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만 잘해도 성공한다”라는 말은 옛말. 이제는 1과 1을 더해 새롭고 창의적인 1을 만들어 내는 ‘융합형 인재’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시대다. 하지만 단순히 서로 다른 학문을 모두 공부한다고 해서 ‘융합형 인재’라고 할 수 없다. 궁합이 잘 맞는 각기 다른 분야를 찾아 연구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융합’이다.


융합이 필요한 이유
2014년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단어는 ‘융합’이다. 학자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인물을 ‘융합형 인재’라고 말하고 있고, 각 대학에서는 융합학과를 신설하거나 통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융합’이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는 책 <융합이란 무엇인가>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기술 위험이나 기후 변화와 같은 학제 간 성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혁신을 위해 융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자, 복잡하고 다면적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융합’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질 터. 융합한다는 것은 ‘독립적인 학문, 기술, 산업 등이 또 다른 분야의 그것과 만나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학문’이라고 해서 인문계 전공과 이공계 전공만이 합쳐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학 물리학’, ‘물리 화학’도 화학이라는 학문과 물리라는 학문이 합해져 만들어진 새로운 가치, 즉 ‘융합 학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융합형 인재’의 조건은?
퀴즈 하나. 스티브 잡스와 세종대왕의 공통점은? 정답은 ‘융합을 실천한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제품들을 보자. 매킨토시 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세상을 뒤흔든 이 제품들이 탄생하기까지 최고의 기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뛰어난 기술력뿐 아니라 ‘인문학적 가치’가 있었다. 이른바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스티브 잡스는 항상 “기술, 인문학, 인본주의가 합쳐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라 현재 애플사 직원 중 40%가 인문학 전공자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융합’의 성공을 거뒀다면 한국에서는 세종대왕을 꼽을 수 있다. 세종대왕은 과학, 음악, 미술에 능해 과학적으로 언어를 만드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 음악, 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와 세종대왕은 대표적인 ‘융합형 인재’다. 과학과 인문학을 합쳤기 때문이 아니다. 융합형 인재는 단순히 각기 다른 학문에 대한 지식을 쌓아서가 아니라, 해당 학문으로부터 얻은 능력을 실무에 적용하는지, 문제를 융합적으로 풀어내는지,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다양한 학문에 걸쳐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지 등이 기준이 된다.


PART 1 학문 간 융합하기
인지과학, 신경과학, 의료공학, 소프트웨어, 의학 분야가 합쳐져 만들어진 ‘뇌과학’은 대표적인 융합 학문. 뇌과학과 같이 미래를 이끌어갈 융합 학문은 무엇이 있을까.


Design+α
DMZ(Design Miracle Zone). 올해 디자인 분야를 사로잡은 트렌드다. 사회적 불안이 커지면서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의료산업 종사자가 된다는 말씀!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내 디자인은 물론 사회학, 공간심리학, 경영학 등의 지식이 필요하다.

디자인과 기계공학도 뗄 수 없는 학문. 두 학문이 융합되면 기계 산업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디자인 분야에 ‘산업디자인’이 있지만, 콘셉트 디자인에 주로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져 산업과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공학 설계 분야는 분석적인 측면이 강해 창의적인 제품 개발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학디자인, 인간공학 등의 학문을 함께 익히는 것이 도움 된다.


경제+α
경제학은 융합에 가장 개방된 학문이다. 사람들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 특히 최근에는 심리학이나 생물학과 교류해 이론적 바탕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인간의 행동을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경제 이론을 정립하고 적용할 수 있어서다. 심리학과 접목한 행동경제학이 대표적인 예. 합리적 의사결정,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인 만큼 뇌 과학과 융합한 ‘신경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경제’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심리학, 뇌과학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다.


IT+α
무인자동차, 구글글래스, 3D 프린터까지. 이제 IT는 전문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IT 분야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3D 프린터’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3D 프린터가 전 세계에 걸쳐 혁명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가장 먼저 변화하는 것으로는 ‘의료 기술’ 분야. 의료 부품은 개인 특성에 맞춘 제품이어야 하므로 기술 적용 속도가 빠를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음식, 우주선 부품 등의 프린팅 기술이 발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도 모바일 기술과의 접목에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는 상황. 이처럼 앞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IT’다. IT와 관심 분야를 잘 접목한다면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PART 2 복수전공 선택하기
복수전공은 대학생인 우리가 비교적 쉽게 ‘융합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복수전공으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전공을 살펴보자.


사회과학 전공+통계학
모든 사회과학은 통계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분석방법으로 사회 현상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탐구한다. 사회과학 전공과목에 통계학 관련 수업이 있는 이유다. 여론조사 전문가의 길을 희망하거나 마케팅 분야의 사회조사분석사, 금융권의 재무위험관리사 자격증에 관심이 있는 사회과학 전공자가 통계학을 배우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문학 전공+예술 전공
인문학 전공에 속하는 역사학, 철학, 언어학 등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통찰력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학문. 이러한 인문학과 찰떡궁합인 전공이 있다. 바로 ‘예술 전공’. 예술은 인간, 세계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인문학적 통찰력으로 접근하면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져 창의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출·영화 전공자라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극에서 다루는 인물을 여러 시각에서 다룰 수 있다.


