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10월 311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조기 퇴사자 비율이다. 10명 중 3명이 1년 이내로 조기 퇴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설문에 응한 인사담당자들은 그 이유로 ‘인내심·책임감 부족’, ‘쉬운 일만 하려고 해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조기 퇴사자들은 “구구절절한 속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화살을 퇴사자에게 돌리는 건 억울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사원 명찰을 걸었던, 하지만 이제는 백수가 된 3명의 청년이 퇴사의 ‘진짜’ 이유를 들려줬다.
[스페셜 리포트] 이유 있는 조기 퇴사 “내가 그만둔 이유는…”
바람(29)
전공의 한계를 극복하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 2년간 근무하다 지난 6월 사표를 던졌다. 외향적인 성향과 잘 맞지 않는 기업 문화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몸담았던 기업은 A 화재보험회사.


여행자(29)
누구보다 일을 즐겼던 초특급 사원이었지만 1년 7개월 차가 되던 지난 8월 명찰을 내려놨다. 조만간 자전거를 들고 해외로 떠날 예정. 서울역에서 한눈에 보이는 빌딩에서 일했다.


워커홀릭(28)
일, 일, 일! 2년 동안 아침 일찍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매일 일에 빠져 살았던 열혈 신입사원.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싶어 유통업에 지원했지만 겪어보니 모든 일이 사람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국 35개 지역에 직장이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복’을 차버리고 나온 이유는
바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침 7~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하니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게다가 같은 업무가 계속됐다.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었다. 모든 일이 그렇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나는 그중에서도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다가 ‘죽어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한 적 있다. 오버 아니다. 취업하고 돈은 벌었지만 사는 재미가 없었다.

여행자 나는 조금 다르다. 회사생활은 즐거웠다. 대기업답게 복지 혜택이 좋아서이기도 했고, 일도 재밌었다. 하지만 대기업 입사를 원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랐던 탓에 계속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NGO에서 일하는 것, 자전거 여행과 같은 일들이. 퇴사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것은 부서 발령이었다. 경영기획팀에서 인사팀으로, 인사팀에서 교육팀으로 짧은 시간 근무하며 3번이나 이동했다.

워커홀릭 부서 발령이 불만이었던 건가?

여행자 아니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내 성향과 교육팀의 업무가 맞지 않았던 거다. 말하자면 ‘타이밍’이었다. 회사에서도 여유 있을 때면 여행 관련 기사, 포스팅을 볼 만큼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고, 언젠가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부서 발령이 난 거다.

워커홀릭 나는 내 가치관과 회사가 맞지 않아서 퇴사했다.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야 했다. 매일 8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다. 주차 시간을 보니 하루에 13~14시간 동안 회사에 있었더라. 내가 일을 못 해서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일을 하루에 12시간은 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회사 규정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야 하니 결혼도 쉽지 않을 것 같았고.

여행자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랬지, 사람이나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퇴사를 결심한 건 아니다. 회사 분위기나 문화도 좋았고.

워커홀릭 아닌 게 아니라, ‘여행자’가 있었던 기업 분위기는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여행자 맞다. 회사를 다니면서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동기가 4명이나 퇴사를 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퇴사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기업 문화는 어땠나
워커홀릭 수직적 기업 문화로 알려진 곳이다. 버틸 만했다. 군대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그런지, 여자들은 처음에 힘들어하는데 남자들은 괜찮은 것 같다. 나는누가 지시를 하든 간에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비서처럼 상사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좋아서 그랬는지 나쁘지는 않았다.

바람 내가 있던 곳은 군대 문화가 더 심했던 것 같다. 일이 없어도 퇴근은 늦게 하고, 쉬는 날에도 아무 때나 부른다. 일하라고. 근로 계약할 때 적혀 있던 ‘9시 출근, 5시 퇴근’은 차라리 지우는 게 낫다. 영업이 좋아서 지원했으니까 업무량이 많은 건 그래도 견딜 만했다. 하지만 회사는 발전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영업관리직이니 매출을 높여야 하는 게 임무인데, 매출을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그런데 회사에서는 무조건 야근을 시킨다. 그렇게 해서 매출이 오르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니다. 경력이 얼마 안 된 내가 느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시키니 배울 것도 없고 반감도 커졌다. 내 돈으로 매출을 맞출 때도 열 받고. 나이가 많은 선배들도 불만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따르는 선배들을 보면서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슬프더라.

여행자 내가 있던 곳은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책임이 강했다. 일을 배우는 과정은 힘들지만 혼자서 1부터 10까지 다 할 수 있으니 오더를 받거나 위에서 간섭하는 경향이 적었던 것 같다. 다른 계열사보다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고.


퇴사를 결정하면 회사에 나가기 싫지 않나
여행자 회사에 놀러 가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일이 잘되던데.

워커홀릭 진짜 일이 잘됐다. 마음을 비워서 그런 것 같다. A만 보던 내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니 Z까지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왜 이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 난 반감이 커서 그랬는지, 하루빨리 관두고 싶었다.


