 편을 제작한다 상상해 보자. 작품 전체의 주제를 정하고 관리하는 감독부터 배우, 카메라, 음향, 조명, 분장 등 수많은 스페셜리스트들이 각자의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게임도 마찬가지.

기획부터 아트 프로그래밍에 이르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게 마련이다.
[스페셜 리포트] “게임 기획자는 영화감독 같은 사람”
현재 맡고 계신 업무가 궁금해요.
처음 입사 직후에는 ‘아이온’에서 레벨 디자인을 맡았어요. 지금은 신규 프로젝트로 새로운 게임을 개발 중이죠. 맡고 있는 일은 역시 레벨 디자인입니다. 게임의 공간을 기획하고, 그 공간에서 특정 경험 의도를 정한 후 이를 설계하는 일이에요.


게임 디자인, 혹은 기획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요?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선 프로그램 파트에서 코딩도 하고, 아트 파트에서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 하죠. 그리고 전체적인 설계를 담당하는 기획 파트가 필요하죠. ‘게임 기획’은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가위가 보를 이긴다’는 규칙 같은 거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UI가 어디에 있어야 보기 쉬운가’, ‘여기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와야 재미있나’, ‘이 몬스터를 잡으려면 돈을 얼마를 줘야 하나’, ‘게임의 경제가 어떻게 순환하는가’ 등 모든 규칙을 정하는 게 기획자의 일이에요. 정해진 규칙을 문서화하고, 브리핑하고, 그대로 만들어 내는 역할이 기획이라 할 수 있어요.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 세 분야가 핵심이라 보면 돼요.


여러 게임 관련 직무 중, 기획자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는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소설가가 꿈이었죠. 내가 쓴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게임을 즐기다 보니 소통이 글로만 되는 건 아니더군요. 게임을 통해서도 내가 원하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 때가 고3 무렵이라 대학도 게임학과(청강문화산업대학)에 진학했어요. 대학에서도 기획을 전공했죠.


원래 게임을 즐기시는 편이었나요?
원래는 책 읽는 것을 많이 좋아했어요. 어릴 때는 엄마에게 매 맞으면서도 동네 오락실에 갔어요.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현재 출시된 온라인게임은 거의 다 해본 거 같아요. NC소프트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가장 즐겨했죠.


게임 기획자와 소설가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게임을 통해서 소통이 가능하다 생각했어요. 게임을 만드는 여러 사람 중 기획자가 그 일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프로그래머는 구조를 잘 짜고 예쁘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반면 기획은 어떤 경험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죠. 영화로 치면 감독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에 어떤 배우가 나와야 가장 잘 어울리는가를 판단하는 것과 같아요. 게임 기획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게임 개발 사이트에 들르면서였어요. ‘아, 이런 일도 있구나,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죠.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이 분야의 일을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게임 기획자가 되기 위해선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전공은 큰 상관이 없어요. 국어, 영어, 수학을 다 잘해야 하죠. 기본적인 글을 쓰더라도 관련 지식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재미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설득하는 게 기획자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거든요. 콕 꼬집어 어떤 것이 ‘기획자가 되기 위한 준비’라고 말하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 본 경험이에요. 저도 그래서 대학 전공을 게임으로 선택했어요. 또 기획자는 프로그래밍, 아트 등에 대한 지식도 함께 갖춰야 해요. 저도 대학에서 프로그램 등 전반적인 게임 개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기획자가 아무리 재미있다 생각해도, 이를 설득하기 위한 문서 작성과 프레젠테이션에 실패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경험이 제일 중요해요. 하다못해 MOD게임(이미 완성된 게임을 수정해 만든 게임)이라도 경험해 보는 게 좋아요.


공부를 위한 소스는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웬만한 게임 개발, 제작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저도 사실 그런 사이트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전공을 한다 해도 실제 기업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알기가 어렵죠.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업계 선배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같은 과 선배도 있었고, 그 선배들이 소개해 준 동료들도 있었죠. 관련 사이트나 커뮤니티에서 정보도 공유하고 스터디도 많이 했는데, 그러한 활동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NC소프트에도 게임 전공이 아닌 분들이 무척 많아요. 특히 기획은 더 많죠. 기업 주최 세미나, 포럼도 자주 열리니 관심 있으면 찾아보세요. 루트는 많아요.


NC소프트사 입사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크게 봤을 때, 과정 전체에서 어필해야 할 점이 있어요. ‘게임을 정말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표현해야 해요. 자기소개서에도 게임을 만들어 본 경험, 찾아다니며 공부한 경험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세요. 대학 때 만든 졸작이라도 포트폴리오에 담는 게 좋아요. ‘이 게임은 이런 방식의 게임이고, 기획 의도는 이것이다. 나는 정말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라는 걸 드러내야 하죠.


구체적인 전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서류전형-NC테스트-직종별 테스트(전문지식)-1차 면접(실무)-2차 면접(임원)-신체검사-최종합격 순이에요. 1차는 실무자 면접인데, 실제 담당 팀장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하죠. 이때 중요한 게 ‘이 사람이 들어왔을 때 말이 통하는 사람인가’예요. 또 실무적 감각, 즉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느냐’를 체크하죠. 1차 면접에선 포트폴리오와 자소서가 제일 중요해요. 질문도 주로 포트폴리오를 보며 해요. ‘게임 개발을 통해 얻은 건 무엇이고 느낀 건 무엇인가’, ‘어떤 노력을 했나’ 등이에요.

임원 면접은 개발실 실장이나 임원들이 해요. 주로 인성을 확인하죠. 예를 들어 ‘정말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위로해 주는 말을 해 보라’든가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있는데, 친구한테 추천해 보라. 뭐가 재밌고, 왜 봐야 하는지 설명하라’와 같은 식이에요. 사실 그런 게 바로 기획자가 하는 일이잖아요. 저도 이때 제일 떨렸어요.


게임회사 하면 자유로운 근무 환경, 수평적인 조직 문화 등이 떠오르는데요. 실제 그런가요?
정말 그래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만 해도 팀에서 막내인데, 마음대로 제안할 수 있고, 또 그 제안을 들어주고 검토해 주시죠. 그런 문화가 많지 않거든요. 복장만 봐도 자유로운 근무 환경임을 알 수 있어요. 다들 회사 동료라기보다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돼 있어요.


게임 기획 등 게임회사에 일하고픈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게임을 단순히 재미로 즐기는 수준이라면 특별히 조언할 게 없어요. 하지만 개발을 마음먹었다면 ‘이 게임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등을 분석하고, 이미 개발된 게임에 대해 역기획도 해 봐야 해요. 만약 다른 직장에 갔다면 ‘이렇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게 솔직한 제 심정이에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고, 그걸 서포팅해 주는 곳이 바로 게임회사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자기가 잘하고 자신 있는 게임 개발 분야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찾아보고, 현직에서 일하는 선배들도 만나보도록 하세요.


글 장진원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