컴퓨터공학 전공+인문학 전공
‘공대생’이라고 해서 프로그래밍, c언어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학’은 자원을 인간에게 유용한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자연과학적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 인간에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는 공학도가 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적인 공학지식이 필요하다. 즉,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통찰력을 길러야 하는 것. 올해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최한 ‘2014 이매진 코리아 파이널’에서 우승한 ‘인페이스’는 난민 구호에 대한 관심과 공학지식을 융합해 얼굴 분석으로 난민의 부모를 찾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경제·경영 전공 +의학 전공
많은 대학생이 경제·경영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어느 분야든 ‘경영’을 해야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되는 탓이다. 의학 관련 전공은 전문 분야이다 보니, 복수전공과는 별개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 하지만 의학 관련 전공자도 결국 경영·경제 분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졸업 후 종합병원에서 일을 하거나 개인 병원을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보니 의학지식만을 가지고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 즉, 규모가 비슷한 병원이라도 마케팅의 방법에 따라 병원의 비전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학 관련 전공자가 경제·경영 분야의 지식을 배우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선배가 들려주는 ‘복전팁’
다른 학생들보다 2배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복수전공. 확고한 의지가 없이 복수전공을 결정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복수전공을 선택하기 전이라면, 경험자들의 조언을 새겨듣고 심사숙고할 것.


“유연한 사고와 넓은 시야를 위한 선택, 신문방송학과 경영학”
경영학과에서 하는 마케팅 수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복수전공을 선택했어요. 공부하다 보니 신문방송학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사회에 먼저 나가 있는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를, 신문방송학에 다른 전공을 함께 공부하니 직업 선택 폭도 넓어지고 생각하는 깊이도 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 제정민, 건국대 신문방송·경영 4


“주 전공과 복수전공의 시너지, 컴퓨터공학과 소비자학”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공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래에도 컴퓨터 공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고요. 그래서 복수전공으로 선택해 공부하고 있어요. 주 전공으로는 ‘소비자학’을 하고 있는데, 두 전공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서로 다른 전공의 지식을 섞어 생각해 볼 때면 흥미로워요. - 손하정, 서울대 소비자학·컴퓨터공학 3


“주 전공의 내공을 닦는 과정, 무역학과 영어영문학”
주 전공인 무역에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역량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선택한 전공이 영미영문학이었어요. 외국어 능력을 갖추면 무역 관련 전공에 더 자신 있게 임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 이시연, 건국대 국제통상·영어영문 4


“세상을 깊게 보기 위해 선택한 전공, 물리학과 신학”
신학, 철학, 인문학 등 인문계 전공만으로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다 <쉽게 풀어쓴 양자물리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신학이나 물리학, 예술이 세상을 설명하려는 또 다른 언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신학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물리학을 복수전공하기로 결정했죠. 물리학 수업은 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은 이공계 수학이 기초가 되는 수업이라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인터넷 강의를 듣고, 이공계 전공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어요. 복수전공으로 새로운 길을 가보려는 도전은 두려울 수밖에 없어요. 의심이 생기고, 불안하기도 하죠.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길이야말로 결국엔 삐걱거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갖고,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복수전공을 선택한다면 성패에 상관없이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 김경, 연세대 신학·물리학 휴학


복전 지망생에게
“전공을 확실히 공부한 뒤 선택하고 사고하세요”
건국대학교 신동진 신문방송학과 교수·조영빈 경영학과 교수

Q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경영학과’ 등의 경상계열 복수전공을 많이 선택하는데
신동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에요. 복수 전공의 의미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적 훈련을 하고, 다양한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문학 분야를 복수전공 으로 선택해 공부하게 되면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조영빈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 ‘경영학과’나 ‘경제 학과’ 복수전공이 유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사회에서 경상계열 졸업생을 많이 찾고 있어서예요. 경상계열을 전공한 학생들은 모든 기업에 필요한 지식인 ‘경영’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금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창업 등 모든 종류의 기업에 입사할 때 경영지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죠..


Q 복수전공을 꼭 해야 할까요?
신동진 미래 사회의 지식인에게 전문성은 물론, 폭넓은 소양이 필요하므로 대학에서 복수전공을 권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주 전공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관을 지키고 지식을 깊이 있게 탐구한 뒤 다른 분야에 대해 이해를 해야겠죠.


Q 복수전공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면
신동진 현대 사회와 다가올 미래에는 하나의 전문 분야 지식 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많아질 거예요. 삶의 질을 더 높인다는 측면에서도 다른 분야에 대한 대학 수준의 학습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긴 여정의 마라톤입니다. 졸업 후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넓은 시야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으면 해요.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고 창의적 사고를 하는 방법으로의 복수전공은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조영빈 복수전공을 하려는 전공의 ‘개론’ 과목을 먼저 수강하고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당 전공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에 대해 탐색을 거치고 수업을 듣는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죠. 또, 복수전공을 한다면 본인의 시간에 강의를 맞추려 하지 말고, 강의시간에 본인의 시간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해요. 복수전공을 한다는 것은 단일 전공을 할 때보다 바쁘게 대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아요.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주 전공, 복수전공 둘 중 하나도 잡지 못하는 얼치기가 될 확률이 높죠.


글 김은진 기자·이찬주(동국대 신문방송 2)·김다원(서울대 소비자 3)·정우주 (건국대 신문방송 2)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