기업에서는 조기 퇴사가 엄청난 손해라고 말한다
워커홀릭 들었다. 한 사람 채용해서 교육하는 데까지 많은 비용이 든다고.

여행자 우리 회사에서도 “한 명 채용하고 교육하는 데까지 1억 원이 든다”고 말하더라. 근시안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소모적인 항목이다. 사실 대외적으로는 조기 퇴사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는 있겠지만.


재취업을 준비 중인가
워커홀릭 현재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는 게 우선이다. 난 관리직보다 판매하는 게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일하면서 가끔 매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때가 있었는데, 관리직에 있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희열을 느꼈다. 갑의 입장에서 일할 때는 “행사 들어가니 10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단가를 낮춰라” 등과 같은 압력을 계속 넣어야 하는데 정말 못할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해야 하는 자리여서 심적으로 힘든 적이 많았다.

여행자 다닌 기간이 짧아서 그런 것 같다. 5년 정도 다녔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 거다.

워커홀릭 아마도 그랬겠지만, 영업 관리를 하던 1년은 정말 쉽지 않았다. 본사 차장, 부장이랑 전화 통화를 하는 일이 많은데, 나는 1년 차 신입사원이지 않나. 그런데도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나에게 꾸벅이며 인사하는 것이 어찌나 불편했던지.

바람 나는 내가 잘하는 두 가지, 말하는 것과 판매하는 것을 활용한 일을 할 계획이다. 그러니까 ‘장사’를 해 볼 생각이다.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두렵지 않다. 해 본 뒤에 취업을 결정할 생각이다. 2년 정도 경험을 해보고 꼬박꼬박 들어왔던 월급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면, 그때.

여행자 일단 취업보다는 자전거 여행 준비에 집중하려고 한다. 회사를 관두면서 생각한 첫 번째가 여행이었으니까.


후회하진 않나
바람 후회한 적은 없다.

여행자 후회는 없는데 걱정은 많이 된다.

워커홀릭 맞다. 나도 걱정이 많아지고 있다.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잘 때도 있다. 짧게는 2년, 햇수로는 3년 동안 직장인으로서 삶을 살면서 생긴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게 당장 걱정이다. 나도 모르게 돈을 막 쓰고 있더라니까. 문제는 전처럼 통장에 충전이 안 된다는 거지. 이렇게 예전에는 걱정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하나둘씩 걱정으로 다가온다. 취업을 해봐서 그런지 대기업에 대한 미련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취업 성공자’로서 취업 성공 노하우를 들려준다면
여행자 취업할 때 보면 스토리를 만들라고 한다. 겪어보니 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다. 대학생 4~6년 동안의 이야기를 할 것이 없는 사람은 실패한 대학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누렸으면 한다. 그리고 영어 공부는 미리 하는 게 상책이다. 4학년 1학기 때 영어 공부하려면 힘들다.

워커홀릭 진짜 공감한다. 영어 말고도 할 게 많으니까.

바람 그러고 나서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게 최고다. 나는 영업 관리 직무를 맡고 싶어서 관련된 일만 찾아서 했다. 말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수업시간에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발표를 했고, 리더십이 중요한 관리 직무이기에 팀을 꾸리면 항상 팀장을 맡았다. 지원하기 전에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정도는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여행자 아, 그리고 기업을 선택할 때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돈 많이 주고 출퇴근 시간 보장되는 곳을 가는 게 현명하다. 빨간 날 쉬는 건 당연한 거고.

워커홀릭 빨간 날 쉬지 않는 건 정말 큰 차이다. 365일 돌아가는 회사는 안 가는 게 낫다. 남들 쉴 때 다 같이 쉬는 게 좋지.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건 ‘액션’의 중요성! 일을 2만큼 하더라도 액션이 8이면 승진도 빠르다는 것을 배웠다.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여행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었던 회사를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선을 다해서 일단 입사했으면 한다. “지금은 너무 어리니까 취업하지 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보고 나중에 일을 찾아”라는 조언도 해주고 싶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해줄 필요가 있다. 취업이 현재 목표라면 일단 입사해서 경험해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왕이면 대기업을 경험해보면 좋다. 왜 대기업이라고 하는지, 왜 대기업에서 퇴사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워커홀릭 공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 취업이 목표라면 취업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으면 그것을 해야 하는 게 맞다. 대기업 취업을 하고 싶다면 원서를 100개든 200개든 써서 어디든 입사를 하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나오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며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여행자 또 한 가지, 대학생의 자유를 누렸으면 한다. 서른을 살아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지만, 29년을 살면서 가장 자유를 느꼈던 것이 대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육 체제에 따라 묶여 있으니까. 취업이 되면 또 제재를 받는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벼슬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핑계 대지 말고 자신에게 떳떳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바람 대학생들과 몇 살 차이 안 나지만 겪어보니 느끼는 게 많다. 나도 그랬겠지만 대학생들을 보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취업을 왜 하느냐”고 물으니 “다 하잖아요”라고 답한다. 또, “그래서 뭘 준비했느냐?”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이 “토익 공부 하고 있잖아요”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바보 같은 준비 방법이다.


글 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