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671호 (2008년 10월)

‘사랑도 뮤지컬도 모두 운명이죠’

뮤지컬 연출가 왕용범·배우 서지영 부부

왕용범(오른쪽) 1974년생. 서울예대 졸업. 연극 ‘도덕적 도둑’ ‘타이터스앤드로니커스’ ‘사천의 선인’, 뮤지컬 ‘햄릿(시즌1)’ ‘뮤지컬 햄릿-월드버전’ 연출.

서지영 1972년생.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뮤지컬 석사. 뮤지컬 ‘풋루스’ ‘갬블러’ ‘드라큐라’ ‘블러드 브라더스’ ‘햄릿 시즌1’ ‘더 플레이’ 등 출연. 백제예술대 뮤지컬과 겸임교수(현).

“뮤지컬 배우로서의 장점이요? 우선 매우 뛰어나게 아름답죠(웃음). 게다가 걸출한 가창력에 섬세한 연기도 일품이에요. 연출가의 입장으로만 봐도 정말 믿음직스럽고 기댈 수 있는 배우예요.”(왕용범) 연출가로서 배우 ‘서지영’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에 왕용범 연출가의 끝없는 칭찬이 이어진다. 이제 결혼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신혼부부인 까닭도 있지만 그만큼 ‘뮤지컬 배우 서지영’에 대한 신뢰도가 큰 까닭이다. 이는 배우 서지영 씨도 마찬가지다.

“연출가로서 왕용범 연출가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을 신뢰하고 그 신뢰 속에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폭넓은 여백을 두고 그 안에서 연출해 나간다는 점이에요. 배우 입장에서는 자신의 연기를 인정해 주고 연기의 틀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출가만큼 고마운 연출가도 없죠.”(서지영) 그래서 두 사람은 단지 부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는 배우와 연출가로서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종종 같은 공연 작업을 해 왔다. 지난 8월 21일부터 숙명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햄릿-월드버전’은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네 번째 공연이다.

국내 최초의 월드버전 ‘뮤지컬 햄릿’

‘뮤지컬 햄릿’은 유럽 예술의 심장 프라하에서 탄생한 뮤지컬로 유럽과 브로드웨이에서 100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롱런 흥행 작품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국내 공연으로는 최초로 해외 라이선스 작품의 공동 저작권을 갖고 세계시장에 선보이는 월드버전 공연인 까닭에 이들 부부에게는 물론 한국 뮤지컬계에 있어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뮤지컬 햄릿 시즌1을 연출했었는데 체코의 원작자가 이 공연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그 후 월드버전의 연출 제의를 받고 1년여 동안 작업한 끝에 마침내 ‘뮤지컬 햄릿-월드버전’이 탄생하게 됐죠.”(왕용범) 앞으로 브로드웨이 프라하 도쿄 베이징 등에서 2012년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월드버전은 모든 공연의 연출이나 무대, 조명 등이 한국의 버전으로 공연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한국 뮤지컬의 위상을 높였다고 할 수 있죠.”(왕용범)

이 작품에서 서지영 배우가 맡은 역할은 바로 햄릿의 어머니이자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는 여왕 ‘거트루트’다. “거트루트는 왕비이긴 하지만 왕비로서의 위엄보다는 여성스러운 면에 초점을 맞춰 연기하고 있어요. 햄릿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남편은 물론 자신과 아들까지 비극에 빠뜨린 어리석은 여자라고 욕할지 몰라도, 제게 있어 거트루트는 외로워서 사랑에 매달린,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을 지닌 여자이거든요.”(서지영) 사랑에 눈이 멀어 남편이 독살당하는 줄도 모르고 아들을 비극의 운명으로 이끈 인물인 만큼 ‘거트루트’ 역은 그 어떤 배역보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밀도 높은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이다.

“그래서 지영 씨가 딱 적역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지영 씨는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모두 수상한 연기파 중의 연기파 배우거든요. 사실 이번 작품도 제가 캐스팅한 줄 알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알고 보면 프로덕션이 저보다 먼저 계약한 게 지영 씨예요.(웃음)”(왕용범)

비단 왕용범 연출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뮤지컬 배우로서 서지영 씨의 커리어는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걸출하다. ‘풋루스’ ‘갬블러’ ‘드라큐라’ ‘더플레이’ 등의 뮤지컬에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발휘해 왔다. “게다가 저보다 뮤지컬 선배여서 인맥도 훨씬 넓고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요. 부러울 정도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함께 작업하다 보니 시샘 어린 시선을 받을 때가 있었죠.”(왕용범)

배우 서지영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남편이 연출가이기 때문에 더 쉽게 캐스팅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에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한 건 바로 남편인 왕용범 연출가다. 정작 당사자인 서지영 배우가 “아니면 됐지”라고 받아넘겼지만 그녀를 사랑하기 전부터 그녀의 팬이었던 왕용범 연출가는 그 모두가 자신의 탓인 것 같아 괴로웠다고 한다. “이 사람이 원래 좀 많이 예민해요.(웃음) 연출할 때도 작은 부분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자신이 만족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계속 물고 늘어지죠. 나중에 결과가 나오고 나면 ‘아 이 사람이 이래서 그랬구나’ 싶어 결국은 인정하게 되고 말지만 당시에는 ‘그냥 좀 넘어가지’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요?”(서지영)

사실 왕용범 연출가의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연출은 연극계와 뮤지컬계에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극 ‘도덕적 도둑’ ‘사천의 선인’들과 뮤지컬 ‘햄릿 시즌1’ ‘컨페션’ ‘밑바닥에서’ 등 맡는 작품마다 매번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던 그다. 하지만 그런 왕용범 연출가도 아내의 지적에는 당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사실 연출자라면 누구나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지영 씨 앞에서는 어림없어요. 워낙 합리적인 사람이라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잘라버리니까, 또 따지고 보면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아니까 고집을 부리고 싶어도 못 부릴 때가 많아요.”(왕용범) 그런 두 사람이기에 세간의 시샘 어린 의혹은 결국 금세 씻은 듯 사라졌다. 아내나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서로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배우와 연출가로서 작업한다는 걸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열광적인 팬

함께 사는 부부이지만 집에서보다 연습장과 공연장에서 얼굴을 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이들 부부가 처음 만난 것도 공연장에서였다. “2006년에 친구 응원차 뮤지컬 ‘밑바닥에서’ 2차 공연을 보러 갔다가 공연 후 뒤풀이 장소에서 용범 씨를 만났죠. 처음 만났는데도 서먹하게 굴지 않고 연출하는 사람답지 않게 이것저것 챙겨주는데 아 저런 연출가와 일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죠.”(서지영) 얼마 후 ‘밑바닥에서’ 3차 공연이 준비될 때 그녀에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뒤풀이에서 봤던 연출가라면 함께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선뜻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는 깐깐한데 저한테만 유독 자상했던 거였더라고요.(웃음)”(서지영)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제가 원래 그전부터 연기하는 지영 씨의 팬이었거든요. 실제로 만나기 전에도 지영 씨의 개인 홈피에 들락거리면서 지영 씨 프로필을 꿰고 있었을 정도예요.(웃음)”(왕용범) 이후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팬이었던 연출가는 무대 이면에서도 항상 열정적이고 성실한 모습으로 연기에 임하는 배우에게 마음을 주게 됐고, 배우는 한겨울에 늘 코와 손이 빨갛게 얼어붙어 다니는 연출가의 모습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배우와 스태프들끼리 서로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게임 ‘마니또’에서 세 번 연속 서로 상대의 마니또로 뽑히기까지 하자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인연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7년 5월, 가족과 동료들의 축복 속에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하고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행복하다는 걸 실감해요. 특히 열정적인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 앞에서 커튼콜을 하는 아내를 보면 어떻게 내가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재능 있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을까 싶죠.”(왕용범)

“용범 씨가 몰두할 때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막 움직여요. 그러다 어느 순간 손가락을 딱 멈추고 생각들을 펼쳐 보이는데 정말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랄 때가 많아요. 심지어 한창 자는 중에 막 깨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선 막 생각난 스토리나 노래 가사들을 불러주는 데 음정도 막 엉망인데 너무 열심히 부르는 거예요.(웃음) 그런 모습을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죠.”(서지영)

연출가로서의 꿈도 있지만 더 큰 꿈도 있다. 두 사람의 사랑과 뮤지컬에 대한 애정까지 쏙 빼어 닮은 2세를 가지는 일이다.

“남편이 연출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공연하는 그런 가족 뮤지컬은 어떨까요? 정말 꿈과 사랑이 넘치는 가족 뮤지컬이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꼭 선 보일 테니까 모두 기대해 주세요.”

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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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10-0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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